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는교회 서경훈 담임목사
(Photo : 기독일보) 함께가는교회 서경훈 담임목사

성경에서 “의”는 하나님과의 사이가 막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막힘이없기에 그 앞에 나아가는데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듯이!

반대로 하나님과의 사이가 막혔다면, 성경은 그것을 “불의”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게 되면, 즉 하나님하고 사이에 막힘이 생기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하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관계가 막혔기 때문에 그렀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의”와 “불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성경책 맨 앞에 있는 이야기, 즉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힘이 생기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먹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 명령에 불순종한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하고 인간 사이에는 “막힘”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몸을 숨깁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불의”하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하고 사이에 “막힘”이 생겼고, 이렇게 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죄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은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그 죄의 값은 “죽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로마서 6:23)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하던 그 동산, 에덴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덴을 떠났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었던 끈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서 탯줄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탯줄이 끊어지면 곧 죽음입니다. 비록 육신의 심장이 잠시는 더 뛸 수 있다고 해도, 탯줄이 끊어졌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에덴을 떠나가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비록 육신의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그래서 몇 십년, 몇 백년은 더 호흡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이미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탯줄, 생명줄, 그 관계가 끊어졌기에 – 육신의 심장이 그 후로 얼마나 더 뛰느냐 하는 것은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화병에 꽂아놓은 꽃이 일 주일을 갈 거냐, 한 달을 갈거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뿌리가 잘린 꽃은 죽은 꽃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죽음,” “영원한 죽음”이라고 합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자가 되고, 하나님을 떠나야만 하는 인간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죽음 – 영원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보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권세를 잡고 떵떵거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라면 결국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의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의로우십니다. 우리는 불의해서 하나님 곁을 떠나 영원한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데,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가슴이 이미 천갈래만갈래로 찢어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 그 영원한 죽음으로 빠져드는 것을 하나님께서 참지 못하시기에 하나님의 가슴이 터져나갑니다. 마치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 자식 때문에 이미 수없이 그 가슴에 못자국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을 위해서 마지막 목숨까지 내주는 부모처럼…

그래서 십자가가 저기 서있습니다. 내가 치러야 할 그 죄값,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에 탯줄이 끊어지듯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우리가 치러야 할 그 죄값 – 그 죽음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맛보셨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달려야 할 죄값입니다. 그런데 나를 대신해서 죄 없는 그분께서 그 죄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듣고 또 들어도 영원히 우리의 가슴을 뛰게하는 말씀 –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가슴에 내가 있습니다. 그 가슴으로 첨벙 뛰어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불효해도 부모의 가슴에서 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듯이 하나님의 가슴에도 내가 있습니다. 내가 빌고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나를 받아주실 모든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님께 나아갑니다. 그 주님께 매일매일 나아갑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 이 은혜 앞에서 나와 세상은 간데 없고, 오직 구속한(내 죄값을 치르신) 주만 보입니다. 그 은혜로 오늘도 세상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