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첩을 열면 ‘오 주님 오늘 밤도 꿈 없이 잠자리에 들지 않고, 내일 아침도 꿈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라는 글이 있다. 나는 하루 하루를 ‘나는 꿈이 있다’라고 마음 속에 다짐하며 꿈쟁이로 살아간다”

올랜도 충현교회 김석원 목사의 저서 ‘1달러의 기적, 플러스(Plus), 플러스(Plus)’의 첫 페이지 문구는 이렇게 시작된다. 건축할 돈 한 푼 없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1만 평의 대지를 1달러에 구입하고 폐허와 다름없던 땅을 아름다운 성전으로 바꾸기까지 꿈을 잃지 않고 달려온 김석원 목사의 좌우명이 잘 드러나 있는 문구다.

김석원 목사는 지난 4월14일 미국 뉴욕을 방문, 일주일간 일정을 보낸 뒤 21일 플로리다 올랜도로 복귀했다. 김석원 목사는 뉴욕에서 신광교회(담임 한재홍 목사), 낙원장로교회(담임 황영진 목사), 한인동산장로교회(담임 이풍삼 목사) 등을 순회하며 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RCA 교단 관계자들과 만나 글로벌 기도학교(GPS: Global Prayer Schools) 사역의 활성화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김석원 목사는 기독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이민현장 가운데 있는 이민교회 성도들과 이민목회자들이 ‘희망’을 놓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 ‘1달러의 기적’의 내용을 기반으로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역경과 희망에 대한 간증 내용을 정리했다.

1달러의 기적이 시작된 순간

▲김석원 목사는 뉴욕방문 기간 중 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석원 목사의 저서 ‘1달러의 기적’은 국민일보에 2004년 15회 연재된 김석원 목사의 간증을 엮은 책으로, 지금도 많은 한인교회와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김석원 목사는 지난 3월에는 한국을 방문해 CTS 등 방송에 출연해 그의 사역을 알렸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초청돼 간증을 전하기도 했다.

‘1달러의 기적’은 불교 내력의 집안에 장손으로 태어난 김석원 목사가 뜻하지 않게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김석원 목사는 1981년 충현교회 전도사로 섬기던 시절 LA로 유학길을 올랐다. 좀 더 배우기 위한 유학길이 플로리다에서 1달러의 기적을 쓰기 초석인 것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

80년대 이민 분위기가 그렇듯 김석원 목사는 못 먹고 못 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가족이 함께 살 형편이 못돼 김석원 목사는 LA학교 기숙사에, 아내와 아들은 텍사스 처형댁에 얹혀 지냈다. 기숙사 음식도 형편이 없어 가끔 미국인 친구 차를 얻어 타고 햄버거 가게에서 ‘빅맥’ 하나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플로리다 올랜도에서의 사역은 정말 뜻하지 않게 일어난다. 한국에서부터 CCC에 몸담았던 아내로 인해 플로리다 국제 CCC본부를 자주 방문하게 되는데, 지금의 올랜도 충현교회 부지가 된 1만평의 땅은 당시 국제 CCC본부와 1Km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과거 반듯한 교회의 부지였던 그곳은 교회의 예배방식 논란으로 인해 1981년 교회가 폐쇄됐고 이후에는 집 없는 사람들과 마약중독자들의 범죄소굴이 되면서 폐허로 변했었다. 주민들의 진정으로 인해 교회 건물은 철거되고 십자가 탑만 남았고 1만평의 대지는 잡초와 쓰레기로 무성하던 곳이다.

김석원 목사는 국제CCC본부를 방문할 때면 이 폐허가 된 장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장소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그 때까지도 플로리다에 사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공산권에서 교수로 활동한다는 사역 구상을 완성한 상태기 때문이다. 그저 1만평의 과거 교회부지가 폐허가 된 것이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그 1만평의 대지가 단돈 1달러로 김석원 목사에게 주어진 기적은 김석원 목사 부부가 마침 RCA노회에 우연히 참석하면서 일어났다. 당시 노회로서도 골치였던 그 땅을 팔려는 안건이 그날 노회의 주요의제였고 김석원 목사는 이런 내용도 모른 채 참석했다가 그 땅이 자신이 평소 하나님의 성전으로 다시 세워지길 기도했던 땅인 것을 알게 됐고 그 땅을 팔아선 안 된다는 막연한 생각에 땅을 매매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노회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인 목회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노회 관계자들은 따로 모여 회의를 열고 1만평의 대지를 1달러에 김석원 목사에 넘기게 된다. 1달러의 기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김석원 목사는 그 1달러를 지금도 간직하면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진정한 기적을 교회건축 진행 과정에서 겪어

