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퀘스터란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지출을 법률에 따라 한도를 정해 놓고, 일정액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절차를 말한다. 지난 2011년 8월 미 정치권이 국가부채 한도 증액을 위한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당시 미 의회는 국가부채 한도를 2조4000억달러 증액하는 대신 1조 500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방안을 2012년 12월 31일까지 마련하기로 했고, 의회는 만약에 재정 적자 감축에 합의하지 못하면 2013년 1월 1일부터 자동으로 예산을 10년간 1조2000억달러 삭감한다는 '예산통제법'을 통과시키게 되었다. 그 당시로써는 이렇게 강력한 조건을 정해서 양당 모두에게 시한을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이 정도의 시간이면 협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은 협상 시한인 2012년 말까지 재정 적자 감축 방안에 합의하지 못했고, 법에 못박은 예산 자동삭감 발동 시한만 3월 1일로 2개월 연장했다. 그런데 2월 말까지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법에 규정된대로 3월1일을 기해서 예산 자동삭감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정치권은 불과 일년전에 스스로 정한 법을 다시 뒤집어 엎었고, 2개월을 연장했지만 이것마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시퀘스터의 결과로 일자리가 무려 760,000개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IMF는 이로 인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수 있고, 이는 다시 다른 국가들의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공화와 민주 양당은 그 책임을 서로에게 떠 넘거기기 위해서 여론조성에 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양당이 서로 계속 평행선을 달리기만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은 탈세를 막을 방법을 찾아내는 동시에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부자 증세보다는 사회복지 프로그램 예산 감축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의 차이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시퀘스터가 시작된지 이제 열흘이 넘어가지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인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연방정부산하의 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원을 해고하거나 근무시간을 줄이고 혹은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무급휴가 일수가 증가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임금이 줄어들게 된다. 공항에서 일하는 TSA직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탑승수속 시간이 늘어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하게 되었다.
지금 정치권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시퀘스터 말고도 많이있다. 오히려 시퀘스터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충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양단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탓으로 구체적인 내용만 달라졌을뿐 어차피 예산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최근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 마지막 한두시간을 남겨놓고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내던 워싱턴이 이번에는 협상에 실패한 이유를 그런 면에서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이달 27일에는 2013 회계연도 잠정예산 편성이 종료됩니다. 이 문제도 이번에는 가까스로 해결하여서 연방정부가 문을 닫는 사태를 막기는 했지만 해마다 진통을 겪어야한 상황이다. 연방정부 폐쇄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 이후 18년간 발생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작년에도 한차례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고, 그 결과로 미국은 신용등급이 강등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흔히 가장 안정적으로 직장으로 알려진 연방정부의 일자리들이 이제는 한해에도 수차례 직장폐쇄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의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일이다. 의회는 지난달 시퀘스터와 채무 상한 조정 문제가 겹치자 일단 5월 18일까지는 법정 한도를 해제해 미국 재무부가 필요한 지출을 할 수 있게 임시조치 취했다. 하지만 만약 5월 18일까지 의회가 채무 한도를 올려주지 않으면 미국은 국가 부도를 의미하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국가 신용 등급이 강등될 것이다. 부채한도를 상향조정하는 정부의 요청을 의회가 승인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이미 수십차례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그저 통과의례정도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양당이 대립의 각을 세우면서 진통을 겪기 시작했다. 16조 달러가 넘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서 계속 빚을 지도록 허락할 것인지, 아니면 경기가 후퇴하는 커다란 고통을 감수하도라도 더 이상 빚을 지는 일을 이쯤에서 막아야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미국화폐는 가장 믿을만하고 인기가 있는 투자품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할 방법도 없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난 주간에 증시는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고, 실업율도 4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낙관론이 크게 대두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총생산을 넘는 수준의 국가부채와 지속되는 적자재정은 향후 20-30년간의 나라살림이 어떨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새로 빚을 내서 지금의 빚을 갚는 악순환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
시퀘스터,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하인혁 교수의 신앙과 경제] 돈과 믿음 (24)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