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머니..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 4형제. 다섯 남자만 살던 외롭고 작은 외딴 집에
어머니께서 환한 웃음으로 찾아오셨던 처음 그 날을 기억합니다.
어머님은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위해 보내주신 사랑과 구원의 천사이셨습니다.
주춤거리며 얼굴도 들지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선뜻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했던 저희들을
조용한 미소로 기다리시며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가슴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에서
평생 어둡게 살아오신 아버님의 인생에 비로서 아침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 곁에서 기댈곳 없으셨던 아버님의 마음이 두꺼운 어둠을 깨고 안정을 찾으셨습니다.
지치고 피곤했던 아버님의 영혼에 희망과 기쁨의 날들이 하루 하루 늘어갔습니다.
저희는 보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어머님 곁에서 생의 마지막 행복을 느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춘기 방황의 끝에 서서 거친 저항을 계속했던 네 아들의 힘겨운 날들.
어머니의 포기할 줄 모르시던 사랑과 오랜 기다림과 기도는
마침내 한 아들, 한 아들..어머님 품으로, 어머님이 계신 집으로 찾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머님 흰머리가 늘어가고, 주름살이 더해지고
어머님의 기도소리가 더 길어지던 날들이 지나가서야 네 아들이 긴 방황을 끝나고,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운명의 거친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몸뚱이로 배고픈 그리움으로 어머님곁으로 이제야 돌아왔는데
어머님은 모두가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셨던 것처럼
이렇게 서둘러 저희 네 형제만 남겨두고 길을 재촉하셨습니다.

어머니..
큰아들을 목회자로 서원하시고, 언제나 무릎을 꿇고 함께 그 길을 동행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큰아들의 방황을 조용한 침묵으로 홀로 감당해주셨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목회의 이상주의에 빠져, 헛된 꿈을 꾸며
어느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큰 아들을 말없이 미소로 바라보셨습니다.
목회의 새로운 제도를 만들겠다며 큰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집안 어른들께 커다란 쓸쓸함을 남기고
사랑하는 동생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를 남기고
사랑하는 수많은 교우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만을 남기고
사랑하는 동료 목회자들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못한 미련한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저를 용서해주세요.
어머님께 마지막 옷을 입혀드리면서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 사람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조금만 더 같이 살면 안되겠니” 혼잣말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
조금 더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님은 마지막 죽음으로서 제게 큰 선물을 남겨주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동안 만나고 사랑하고 섬겼던 모든 분들을...그리워했던 분들을...
이렇게 어머님 앞에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시고, 짧은 시간에 모두를 만나게해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자리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임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제게 그분들과의 그리운 만남을 선물로 남겨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곁에서 편히 쉬세요.
무너져버린 저희 다섯 남자의 인생을 아름답게 회복해주셨습니다.
어머님의 작은 손이 거칠어질 때까지..부드러우셨던 그 마음이 다 헤어질 때까지
모든 사랑을 다해, 인내를 다해, 하루종일 기도하시면서 다섯 남자를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가정에 보내주신 주님의 천사이셨습니다.
어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셨던 어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제가 어머님과 집안어른들과 모든 분들게 너무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어머니..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기도해주세요.



3월28일 발인예배에서.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 제공 조경호 목사(산호세 중앙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