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대략 10년 전, 2003년 12월 17일은 사담 후세인에게는 생애 최대의 비극의 날이었을 것이다. 땅 굴 속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미군들에 의해 생포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머리도 감지 못하고 수염도 깎지 못한 모양으로 잡혀 나오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측은하기까지 하였다. 입을 벌리고 DNA 테스트를 위해 위 점막을 떼어 내는 모습은 30여 년을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후세인이 아니라 마치 거리에서 방황하는 홈리스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를 누가 100만 명 군대의 최고 통수권 자였으며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안고 30여 년을 누려 온 이라크 대통령이라 하겠는가?

그는 원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를 자손 대대로 이어 온 농부의 대를 이를 제목으로 삼고 어려서부터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삶에는 결코 꿈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무단가출을 하여 바그다드로 도망 나왔다. 그리하여 외삼촌댁에서 심부름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반정부 단체에 가입하여 청년 시절에는 강력한 투쟁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였고 그 대가로 감옥살이도 하였다.

그렇게 강성으로 청년기를 보낸 그는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딛고 천신만고 끝에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랬던 만큼 그는 잔인하기도 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망설이지 않는 전형적인 독재자로 변신해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군이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후세인의 동상을 무너뜨릴 때 이라크 인들은 넘어진 그 동상을 도끼로 찍고 그 위에 올라가 춤을 추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권력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만큼 적도 많이 만드는 법이다. 후세인이 미군에 의해 생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곳 시애틀에서 살고 있는 이라크 인들은 기뻐 환호성을 질렀고 그의 생포가 수많은 이라크 인들의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었다. 이것이 권력이 가져다주는 최후의 모습인 것이다.

한 때 소련을 혁명의 도가니로 몰아세우며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했던 레린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역사는 생생하게 증거 해 주고 있다.

소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레린그라드"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한 도시이다. 그만큼 소련에서의 그의 명성은 대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어 붉은 광장에 안치되어 있는 모습은 초라한 것 그 자체였었고 그토록 추앙 받던 그도 세월의 흐름 앞에 한갓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1990년에 특수 장치로 그의 육신을 보호하고 있던 관이 다시 땅 밑으로 매장되는 비극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너무 지나치게 심취하게 되면 독재자 가 되고 독재자의 최후는 너무나도 비참하게 됨을 이토록 역사는 준엄하게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그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충정은 인정한다. 그러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절대 권력과 독재가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몰락하도록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오래전 워싱턴 주의 최고 회사라 할 수 있는 보잉사의 Phil Condit 회장이 갑자기 사임을 표명하고 이사회에서 전격 그 사임이 수리되자 후임 회장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갔다. 그런데 거대 보잉사의 회장직을 위에 이사진들이 즉각 모였고, 후임 회장으로 Harry Stonecipher 씨를 결정하였다.

처음부터 Harry Stonecipher씨가 결정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먼저 간택이 되었었다. 그는 자그마한 회사의 사장으로 있는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만장일치로 그 인물을 차기 보잉사의 회장으로 선임을 하고 위촉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그와 같은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조용히 지금 위치에서 가족들과 함께 아무런 부담 없이 사는 것을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는 것이 그의 거절 이유였다고 한다.

누구나 넘나 보는 그 좋은 세계적인 회사 보잉사의 회장 자리 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분수에 맞도록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눈앞에 있다면 그 가치를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높은 자리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미꾸라지는 민물 흙탕에서 놀아야 한다. 그가 망망 대야인 바다에 나가면 살지 못하는 법이다. 다시 말해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일게다. 무조건 일등이 되어야 하고 무조건 출세를 해야 하고 무조건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식의 일류병은 그래서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불행한 병인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열 평도 되지 않는 작은 상점을 열고 5대째 악기 상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다. 미국에서 열 평도 안 되는 사무실이면 참으로 작은 상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대를 이어 가문의 소중한 사업을 계승해 간다는데 돈보다 더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산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높은 권력만이 성공한 자리는 결코 아닌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인 물이 썩듯이 절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그 부패는 자신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설악산에 있는 울산 바위에 올라 가보면 실로 두어 평 남짓한 그 바위 위에 도저히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거센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상은 그러기에 혼자 서 있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삶, 바로 그런 삶에 진정한 멋과 행복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권력보다 무상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