김석원 목사가 미국에 온 것이 1981년 가을이었고 이 교회가 문을 닫은 것도 1981년 가을이었다. 김석원 목사는 ‘어쩌면 하나님은 이 땅을 주시려고 지난 15년 동안 나를 여러 모양으로 연단하셨는지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김석원 목사는 아내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진정한 기적은 그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RCA 교단 지도부들이 게스트 하우스로도 이용할 수 있는 지금의 다목적 시설이 세워지기까지가 진정한 고난과 기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석원 목사는 금전적인 기반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성전을 완공하기까지 직접 성도들과 함께 건축에 뛰어들어 직접 굴삭기를 운전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들을 저서에 적고 있다.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하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김석원 목사는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책에 미처 다 적지 못한 건축과정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가운데서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 비교할 수 없이 너무도 큰 것이었다.

▲RCA 한인 총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석원 목사는 뉴욕방문 중 RCA 교단 목회자들과 만나 교류를 가졌다.
김석원 목사가 교회건축에 직접 나서자 그나마 교회에 모였던 성도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6명만이 남게 됐다. 1만평의 대지를 1달러에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지역 신문은 사기극이라고 비난하기도 했고, 성도들 중에도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어 교회가 혼란을 겪었다. 결국 남아진 인원은 6명, 김석원 목사는 그 6명의 성도들과 함께 1만 평 대지를 청소하고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리며 지금의 올랜도 충현교회를 가꾸게 됐다. 플로리다는 한인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곳이다. 또 교회가 위치한 곳의 주변은 한인 거주지역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가 반듯하게 세워진 교회가 운영되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성장 중에 있다.

김석원 목사는 목회자들 중에 흔히 어장을 탓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고 했다. 목회는 자신이 있지만 어장을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그러나 김석원 목사는 “영적인 물고기를 잡을 때는 풍랑 가운데서도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석원 목사는 플로리다에서의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장을 탓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실을 탓하기 보다 꿈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 김석원 목사의 말이다.

놓치지 않는 꿈...결국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어져

성도가 10명도 안 되는 교회, 인력과 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수준의 교회, 그런 교회가 1만평 대지 위에 성전을 완공하겠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김석원 목사도 교회건축을 앞두고 한차례 환란이 닥치자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전건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은 늘 포기하지 않는 꿈을 통해 일어났다.

올랜도 충현교회의 경우 당초 예상했던 총 건축비가 18만 달러였다. 교회 건축도 건축이지만 당장 예배드릴 장소가 필요했다. 올랜도 충현교회의 첫 예배처소는 김석원 목사가 잔디를 깍는 도중 안내 받게 된다. 비가 자주 오고 볕이 강한 플로리다의 특성상 잔디를 정리하는 것은 굉장한 노동이다. 1만평 대지를 가꾸기 위해 김석원 목사는 매일 땀을 비오듯 흘리며 일했고 하루는 너무 목이 말라 주변 집에 물 한잔을 청했다. 폐허가 된 땅이 잔디밭으로 가꾸어지니 인근 가구들이 매우 호의적이었다. 집 주인은 물 한잔을 건네며 1만평 부지 코너에 옛날 목회를 했던 부부가 살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 이 은퇴 목회자 부부를 찾아가서 집을 예배처소로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했던 이 목회자 부부는 나중에 집을 김석원 목사에게 파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성전건축 초기비용 18만불 중 6만불은 노회에서 무이자로 대출해주기로 했기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돈이 문제였다. 6명 밖에 되지 않는 성도들이 의견을 모았다. 성도들이 2만 불을 모으고 김석원 목사도 2만 불을 모으고 2만 불은 대출을 받는 방법이었다. 당장 은행대출을 받는 것이 쉬울 수 있었지만 김석원 목사는 무조건 은행대출을 받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모함과 믿음은 구분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석원 목사는 교회가 은행 빚을 절대 지지말자는 것이 원칙이었고 이 원칙이 지금의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었던 근간이 됐다고 한다. 김석원 목사는 성도들의 결정에 따라 당장 2만 불을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당시 국제CCC에 사역하던 아내도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건축자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해도 건축예산에서 6만 불이 부족했다. 건물의 외곽만 짓고 내부는 거의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6만 불은 뜻하지 않게 채워지게 된다. 노회 내에서는 1만 평 부지를 1달러에 넘긴 후 과연 김석원 목사가 성전건축을 끝내고 목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런 정서 가운데 플로리다주 총회를 앞두고 노회 관계자가 올랜도 충현교회를 찾았다. 교회건축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그 노회 관계자는 김석원 목사의 생활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게 된다. 건축 중인 성전에는 입주가 불가능해서 김석원 목사 부부는 1만평 부지 코너에 위치한 집에서 쪽방을 얻어 겨우 지내고 있었다. 그 집은 전체를 예배당과 교육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희생적인 모습에 노회 관계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노회 관계자는 돌아가는 길에서 “김석원 목사, 당신의 믿음 계산이 나를 감동시켰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2주 뒤에 6만 불 체크가 배송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건축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당초 18만 불로 예상했던 건축예산은 내부 인테리어와 주차장, 잔디 관리비용 등은 계산되지 않고 건축 외형을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물류가격의 변동도 컸다. 결국 다시 계산했을 때 공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드는 전체예산은 30만 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도 한계에 달할 정도로 힘든 건축 과정을 밟았는데 정말 더 이상 발을 내딛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도 김석원 목사의 꿈은 큰 힘을 발휘했다. 올랜도 충현교회가 단순한 예배당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RCA 목회자들의 수양시설이 될 수 있는 다목적 건물로 지어지는 것을 본 RCA 교단 지도부가 대출을 결정한 것이다.

