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
Ⅱ. 성화와 기독자의 완전
1. 인간의 완전한 성결은 순간 순간 주를 의지함으로 이뤄진다
웨슬리의 주장대로 성결한 신자도 무지, 실수의 가능성 등 인간의 연약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을 때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성결(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 있어서 많은 학자들이 웨슬리가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을 말한다고 비판한다. 웨슬리는 주장하기를, 성결한 신자는 무지, 실수의 가능성 등 인간의 연약성을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정죄함 없이 거룩한 자(성도)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사람이 그런 연약성을 지니고 죄악된 세상에서 살려면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실상 범죄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웨슬리의 성결론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성결론자들은 ‘실수는 죄가 아니다’라고 변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자 모두 웨슬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변론이다. 웨슬리의 신학 방법론을 이해 못하고서는 이런 질문이나 반론에 답할 수 없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짓는 죄, 곧 유의적 죄를 주로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신자가 무의식 중에 범하는 허물도 죄라고 인정한다. 이를 전자와 구분하여 ‘무의적 죄’라고 불렀다. 이 죄는 자신이 알았던 몰랐던 간에 하나님의 법을 범한 허물이다. 이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 없이는 하나님의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혹자가 웨슬리는 자범죄만을 인정하고 무의적 죄는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어찌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결의 은혜를 받은 완전한 기독자도 그들의 연약성으로 인하여 무의식 중에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완전한 자라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그러면 웨슬리의 견해가 신자는 의롭다 함을 받아도 동시에 죄인이라는 루터의 주장과 같다는 것인가. 신자는 성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서 양자의 입장이 아주 흡사한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웨슬리는 논리적인 추리나 추상적인 접근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인간론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속론적인 콘텍스트에서 무의식 중에 범죄하는 신자의 무의적 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결한 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순간 순간 의존할 때마다 그가 무의식 중에 범하는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씻는 것이다. 그래서 성결을 유지하게 된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죄에서 계속 씻으시는 것이다.
웨슬리는 무의식 중에 범하는 허물과 믿는 자에게 효험이 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의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함을 강조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칼빈주의자들보다는 더 깊이 그리고 다이내믹하게 본 것이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의 차이는 우리의 생명력 있는 눈과 물질인 안경에 적절히 비유된다. 안경은 아무리 철저히 물로 닦아서 써도 조만간 먼지가 앉는다. 그러므로 도저히 안경의 청결함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물질을 다루듯이 이 교리에 접근하면, 신자는 순간적으로 씻음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성결을 유지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눈은 먼지가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눈은 정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먼지가 눈에 안 들어와서가 아니라 눈에는 눈물이 항상 흘러 먼지를 씻고 있기 때문이다. 성결한 자가 자신의 연약성 때문에 무의식 중에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그가 그리스도를 계속 의지함으로 주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성결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웨슬리의 이해는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조종남 박사
1927년 경기도 연백군에서 출생한 조종남 박사는 서울신학교와 숭실대 철학과를 거쳐 미국 애즈베리 신학교와 미국 에모리대학교 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철학박사(Ph.D.)를 각각 취득했다. 이후 계속적인 연구활동으로 1987년 미국 아주사 퍼시픽대학교에서 명예인문학박사학위(H.L.D.), 2001년 에즈베리 신학교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D.D)를 수여받았다.
1967년 서울신학대학에 교수로 부임한 이래, 서울신학대학 제3~6, 9대 학장, 대한성서공회 회장, 세계복음주의 신학위원회 위원, 세계복음화 아시아 로잔위원회 회장, 세계복음화 로잔 국제위원회 부회장, 88년 올림픽 선교협의회 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이사장, 한국웨슬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Ⅱ. 성화와 기독자의 완전
1. 인간의 완전한 성결은 순간 순간 주를 의지함으로 이뤄진다
웨슬리의 주장대로 성결한 신자도 무지, 실수의 가능성 등 인간의 연약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을 때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성결(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 있어서 많은 학자들이 웨슬리가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을 말한다고 비판한다. 웨슬리는 주장하기를, 성결한 신자는 무지, 실수의 가능성 등 인간의 연약성을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정죄함 없이 거룩한 자(성도)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사람이 그런 연약성을 지니고 죄악된 세상에서 살려면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실상 범죄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웨슬리의 성결론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성결론자들은 ‘실수는 죄가 아니다’라고 변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자 모두 웨슬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변론이다. 웨슬리의 신학 방법론을 이해 못하고서는 이런 질문이나 반론에 답할 수 없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짓는 죄, 곧 유의적 죄를 주로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신자가 무의식 중에 범하는 허물도 죄라고 인정한다. 이를 전자와 구분하여 ‘무의적 죄’라고 불렀다. 이 죄는 자신이 알았던 몰랐던 간에 하나님의 법을 범한 허물이다. 이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 없이는 하나님의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혹자가 웨슬리는 자범죄만을 인정하고 무의적 죄는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어찌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결의 은혜를 받은 완전한 기독자도 그들의 연약성으로 인하여 무의식 중에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완전한 자라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그러면 웨슬리의 견해가 신자는 의롭다 함을 받아도 동시에 죄인이라는 루터의 주장과 같다는 것인가. 신자는 성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서 양자의 입장이 아주 흡사한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웨슬리는 논리적인 추리나 추상적인 접근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인간론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속론적인 콘텍스트에서 무의식 중에 범죄하는 신자의 무의적 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결한 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순간 순간 의존할 때마다 그가 무의식 중에 범하는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씻는 것이다. 그래서 성결을 유지하게 된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죄에서 계속 씻으시는 것이다.
웨슬리는 무의식 중에 범하는 허물과 믿는 자에게 효험이 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의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함을 강조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칼빈주의자들보다는 더 깊이 그리고 다이내믹하게 본 것이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의 차이는 우리의 생명력 있는 눈과 물질인 안경에 적절히 비유된다. 안경은 아무리 철저히 물로 닦아서 써도 조만간 먼지가 앉는다. 그러므로 도저히 안경의 청결함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물질을 다루듯이 이 교리에 접근하면, 신자는 순간적으로 씻음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성결을 유지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눈은 먼지가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눈은 정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먼지가 눈에 안 들어와서가 아니라 눈에는 눈물이 항상 흘러 먼지를 씻고 있기 때문이다. 성결한 자가 자신의 연약성 때문에 무의식 중에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그가 그리스도를 계속 의지함으로 주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성결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웨슬리의 이해는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조종남 박사
1927년 경기도 연백군에서 출생한 조종남 박사는 서울신학교와 숭실대 철학과를 거쳐 미국 애즈베리 신학교와 미국 에모리대학교 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철학박사(Ph.D.)를 각각 취득했다. 이후 계속적인 연구활동으로 1987년 미국 아주사 퍼시픽대학교에서 명예인문학박사학위(H.L.D.), 2001년 에즈베리 신학교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D.D)를 수여받았다.
1967년 서울신학대학에 교수로 부임한 이래, 서울신학대학 제3~6, 9대 학장, 대한성서공회 회장, 세계복음주의 신학위원회 위원, 세계복음화 아시아 로잔위원회 회장, 세계복음화 로잔 국제위원회 부회장, 88년 올림픽 선교협의회 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이사장, 한국웨슬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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