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도널드 맥컬로우의 <모자람의 위안>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자신감의 한계는 당신을 두 갈래 길로 데려가, 대단히 의미심장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당신은 두려움이 깊어지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용기가 태동되는 길로 갈 수도 있다.
가장 쉽고 유혹적인 길은 더 이상 실패를 피하는 것이다.
이는 후퇴와 체념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잃으면, 더 이상 모험하지 않는 쪽이 한결 안전해보인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다시 링으로 돌아가지 않는 쪽이 나아보인다. 링에 올라가면 두들겨 맞을게 뻔하고 어쩌면 녹아웃 당할지도 모른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워낙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다 보니, 자신감이 없을 때 이 길을 택하지 않기란 극히 어렵다. 그리고 그 길로 멀리까지 갈수록 다시 돌아오기도 더 힘들다.
다른 길은 어 어려운 반면 그만큼 삶을 새롭게 해 준다.
그 두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 길 밖에 없다.
어쨌거나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감이라곤 고작 벼룩의 간 정도일지 모르나 그래도 당신은 다시 나선다. 실패의 모험을 또 무릅쓴다. 두려움이 불길한 경고를 발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도 모르게 당신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간다. 이렇게 되면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자심감에서 용기로 옮겨간다.
이것이 비틀거리는 자신감의 첫번째 큰 위안이다.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 힘든 도전, 뱃속이 부글거리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도전을 만날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당신은 허리춤을 바짝 올리거나 넥타리를 바짝 졸라매고 다시 시도한다. 말라붙은 줄 알았던 우물레 두레박을 내려, 상상도 못한 그 무엇을 길러 올린다.
용기는 신선한 덕목이다.
콩코드 한인 연합 감리 교회(이 선영 목사) 제공
자신감의 한계는 당신을 두 갈래 길로 데려가, 대단히 의미심장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당신은 두려움이 깊어지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용기가 태동되는 길로 갈 수도 있다.
가장 쉽고 유혹적인 길은 더 이상 실패를 피하는 것이다.
이는 후퇴와 체념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잃으면, 더 이상 모험하지 않는 쪽이 한결 안전해보인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다시 링으로 돌아가지 않는 쪽이 나아보인다. 링에 올라가면 두들겨 맞을게 뻔하고 어쩌면 녹아웃 당할지도 모른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워낙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다 보니, 자신감이 없을 때 이 길을 택하지 않기란 극히 어렵다. 그리고 그 길로 멀리까지 갈수록 다시 돌아오기도 더 힘들다.
다른 길은 어 어려운 반면 그만큼 삶을 새롭게 해 준다.
그 두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 길 밖에 없다.
어쨌거나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감이라곤 고작 벼룩의 간 정도일지 모르나 그래도 당신은 다시 나선다. 실패의 모험을 또 무릅쓴다. 두려움이 불길한 경고를 발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도 모르게 당신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간다. 이렇게 되면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자심감에서 용기로 옮겨간다.
이것이 비틀거리는 자신감의 첫번째 큰 위안이다.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 힘든 도전, 뱃속이 부글거리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도전을 만날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당신은 허리춤을 바짝 올리거나 넥타리를 바짝 졸라매고 다시 시도한다. 말라붙은 줄 알았던 우물레 두레박을 내려, 상상도 못한 그 무엇을 길러 올린다.
용기는 신선한 덕목이다.
콩코드 한인 연합 감리 교회(이 선영 목사) 제공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