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장애인선교회가 얼마전 창립기념 및 헌당예배를 드렸다. 이 단체의 대표인 박모세 목사는 무역회사 수출부장으로 부족함이 없는 시절을 보내던 중 사고로 두 아이를 잃고 아내마저 중증장애인이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 아픔은 그의 아버지의 서원기도를 이뤄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장애인 사역자의 적임자로 키우시고 연단시켜 샬롬장애인선교회를 창립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같은해 9월 한국에서 ‘사랑의휠체어보내기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1차에서 24차까지 휠체어 7,010대와 기타 의료보조기구 30,600여점을 37,000여명의 해외 장애우들에게 보내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는 지금도 장애인들 가운데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휠체어를 보내 세상과 교류하게 하고, 복음을 통해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꿈을 꾼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계기는?
아내와 결혼한 후 통역장교를 거쳐 무역회사에서 수출부장으로 일하며 두 자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살 만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잘 나갔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1989년 8월에 가족 캠핑을 위해 아내가 아이 둘을 태우고 임진각 방향으로 가던 중 맞은 편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공장버스가 경운기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와 아내가 운전하던 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두 딸은 천국에 갔고, 아내는 살아났지만, 목뼈와 신경이 손상되어 어깨 아래가 마비됐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받아 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때 제가 아기였을 때 생명이 위태로운 저를 위해 저의 아버지께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다음해인 1990년 기독신학교(현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사고 후 아내는 2년동안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야간으로 신학을 공부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직장과 학교, 병원, 집을 오가는 경로까지 평탄하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고 어떻게 해 오셨습니까?
신학교 3학년 때 아내를 돌보면서 제가 과연 일반 목회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물리치료를 받는 병원에서 장애인들을 600여명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특수선교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장애인을 잘 섬기기 위해서 93년 목사안수를 받고, 도미해 칼스테이트주립대 노스리지에서 ‘근육운동학’을 공부했고, 1997년도에 매스터스세미너리(The Master’s Seminary)에서 M.Div.를 졸업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고 후 10여년의 세월 동안 저를 훈련시켜서 1999년 6월에 선교회를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장애인 사역을 장애인이 맡아서 하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둘 다 장애인이면 기동력이 없고, 여러모로 힘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주신 것 같습니다. 처음 제가 장애인이 아니니 장애인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제일 중증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밝게 사며 장애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빛이 되어 주니 이후에는 저희의 마음을 알아주고 잘 따라줬습니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고, 가족들 또한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의 아픔은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더 큽니다. 제 아내같은 경우는 부자유함과 감각이 없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땀이 나지 않아, 특히 여름에 더 힘들었습니다. 또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 또한 간병하는 입장에선 케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간병이 얼마나 어렵냐면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장애인 가족들은 불화를 겪습니다. 미국의 부부 중 한 사람이 장애를 입으면 80에서 90%가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왜 휠체어를 보내며, 미국에도 장애인들이 많은데 왜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휠체어를 보내나요?
휠체어는 장애인같이 바깥 출입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깥 세상과 교류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기동력을 줄 수 있으니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의료 혜택이 좋습니다. 휠체어도 다 지원이 되고, 의료 쪽으로는 아쉬운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장애인들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국에서 국산 휠체어를 사용해 보니 비싸지만 오랫동안 사용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1999년 6월에 선교회를 세우고 얼마되지 않아 9월부터 미국장애인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1차 휠체어보내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휠체어를 보냈고, 이후에는 중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에 휠체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들에게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알려 이 운동을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인교회들의 지원을 통해 지금 24차까지 휠체어 7,010대와 기타 의료보조 기구 30,600점을 보냈습니다.
-이 외에는 어떤 사역이 있나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샬롬장애센터에서 예배드리는 예배사역이 있고, 선교회 회원 및 봉사자들과 지역교회 권사님들을 주축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저희 센터 재활실에 모여 중보기도모임을 갖고 있으며, 미용사 두 분이 목요집회 전에 장애회원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한의사분들은 침술이나 한방치료로 돕고 계십니다.
지역사회 장애인들을 섬기기 위해 주5일동안 재활운동실과 다용도 재활실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개방합니다. 매해 5월에는 경로잔치사역, 매해 6,7월에는 장애인가족 초청 야유회를 실시합니다. 또 찬양팀을 구성해 장애인들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장애인 가족수련회를 실시하고, 매년 성탄절을 맞아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뿐 아니라 가족 중 선별해 장학금을 수여합니다.
