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잠시 한국을 방문하는 가운데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찾게 되었다. 목회를 하면서 세상 친구들이 다 끊어졌지만 이 친구와는 교분을 계속 맺고 있다. 그 친구를 방문한 이유는 우울증 가운데 누워 몸져 있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세상을 움직일 것 같으며 포효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 저렇게 허약하게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를 보면서 삶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질병이 찾아 올 때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가장 고통스러운 인식은 ' 왜 내게 이러한 인생의 좌절이 발생하는 것일까? " 하는 심리적인 실패감이다. 질병 그 자체를 인생의 패배하였다는 징표로 단순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질병이 인생의 실패일까? 자문하게 된다.

목회를 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실패감으로 인한 자신감 상실에 빠져 있는 교인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자신감의 실패, 사업의 실패, 진학에의 실패, 결혼 생활의 실패,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 직분 선거에서 실패하였다는 그런 패배감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하다. 실패가 주는 가장 무서운 적은 실패를 완전한 실패로 규정짓고 그 실패로 인해 주저 앉는 인생을 살아 가는 것이다. 실패로 인한 완전한 포기란 더욱 더 무서운 적이다. 우리의 문제는 실패를 너무 빨리 실패로 속단하는 것이다.

내 지난날 목회 사역에서 나 자신도 그러한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외형적, 환경적으로 실패로 보였던 그 실패가 어느 날부터 진정한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패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오히려 사역의 새로운 도약으로 승화되는 새로운 은총임을 경험하게 되었다. 실패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실패는 목회의 큰 그림으로 보면 오히려 내 목회를 연단시키고 성장시킨 은혜의 사건이였다. 어느 날 그 실패에 감추어진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고 더 이상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실패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완전한 실패란 단지 하나님과의 분리의 삶 뿐일 따름이다. 하나님을 떠나 산다면 그것이 완전한 실패다. 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실패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지난날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실패를 통하여 더 진정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다.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겸손해 진다.

실패를 전염병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패를 피하려고 하고 실패를 두려워 한다. 내 인생에 있어서 실패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완전주의자로 살아 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결국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찾아 온다. 그러나 실패란 많은 경우 성공을 창조하기 위한 도약대일 따름이다. 실패란 인생의 값진 거름이다. 우리의 진정한 성장은 실패를 통해서 학습되어 진다. 실패를 인생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욱 더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를 통해서 오히려 제 2의 인생을 살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실패의 나락에 빠져 양치기로 전락한 모세를 불러 선지자의 인생을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하던 요나를 회복시켜 전도자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에게 목양의 사역자로 불러 주셨다.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사람들을 섬기고 사역하는 베드로의 장모를 보게 된다.

우리 인생 여정 길에서 만나는 생의 중요한 전환점들이 있다. 실직이나 이혼 그리고 사업의 파산, 건강의 상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나로 실패했다고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상실의 경험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환기적 시점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인생을 비로소 깊은 눈으로 관조하는 내면의 눈이 열린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음성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의 실패 끝자락을 붙드시며 우리가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도록 도와 주시는 회복과 은총이 풍성하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