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란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고 다른 수식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명숙 대표의 말이다. ‘한명숙 대표는 진실한가’를 바라보며 지나간 신문 조각들을 맞추어 본다. 결론적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한명숙 대표는 2006년 7월 6일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할 때 한국측 협상 대표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인 만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 시위에 대해서는 “국익 차원에서 시위를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경련 등 재벌을 대변하는 경제 단체들을 만나서는 “경제계가 적극적으로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는데 노력해 달라. 국회와 한미 FTA 특위 참여 등 다양한 체널을 통해 협상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 해 달라”(2006년 8월 30일)며 지원 사격을 요청하기도 했다.

2006년 11월 24일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문에서는 한명숙 당시 총리가 “정부는 불법폭력 집단행위에 대해 주동자뿐만 아니라 적극가담, 배후 조정자까지 철저히 밝혀내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겠다”라고 발표했었다.

정동영 의원은 2006년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가 완성되면 향후 50년간 한-미 관계를 지탱 해 줄 두 번째 기둥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발언했었다.

“한미 FTA는 ‘제2의 개항’이라 불릴 큰 사건”이라고도 언급했다. 그러다가 최근엔 “참여정부시절 한미 FTA 추진은 당시 무지했음을 반성한다”고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단호했다. 핵심 지지층이던 진보 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밀어 붙였다. 미국과의 협상도 명분이나 안보 동맹을 뛰어넘어 철저하게 ‘장사꾼’ 논리로 접근을 시도했다. 2006년 1월 새해 연설에서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뒤로 미루지 않고 반드시 해 내겠다. 미국과도 FTA 협정을 맺어나가야 한다. 개방은 불가피 하다. 어차피 뛰어들 것이라면 남보다 먼저 해야 앞서 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1년여 동안 힘겨운 줄다리기를 거쳐 타결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반미면 어때? 두둘겨 맞더라도 국가를 위해 할 일은 한다”라는 국정 철학을 지녔다. 청와대 내부에서 추진 세력의 버팀목이었던 문재인 고문은 “노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문 고문에게 뭐라고 조언 할까? 노 대통령이 서거 6개월 전 ‘우리경제는 수출을 빼고는 성장을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 ‘민주주의 2.0’에 올린 글이다.

이 지상에서 새빨간 거짓말쟁이는 북한의 김정일 공산 체제뿐이다. 저들은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독재자요 공산 지도자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씨가 거짓말을 잘하더니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란 분도 거짓말의 명수가 되였다. 온 국민이 그 배경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런 정당에게 차기 정권을 물려 줄 수 있겠는가?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한덕수 주미대사가 부임하신 후 동분서주하며 미 의회에 FTA 성사를 위해 뛰는 것을 눈으로 보며 큰 감명을 받은 적이 많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던 분이 주미 대사직을 사임한다고 한다. 그간 노고에 교민으로써 한미애국단체로써 경의를 표한다. 그는 말하기를 한미 FTA가 발효되면 앞으로 5년 내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 GDP는 5%가 성장하게 될 것이고 세수가 100억 달라(10조원) 정도는 늘 것이라 하면서 이 돈이 FTA 이행 과정에서 혹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분들에 대한 교육과 재훈련을 위한 지원 재원으로 충분이 활용 할 수 있을 거라고 언급하셨다.

한미 FTA는 국내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경제적 외교적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FTA가 폐기된 전례는 없었다. 국민이 선출한 현 정권이 경제발전과 국가 장래를 위해 협정을 채결했다. 상대방의 요구로 자동차 부분만 추가 손실이 발생했다지만 제약이나 농축산에서는 추가 이익을 얻어 이익의 균형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농축산 등 피해 산업을 지원해 향후 2조원을 쓰기로 하는 등 보탬이 되도록 했다. 야당과 일부 시민세력이 반대에 대한 충분한 토론도 1년 가까이 갔었다. 의회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비준안이 처리 되었을 때 세상에 부끄러운 일은 선량인들이 국회에서 해머를 들고 국회 문을 부수는 사람, 최류탄을 터뜨리는 난국은 차마 꼴불견이었다.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 시위가 재연 되는 것 같았다. “미국의 식민지” “을사늑약” 같은 극단적 이념적 구호도 등장하였다.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드는 너무나 위험한 협정이라고 몰아 부쳤다. 그 한가운데서 한명숙 대표와 통합당은 2월 8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폐기 서한을 보내겠다고 소리치며 미 대사관을 찾아가 반대 시위를 하는 저들이 이성적이냐. 저들의 사상적 뿌리가 의심스러워진다. 만일 좌파라면 FTA도 반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국제적 왕따를 만들 것인가?

3월 말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핵 안보정상회의를 반대하겠다고 한다. 원전도 폐기해야 하고 제주 해군기지 공사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온다. 그러나 저들은 북한 핵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사상을 훑어 보자. 남편 박성준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과 관련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 받고 그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었다. 한 전 총리는 반공법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1년, 자격정지 1년형을 받은바 있었다. 당시 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 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한명숙은 그의 저서 머릿말에서 한명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명숙의 삶의 진실을 찾아보는 것이다. 출생지는 평양시 이며 가족관계는 남편 박성준(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겸임 교수요 아들은 박한길이다. 지금 한국민들은 말 바꾸기의 달인이라고 논란이 거론되고 있다. 2003년 8.19 노무현은 “8.15국민대회에서 북한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운 것을 문제 삼자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운 것은 적절치 않다. 유감스러운 일이고 사과했다.

노무현은 2003년 6.13일 일본 가서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 말했다. 2003년 7.10 중국에 가서 우리의 통일을 저지하고 우리를 공격했던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인의 부친은 경남 창원군 군당 부위원장으로 인민재판을 열어 11명의 주민을 학살한 죄로 국가보안법을 적용받아 무기징역을 받아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국가 보안법을 폐지를 주장하고, 2004년 3.1 용산기지를 가리켜 간섭과 침략의 상징이라고도 하였다. 그가 추락사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한명숙 대표는 노무현 추락사 2주기에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깔아 놓고 짓밟고 서 있는 사진이 인터넷 공간에서 포착 되었다. 많은 애국자들이 국기모독죄라고 몰아부쳤다. 2011년 5.23.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깔아놓은 대형 태극기를 밟고 서서 태극기 중앙에 세운 ”고 노무현 추모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는 그에게 대해 형법 제105조의 국기 국장 모독죄로 처벌 받아야 마땅하고 빨갱이들의 소행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진다”고 네티즌들이 말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태극기 위에 그 더러운 노무현 추모비를 설치했을까? 한명숙과 노무현의 일당들의 사상적 배경을 도출한 것이 아닐까? 일국의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이 이런 일을 한 것이 충정심에서 일까. 나라와 국민을 비웃는 일에서 일까. 그의 행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빨갱이공화국을 만들지 말아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다. 정신 차리고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잘 분별하여 심판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