-이미 재활운동실을 주 5일이나 개방하고 있는데 나아가 광고까지 내면서 알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희 표어가 ‘찾아 내어(Search) 섬긴다(Serve)’입니다. 장애인들은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숨겨져 있고, 숨어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뽑은 통계를 보면 한 국가의 인구 중 장애인 비율을 10%로 보는데 미국은 15%로 본다고 합니다. 예로 북한은 3%, 중국은 5%로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10%로 봅니다. 그럼 인구가 50만이라면 장애인 수는 5만일 것입니다. ‘남가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장애인들은 다 어디에 있나?’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본인들이 나오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가족들이 장애인을 외출시키는데 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저같은 경우도 아내를 외출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데에 3~4시간 가량 걸립니다. 씻겨줘야 하고, 운동시켜 줘야 하고, 옷 입혀 주는 등 나오기까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은 누워서 많이 지내게 되고, 그러다 욕창도 생기고, 병이 더 생기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광고하는 것은 주 5일 재활운동실을 개방하는 동안 숨어 있는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체 건물을 얻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실 자체건물에 대한 비전은 10여년 전부터 주셨습니다. 그러다 실질적으로 작년, 지금 입주한 이 건물을 찾게 됐습니다. 이 건물은 95년된 허름한 창고건물이어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고, 지난 4월말에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2층이나 3층에서 지냈는데 잦은 엘리베이터 고장과 에어컨 고장으로 정상인은 이해할 수 없는 큰 고통이 많았습니다.
-이번 사랑의휠체어보내기 기금마련 음악회인 ‘휠체어사랑이야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부터인지 한인교회의 지원금이 크게 줄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음악회를 통해서 기금을 모으자는 것입니다. 2003년부터 음악회를 통해서 기금을 마련해 왔습니다. 금년은 9번째 음악회로 윌셔연합감리교회에서 오는 7월 8일 주일 오후 7시 저의 독창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세계인구 70억 중 7억에 해당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단체가 거의 없습니다. 이들도 구원받아야 하는데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고, 환경이 좋은데도 장애인 크리스천이 10%도 안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이 1%도 구원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교회에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장애인들이 6억여명이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금 휠체어보내기운동을 통해 사역할 수 있는 것도 다 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저희 선교회를 지원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 센터가 장애인들이 마음껏 내집처럼 교제하고, 예배드리며, 재활운동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전세계의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뿐 아니라 복음까지 전하는 것이 비전이고 꿈입니다.
후원문의 213-731-7724
하지만 이 아픔은 그의 아버지의 서원기도를 이뤄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장애인 사역자의 적임자로 키우시고 연단시켜 샬롬장애인선교회를 창립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같은해 9월 한국에서 ‘사랑의휠체어보내기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1차에서 24차까지 휠체어 7,010대와 기타 의료보조기구 30,600여점을 37,000여명의 해외 장애우들에게 보내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는 지금도 장애인들 가운데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휠체어를 보내 세상과 교류하게 하고, 복음을 통해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꿈을 꾼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계기는?
아내와 결혼한 후 통역장교를 거쳐 무역회사에서 수출부장으로 일하며 두 자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살 만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잘 나갔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1989년 8월에 가족 캠핑을 위해 아내가 아이 둘을 태우고 임진각 방향으로 가던 중 맞은 편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공장버스가 경운기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와 아내가 운전하던 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두 딸은 천국에 갔고, 아내는 살아났지만, 목뼈와 신경이 손상되어 어깨 아래가 마비됐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받아 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때 제가 아기였을 때 생명이 위태로운 저를 위해 저의 아버지께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다음해인 1990년 기독신학교(현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사고 후 아내는 2년동안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야간으로 신학을 공부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직장과 학교, 병원, 집을 오가는 경로까지 평탄하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고 어떻게 해 오셨습니까?
신학교 3학년 때 아내를 돌보면서 제가 과연 일반 목회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물리치료를 받는 병원에서 장애인들을 600여명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특수선교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장애인을 잘 섬기기 위해서 93년 목사안수를 받고, 도미해 칼스테이트주립대 노스리지에서 ‘근육운동학’을 공부했고, 1997년도에 매스터스세미너리(The Master’s Seminary)에서 M.Div.를 졸업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고 후 10여년의 세월 동안 저를 훈련시켜서 1999년 6월에 선교회를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장애인 사역을 장애인이 맡아서 하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둘 다 장애인이면 기동력이 없고, 여러모로 힘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주신 것 같습니다. 처음 제가 장애인이 아니니 장애인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제일 중증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밝게 사며 장애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빛이 되어 주니 이후에는 저희의 마음을 알아주고 잘 따라줬습니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고, 가족들 또한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의 아픔은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더 큽니다. 제 아내같은 경우는 부자유함과 감각이 없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땀이 나지 않아, 특히 여름에 더 힘들었습니다. 또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 또한 간병하는 입장에선 케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간병이 얼마나 어렵냐면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장애인 가족들은 불화를 겪습니다. 미국의 부부 중 한 사람이 장애를 입으면 80에서 90%가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왜 휠체어를 보내며, 미국에도 장애인들이 많은데 왜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휠체어를 보내나요?