▲올랜도 충현교회의 십자가 탑. 폐허와 같은 대지에서 이제는 지역 명물이 된 올랜도 충현교회는 처음 품었던 큰 꿈을 안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 RCA 교단 지도부 관계자는 올랜도 충현교회 건축현장을 방문해 성전을 찬찬히 살펴봤다. 이 관계자가 성전 안에서 전기 코드를 찾는데 한 두개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샤워 시설만도 3개에 이르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수양관의 형태로 지어지는 것을 보게 됐다. 결국 이 관계자는 김석원 목사에게 “당신의 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당신은 꿈쟁이”라고 말해줬다. RCA 교단 지도부 200명이 플로리다에 자주 방문하는데 김석원 목사는 성전건축을 시작하면서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교회를 사용하겠다는 구상을 한 것이었다. 결국 감동한 RCA 교단 지도부는 추가로 13만 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꿈이 꿈을 이루는 발판이 된 것이다.

초기 성전건축이 진행되면서 올랜도 충현교회 예배당으로 사용한 모퉁이 집의 집세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의 연속이다. 바로 프로 골퍼 최경주 선수가 방문 1년치 렌트비를 헌금한 것이다. 건축 초기에 올랜도 충현교회는 별도의 홍보나 광고도 없이 다만 인터넷에 교회 주소만 등록했는데도 어느 날 최경주 선수는 이 곳을 방문해 예배를 함께 드렸다. 6명의 성도만 있는 교회에 1만평 부지 위에 성전이 건축되는 것을 보고 신기함을 느낀 최경주 선수는 부지 위를 한바퀴 돌더니 김석원 목사에게 5천불 체크를 주며 좋은 일에 써달라고 했다. 집세가 무척 절실하던 절묘한 타이밍에 있었던 일이다. 최경주 선수는 이후에도 며칠 플로리다에 머무는 동안 김석원 목사를 한차례 초청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고 감사의 표시로 5천 불을 헌금했다. 건축 초기 집세마저 막막하던 고민을 일시에 해결한 것이다.

김석원 목사 “하나님 주신 꿈 끝까지 붙들라”

이런 우여곡절과 그 과정에서의 기적과 같은 역사를 겪으며 완공된 올랜도 충현교회는 현재 예배당 외에도 도서실, 휴게실, 세미나실, 샤워실, 숙소, 체육시설 등의 다목적 휴향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RCA교단 관계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치유와 안정이 필요한 목회자, 선교사들의 영적재충전센터인 김치(KIMCHE · Korean International Mission & Church for Heart Expansion)선교회의 시설이 되기도 한다. 김석원 목사가 한국에 있을 당시 관계했던 고신대와 충현교회 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이 지내기도 한다.

김석원 목사는 이 밖에도 올랜도에 한국인 선교사 자녀교육을 위한 선교센터를 세워 미래 지구촌 영적 지도자를 키우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또 젊은 청년들대학생과 교회 영적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 ELDN(Equipping Leaders to Disciple the Nations)라는 사역도 펼치고 있다.

김석원 목사는 “현재 제가 사는 이곳 올랜도는 세계적인 선교단체인 CCC 국제본부가 얼마전까지 있었던 곳이고, 현재도 위클리프 미주본부, 뉴트라이브 미션(NTM) 본부가 있는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또 세계적인 최고의 관광지 월트 디즈니 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NASA의 우주발사대가 있는 곳으로 꿈과 환상의 도시”라며 “이 땅은 하나님께서 그때 갖게 하신 꿈을 이루기 위해 허락하신 곳이기에 그 꿈을 향해 끝까지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기도학교 소개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4e5rhnK0jRI
올랜도 충현교회 홈페이지 http://www.kimch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