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Photo : ) 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낮잠 자듯이 한 줄로 죽 누워있는 시리아의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밥 먹어라' 이 한 마디면 어느새 일어나 재잘거릴 것 같은 그 아이들은 다시 깨지 못할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날 줄 모른다.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해서 화학무기를 쏘아대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세상, 어디 시리아 밖에 없다고 누가 단언하여 말할 수 있으랴?

아프리카에서는 '소년병'이 문제가 되었다. 책가방 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청소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저 어린 아이들이 AK47 소총을 들고 어른들의 전쟁에 내몰렸다. 두려움과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마약을 투여하고, 혹시라도 다른 아이들이 다시 소년병이 되어 자신들을 공격해 올까 마을 모든 아이들의 손목을 잘라버리는 참혹한 세상에 내팽개쳐진 어린이들.

장난감을 한번도 만져 본적이 없는 아프칸 어린이들에게 하늘에서 뿌려져 하늘하늘 내려오는 플라스틱 나비들. 소중하게 집으로 가지고 오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소꿉장난 하듯 가지고 놀다 갑자기 터져 버린다. 일명 '나비지뢰'.

누가 아이들을 이런 전쟁의 사지로 내 모는가? 어른들의 전쟁에 소모품으로, 피해자로 내몰리는 아이들. 아이들은 정치를 모른다, 종교를 모른다. 또 왜 그들이 죽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하루 아침에 앞마당에 폭탄이 떨어지고, 엄마가 죽고, 동생이 죽고, 또 자기가 죽어간다.

어디 전쟁의 문제뿐이랴, 어린이들의 작은 손으로 만들어진 예쁜 축구공, 달콤한 초콜릿을 만들어 내기 위해 카카오 농장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아이들. 선진국에서는 첨단 기술이 경쟁력이라면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게는 값싼 아이들의 노동력이 '경쟁력'이다.

'우리는 괜찮아, 아이들을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들의 꿈을 생각해 볼 겨를 조차 없이 학원을 헤맨다.

어느 초등학생이 쓴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말. 물고기가 날다니, 새도 아니고. 기발한 어린이의 상상력이 써 내려간 방학숙제 글짓기가 아니다. 학업의 고통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절규한 유서의 내용이다.

세상의 어른들이 얼마나 나약해졌는지 이제는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당연히 짊어져야 할 짐마저 어린이들의 어깨에 지우고 있다. 아이들의 고통으로 어른들은 쾌락을 누리고 있다.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의 어린이들이 서로 다른 어른의 욕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어른들은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는 대신, 그들의 부채를 남겨주는 것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 흥청망청 쓰는 어른들의 욕망의 대가를 우리의 다음 세대는 고스란히 갚아 나가야 한다. 우리가 수 천년 동안 쉽게 보아오던 동물과 식물을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그저 책에서나 보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늦은 채 절망하고 바라 볼 수만은 없다. 이제 나라와 종교, 인종과 정치적 이념을 떠나서,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살게 해 주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니, 당장 어린이들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무엇을 해 주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 주기만 해도 족하다.

어린이는 어른들이 찍어내 소비하고 버리는 공산품이 아니다. 끝없는 어른들의 욕망의 대리전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것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나는 잠자듯 죽어있는 저 시리아의 아이들이 다시 일어나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세상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