휠체어는 장애인같이 바깥 출입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깥 세상과 교류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기동력을 줄 수 있으니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의료 혜택이 좋습니다. 휠체어도 다 지원이 되고, 의료 쪽으로는 아쉬운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장애인들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국에서 국산 휠체어를 사용해 보니 비싸지만 오랫동안 사용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1999년 6월에 선교회를 세우고 얼마되지 않아 9월부터 미국장애인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1차 휠체어보내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휠체어를 보냈고, 이후에는 중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에 휠체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들에게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알려 이 운동을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인교회들의 지원을 통해 지금 24차까지 휠체어 7,010대와 기타 의료보조 기구 30,600점을 보냈습니다.
-이 외에는 어떤 사역이 있나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샬롬장애센터에서 예배드리는 예배사역이 있고, 선교회 회원 및 봉사자들과 지역교회 권사님들을 주축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저희 센터 재활실에 모여 중보기도모임을 갖고 있으며, 미용사 두 분이 목요집회 전에 장애회원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한의사분들은 침술이나 한방치료로 돕고 계십니다.
지역사회 장애인들을 섬기기 위해 주5일동안 재활운동실과 다용도 재활실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개방합니다. 매해 5월에는 경로잔치사역, 매해 6,7월에는 장애인가족 초청 야유회를 실시합니다. 또 찬양팀을 구성해 장애인들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장애인 가족수련회를 실시하고, 매년 성탄절을 맞아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뿐 아니라 가족 중 선별해 장학금을 수여합니다.
-이미 재활운동실을 주 5일이나 개방하고 있는데 나아가 광고까지 내면서 알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희 표어가 ‘찾아 내어(Search) 섬긴다(Serve)’입니다. 장애인들은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숨겨져 있고, 숨어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뽑은 통계를 보면 한 국가의 인구 중 장애인 비율을 10%로 보는데 미국은 15%로 본다고 합니다. 예로 북한은 3%, 중국은 5%로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10%로 봅니다. 그럼 인구가 50만이라면 장애인 수는 5만일 것입니다. ‘남가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장애인들은 다 어디에 있나?’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본인들이 나오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가족들이 장애인을 외출시키는데 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저같은 경우도 아내를 외출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데에 3~4시간 가량 걸립니다. 씻겨줘야 하고, 운동시켜 줘야 하고, 옷 입혀 주는 등 나오기까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은 누워서 많이 지내게 되고, 그러다 욕창도 생기고, 병이 더 생기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광고하는 것은 주 5일 재활운동실을 개방하는 동안 숨어 있는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체 건물을 얻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실 자체건물에 대한 비전은 10여년 전부터 주셨습니다. 그러다 실질적으로 작년, 지금 입주한 이 건물을 찾게 됐습니다. 이 건물은 95년된 허름한 창고건물이어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고, 지난 4월말에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2층이나 3층에서 지냈는데 잦은 엘리베이터 고장과 에어컨 고장으로 정상인은 이해할 수 없는 큰 고통이 많았습니다.
-이번 사랑의휠체어보내기 기금마련 음악회인 ‘휠체어사랑이야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부터인지 한인교회의 지원금이 크게 줄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음악회를 통해서 기금을 모으자는 것입니다. 2003년부터 음악회를 통해서 기금을 마련해 왔습니다. 금년은 9번째 음악회로 윌셔연합감리교회에서 오는 7월 8일 주일 오후 7시 저의 독창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세계인구 70억 중 7억에 해당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단체가 거의 없습니다. 이들도 구원받아야 하는데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고, 환경이 좋은데도 장애인 크리스천이 10%도 안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이 1%도 구원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교회에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장애인들이 6억여명이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금 휠체어보내기운동을 통해 사역할 수 있는 것도 다 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저희 선교회를 지원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 센터가 장애인들이 마음껏 내집처럼 교제하고, 예배드리며, 재활운동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전세계의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뿐 아니라 복음까지 전하는 것이 비전이고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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