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의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생존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란 질문이다. 1세들의 수가 이민자 감소, 자연적 사망 등으로 계속 줄어 들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사라질 것이다, 여전히 한인들이 이민을 오고 있으며 한인들의 신앙적, 민족적 특성상 백인교회나 흑인교회, 범아시안교회에 흡수될 수는 없기 때문에 생존할 것이다, 2세들이 교회를 계승해 줄 것이다 등 한인교회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김광정 박사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조명했다.
현재 시카고 지역의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김 박사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9년부터 웨스턴일리노이대에서 교수 활동을 하며 이민자와 미국사회, 이민자 2세의 미래 등에 관해 다양한 연구를 해 왔다. 지난 18일 한국기독교연구소(CSKC, The Center for the Study of Korean Christianity)가 개최한 제19차 월례포럼에 발제자로 선 김 박사는 한인들의 이민이 폭발적으로 이뤄진 20세기 초반과 20세기 후반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한인교회의 미래를 전망했다. 20세기 초의 이민은 사탕수수 노동자 이민이고 20세기 후반의 이민은 1965년 아시안에게 이민이 개방된 후의 대규모 이민을 말한다.
김 박사는 먼저 20세기 초의 이민과 교회에 관해 설명했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의 짧은 기간은 한인과 교회에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1900년대 초반 전세계 33개국으로부터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 가운데 한인은 고작 7200명이었다. 중국이 48만명, 일본이 18만명인데 비해 상당히 적다.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개신교가 전래된 1885년부터 20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한인 이민자의 대다수가 개신교인이었다. 김 박사는 “자신들에게 기독교를 전해 준 나라에 20년만에 다시 복음을 들고 이민 온 것”이라 강조했다. 이들은 짧은 기독교 역사로 인해 한국적 기독교보다는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 준 기독교 신앙의 원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이들은 담임 목회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교회를 설립해 신앙 생활을 할 정도로 열심이 있었고 당시 농장주들은 노동자의 노동생산성과 효율성, 농장에 대한 헌신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교회를 이용했다. 특히 한인들을 위해서는 교회 건물을 지어 주고 목회자 사례비까지 부담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목회자와 교회는 친농장주적인 성격을 띠면서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데에는 무능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낮은 임금과 혹독한 처우로 인해 파업을 일으킬 때마다 한인과 한인교회가 나서서 파업을 깨는 역할을 했다. 김 박사는 “파업이 발생할 때 한인들은 오히려 노동을 자처하면서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조국을 식민화한 일본에 대한 분노를 삭힌 듯 하다”고 지적했다.
이 당시 한인교회는 조국의 독립에 큰 관심을 갖고 기도와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민족적 교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하자 교회는 분열되기 시작했고 일본 영사관은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쁜 한인교회를 감시 대상에서 제외시킬 정도가 됐다고 한다.
어찌 되었거나 중요한 것은 이 1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다. 남겨진 소수의 2세들이 교회를 이끌어 가다가 1960년대 다시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증가하면서 이들과 리더십을 공유하게 된다. 딱히 한국적 기독교를 접해 보지 못한 2세들과 달리 1960년대 이후의 신규 이민자들은 전형적인 한국적 기독교를 갖고 있었다. 소수의 2세들과 다수의 신규 이민자 1세들이 공유하던 리더십은 결국 신규 이민자들에게 넘어가게 되고 하와이 1세 교회와는 전혀 다른 한국적 1세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다. 부모로부터 하와이식 1세 교회를 물려 받은 2세, 3세들은 한국어와 전형적 한국문화를 고수하는 신1세 교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1903년부터 1905년까지의 대규모 이민 이후, 수십년간 이민이 없었던 시절 한인교회가 겪은 변화다. 1세들은 세상을 떠났고 교회에서도 사라져 버렸으며 리더십이 자연히 2세로 넘어 갔지만 한인교회를 지키는 2세는 소수였고 많은 한인교회들이 문을 닫고 만 사실이다. 1965년 이후 한인들이 다시 이민을 오면서 하와이 한인교회는 결국 생존했지만 이것은 그들의 1세들이 지켜 온 하와이식 한인교회와는 전혀 다른 한국식 한인교회의 재탄생이었다. 현재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섬겼던 한인교회는 종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의 한인교회는 어떤가?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미주 한인 인구의 3분의 2가 7-80년대에 이민 온 사람들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민 인구는 급속도로 줄어 들었다. 게다가 90년대 이민자들은 미국에 뿌리박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며 한국과 미국에 동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인 1세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오늘의 현상을 하와이 한인교회에 오버랩시켜 보면 현 한인교회의 미래도 그다지 밝다고 할 수 없다. 설령 수십년 뒤에 다시 또한차례 대규모 이민이 이뤄진다 해도 지금의 한인교회가 계승된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 우리의 2세들은 어떤가? 김 박사는 “2세들은 부모들의 신앙과 삶이 이중적이며 너무 한국적 신앙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보기 때문에 한인교회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유럽 이민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 백인교회에 흡수되고 아프리칸 이민자들은 흑인교회에 흡수되듯 2세 한인들은 범아시안으로 구성된 미국적 다민족 교회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강의를 마친 후, 질문 시간에는 “여기 참석한 대다수가 한인교회에서 현재 사역 중인 목회자들인데 한인교회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김 박사는 “사회학은 현상과 사실만을 보여 줄 뿐이며 그 질문에 관해서는 이곳의 신학자 여러분이 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 박사의 모든 강의는 유투브(http://www.youtube.com/user/ShimonPak)에서 들을 수 있다.
