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는교회 서경훈 담임목사
(Photo : 기독일보) 함께가는교회 서경훈 담임목사

성도님들로부터 참 자주 듣는 말이, 나는 기도할 줄 모른다~ 난 묵상할 줄을 모른다~ 같은 말입니다. 이에 반해서 저는 아직까지, 난 (음치라서) 노래할 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보았어도, 난 찬송할 줄 모른다~ 고 말씀하신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찬송은 노래할 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 반면 기도나 묵상은 뭔가 특별한 테크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기도를 배우고, 묵상을 배우고 합니다, 특별히 찬송을 배우는 분은 없지만! (근데 찬송이 노랩니까?)

물론 예배에서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한다든지, 봉헌 순서를 맡아서 기도한다든지,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한다든지 하는 경우들에서 보듯이 – 기도는 상황에 맞게 구할 것을 간구해야 하는 적절함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묵상과 기도는 – 원칙은 배울 수 있겠지만, 테크닉을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흔히 묵상과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부부사이의 대화를 예로 든다면, 모든 부부사이의 대화에 꼭 있어야 하는 어떤 원칙은 있을 것이고 또한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적인 대화(테크닉)는 부부마다 다를 것이고 또한 달라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상에 꼭 필요한 요소라든지, 기도에 꼭 필요한 것들은 원칙으로서 배울 수 있지만, 실제로 묵상과 기도에는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야 하며, 내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의 방법이나 스타일과 다른 사람들의 방법이나 스타일은 달라야만 하고, 다른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특별히 기도에서 어떤 테크닉을 배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회중 예배 가운데 대표자가 나와서 드리는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기도 유형입니다. 마치 삼일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는 그런 스타일로 집에 가서 아내 또는 남편과 대화하지 않듯이, 회중을 대표해서 드린 그런 기도 스타일로 집에 가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와 대화하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듯이 – 우리도 나만의 독특한, 나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그런 기도, 그런 대화를 하나님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시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나는 주님과 만날 시간약속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대화/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이르러면 기도와 묵상도 훈련해야 하는 법입니다.

기도와 묵상 훈련의 시작, 즉 경건의 시작은 – 만남입니다. 데이트할 때 시간약속을 잡듯이, 하나님과의 만남도 시간약속을 잡아야 합니다. 아무때나 내가 편한 시간에 (불규칙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 – 이렇게 함으로써 시간도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고백이 경건의 훈련 속에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 할 것인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일단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정한 약속시간을 정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묵상과 기도를 포함한 우리의 경건훈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나아가 영이신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을 만나는 그 시간에 대한 헌신, 이것이 이루어지면 무엇을 할 것인지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데이트 시간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어렵지, 만나기만 한다면야 뭘한들 어떻습니까? 뭘해도 재밌는 것이 데이트 아닙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정만 있으면, 그 다음은 쉽게 풀립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재밌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약속시간을 정하십시오. 기왕이면 매일 만나야 하겠지요. 하루라도 못보면 목이 길어지는 것, 사랑하는 사이는 그런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