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잘 알고 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개미들은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다.

그런데 베짱이들은 시원한 그늘 아래 앉아서 바이올린을 켜면서 놀고 있었다. 땀 흘리면서 일하는 개미들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면서.

바야흐로 겨울이 되었다. 이들의 희비가 갈렸다. 그 동안 열심히 일해서 저축해 둔 개미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 때를 위해 미리미리 대비해 두었으니까.

그러나 여름 내내 바이올린을 켜고 놀았던 베짱이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개미집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냉대 뿐,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서 오늘을 부지런히 일하고, 미리 준비하는 인생을 살자"는 교훈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고정관념을 깨는 역발상으로 이 이야기를 보기도 한다. 베짱이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선택했다. 노래나 부르면서 빈둥빈둥 논 게 아니다. 멋진 가수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목이 아파도, 더위를 참아가면서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한 것이다. 요즘 노래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사람들처럼.

관점을 달리해 보면 결론이 달라진다. 개미도 열심히 일해서 잘 먹고 잘 살았고, 베짱이도 열심히 노래 불러서 유명한 가수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럴 듯한 발상이라 생각된다.

개미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베짱이에게 말했단다. "베짱아, 그렇게 놀기만 하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러자 베짱이가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했다. "죽지 뭐~"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미리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말한다. "죽지 뭐~" 죽을 생각하지 말고,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미리 대비하는 인생을 살면 어떨까?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다윗 입장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셔서 속상할 수도 있다. 솔로몬에게 허락된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차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대상 29:2).

다윗은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하는 데 봉착할 어려움을 예견했다. 그리고 밝은 미래를 가져오기 위해 미리 대비했다. 그는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고 대충대충 준비하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했다. 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도 즐겁게 감당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다윗은 왕이니까, 가진 게 많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우리와는 다르다. 가진 것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말한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대상 22:14).

다윗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즐거이 하나님께 드렸다. 바로 이거다. 어려움 속에서도 즐길 줄 아는 인생. 어려운 속에서도 드릴 줄 아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미리 대비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2014년으로 들어섰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세월은 쏜살같이 우리 곁을 지나간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하기 전에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하나하나 준비해 가다 보면 언젠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해 보라. 악한 사람들도 미래를 내다 보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저 북한은 오래 전부터 남한을 삼키려는 야욕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을 위해. 국민들의 배를 곯려가면서 전쟁 물자를 확보해 왔다.

도둑놈도 도둑질을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소매치기나 강도들도 그렇다. 어린아이를 유괴하고, 밀수를 하는 이들도 모두 동일하다. 거사(?)에 착수하기 전에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해 본다. 그리고 철저하게 대비한다. 거사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

그런데 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꿈꾸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대충대충 살아갈 순 없지 않은가?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부산히 움직이는데, 선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일을 미리 내다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더 아름다운 미래를 기대한다면 미리 대비해야 한다. 100세 시대라지만 사실 노후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이들로서는 그런 고통의 날이 없을 것이다. 건강이 팔팔한 사람들에게라야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노후대책이 수립된 사람들에게라야 '더 사는 하루'가 소중하지 않겠는가?

런던의 한 길모퉁이에 구두를 닦는 소년이 있었다. 변변치 못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빚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결국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구두를 닦아야만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았다. 왜 지치지 않았으랴. 때때로 밀려오는 절망감이 왜 없었으랴. 그런데도 그 소년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늘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희망이 담긴 밝은 노래만.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구두 닦는 일이 뭐가 그리 좋니?" 그 때마다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즐겁지요. 저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답니다." 비록 구두를 닦기 위해 거리를 누비지만, 그는 희망을 일구어가기 위해 미리 대비하는 사람이었다. 이 소년이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세계적인 작가 찰스 디킨스이다.

1월 한 달도 중반을 향해 달린다. 치닫는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12월 달력을 들고 다가올 것이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좀 더 세월을 아끼자. 12월을 내다 보며 미리 대비하는 삶을 살아가자. 차근차근. 하루하루를 알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