현재 시카고 지역의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김 박사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9년부터 웨스턴일리노이대에서 교수 활동을 하며 이민자와 미국사회, 이민자 2세의 미래 등에 관해 다양한 연구를 해 왔다. 지난 18일 한국기독교연구소(CSKC, The Center for the Study of Korean Christianity)가 개최한 제19차 월례포럼에 발제자로 선 김 박사는 한인들의 이민이 폭발적으로 이뤄진 20세기 초반과 20세기 후반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한인교회의 미래를 전망했다. 20세기 초의 이민은 사탕수수 노동자 이민이고 20세기 후반의 이민은 1965년 아시안에게 이민이 개방된 후의 대규모 이민을 말한다.
▲김광정 박사가 20세기 초반,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이민에 관해 사회학과 종교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
이들은 담임 목회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교회를 설립해 신앙 생활을 할 정도로 열심이 있었고 당시 농장주들은 노동자의 노동생산성과 효율성, 농장에 대한 헌신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교회를 이용했다. 특히 한인들을 위해서는 교회 건물을 지어 주고 목회자 사례비까지 부담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목회자와 교회는 친농장주적인 성격을 띠면서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데에는 무능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낮은 임금과 혹독한 처우로 인해 파업을 일으킬 때마다 한인과 한인교회가 나서서 파업을 깨는 역할을 했다. 김 박사는 “파업이 발생할 때 한인들은 오히려 노동을 자처하면서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조국을 식민화한 일본에 대한 분노를 삭힌 듯 하다”고 지적했다.
이 당시 한인교회는 조국의 독립에 큰 관심을 갖고 기도와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민족적 교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하자 교회는 분열되기 시작했고 일본 영사관은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쁜 한인교회를 감시 대상에서 제외시킬 정도가 됐다고 한다.
어찌 되었거나 중요한 것은 이 1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다. 남겨진 소수의 2세들이 교회를 이끌어 가다가 1960년대 다시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증가하면서 이들과 리더십을 공유하게 된다. 딱히 한국적 기독교를 접해 보지 못한 2세들과 달리 1960년대 이후의 신규 이민자들은 전형적인 한국적 기독교를 갖고 있었다. 소수의 2세들과 다수의 신규 이민자 1세들이 공유하던 리더십은 결국 신규 이민자들에게 넘어가게 되고 하와이 1세 교회와는 전혀 다른 한국적 1세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다. 부모로부터 하와이식 1세 교회를 물려 받은 2세, 3세들은 한국어와 전형적 한국문화를 고수하는 신1세 교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1903년부터 1905년까지의 대규모 이민 이후, 수십년간 이민이 없었던 시절 한인교회가 겪은 변화다. 1세들은 세상을 떠났고 교회에서도 사라져 버렸으며 리더십이 자연히 2세로 넘어 갔지만 한인교회를 지키는 2세는 소수였고 많은 한인교회들이 문을 닫고 만 사실이다. 1965년 이후 한인들이 다시 이민을 오면서 하와이 한인교회는 결국 생존했지만 이것은 그들의 1세들이 지켜 온 하와이식 한인교회와는 전혀 다른 한국식 한인교회의 재탄생이었다. 현재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섬겼던 한인교회는 종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의 한인교회는 어떤가?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미주 한인 인구의 3분의 2가 7-80년대에 이민 온 사람들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민 인구는 급속도로 줄어 들었다. 게다가 90년대 이민자들은 미국에 뿌리박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며 한국과 미국에 동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인 1세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오늘의 현상을 하와이 한인교회에 오버랩시켜 보면 현 한인교회의 미래도 그다지 밝다고 할 수 없다. 설령 수십년 뒤에 다시 또한차례 대규모 이민이 이뤄진다 해도 지금의 한인교회가 계승된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 우리의 2세들은 어떤가? 김 박사는 “2세들은 부모들의 신앙과 삶이 이중적이며 너무 한국적 신앙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보기 때문에 한인교회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유럽 이민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 백인교회에 흡수되고 아프리칸 이민자들은 흑인교회에 흡수되듯 2세 한인들은 범아시안으로 구성된 미국적 다민족 교회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강의를 마친 후, 질문 시간에는 “여기 참석한 대다수가 한인교회에서 현재 사역 중인 목회자들인데 한인교회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김 박사는 “사회학은 현상과 사실만을 보여 줄 뿐이며 그 질문에 관해서는 이곳의 신학자 여러분이 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 박사의 모든 강의는 유투브(http://www.youtube.com/user/ShimonPak)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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