“목사님, 혹시 몰래 나쁜 짓하지 않으셨습니까?” 엄지발가락에 생긴 극심한 통증 때문에 한잠도 못자고 밤새 고생하다가 이른 아침에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썰렁한 농담을 던집니다. “글쎄요, 제가 뭔 나쁜 짓을 했을까요?” 골똘히 며칠 동안의 생활을 되짚어보며 무슨 잘못을 했을까 생각에 잠긴 저에게 의사 선생님은 웃으면서 다시 말을 건넵니다. “목사님, 농담입니다. 급성 통풍(Gout)입니다. 아마도 그 동안 몸에 축적된 ‘요산’이 발작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약을 처방받아 절름거리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놈이 아버지가 통풍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근엄한 목소리로 한 마디 던집니다. “아빠! 목사가 몰래 나쁜 짓하면 안 돼요!” 의사와 비슷한 말을 던지는 아들놈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나쁜 짓?” 그러자 아들이 마치 내가 무슨 은밀한 죄를 지은 용의자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말을 던집니다. “아빠, ‘가웃(Gout)’은 술을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이야. 혹시 우리 몰래 술 먹는 것 아냐?”
그제서야 의사와 아들이 던진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재판관 같은 엄숙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아들놈이 한 마디 더 쐐기를 박습니다. “아빠, 목사는 잘 살아야해요. 하나님이 보시는데, 혼자서 나쁜 짓 하면 벌 받아요!” 신앙에 있어서는 날탕인 줄 알았던 아들놈이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아버지를 꾸짖는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흐믓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는 것 같아서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해동소학(海東小學)’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혼자 있는 곳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獨處無自欺)”이라고 했습니다. ‘대학(大學)’에서는 이를 ‘신독(愼獨)’이라고 했습니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간다”는 뜻입니다.
“공자”나 “율곡”같은 분들은 이를 군자(君子)의 기본 도리라고 했습니다. 굳이 옛 고서나 성인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혼자 있을 때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내 안 어디엔가 숨겨져 있던 생각과 감정이 쏟아져 나옵니다.
혼자있을 때마저 나를 속박시키고 짓누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봇물 터지듯이 꼭꼭 숨겨두었던 속마음이 튀어나옵니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교문화권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누구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만큼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때문에 여지없이 무질서와 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제일 쉽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룰 때 “자아실현”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게 실현된 자아는 진정한 자아가 아닙니다. “왜곡된 진아(眞我)”일 뿐입니다. 진정한 자아의 실현은 하나님을 포함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그 분이 나를 지켜보신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질 때에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도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홀로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신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