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년을 맞이해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열번째 인터뷰는 한울종합복지관 윤석갑 목사다. 윤 목사는 대학 졸업 후,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도미해, 뉴욕 롱아일랜드대학교에서 MBA과정을 이수하던 중 기독교사회복지 사업에 소명을 받고 나약칼리지(Nyack College) 얼라이언스신학교(Allian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M.Div., 프린스톤신학교에서 Th.M. 학위를 취득한 후 목사로 안수받았다. 그는 뉴욕에서 한인청소년 갱 계도 사역을 맡아 헌신했으며 뉴욕 콜럼비아대학교 사회사업학(MSW)을 마친 후 뉴욕시 노인국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아 일한 경험도 갖고 있는 전문인이다. 시카고에서는 한울종합복지관 총책임자로 노인복지 사업과 각종 사회사업에서 활약하고 있다.
-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사회복지 사업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교회와 사회복지라는 것은 관계가 있어 보이면서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어떤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인교회는 물론이고 한국교회는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성장을 했지만 치유하는 사역에 있어서는 아직 많이 미진합니다. 60-70년대만 해도 교회는 설교하고 전도하는 곳이었지 치유하는 곳이 아니었고 이런 사역은 교회 안에서 이단시되곤 했습니다. 치유하는 사역은 꼭 병을 고치거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넘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듯, 강도 만나 상처받은 자를 싸매주고 돌보아 주는 모든 전인적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한인교회들도 열심히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지만 갱에 빠진 청소년들을 전도해 찬양집회나 예배를 열겠다고 하면 “우리 아이들이 물든다”며 거절하고, 장애우 모임을 열겠다고 하면 “교회 관리가 안된다”며 완고히 반대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형제지간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자매지간입니다. 신앙과 실천이 결코 별개일 수 없습니다. 쓰러진 자를 잡아주고 일으켜 주는 것도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사역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열심이었지만 그에 비해 교회 밖 불신자, 소외된 자, 병든 자를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데는 미진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증거와 봉사는 함께”이어야 합니다.
- 사회복지와 같은 섬김 사역이 교회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영혼 구원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요?
교회는 신앙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신앙이 넘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됩니다. 저는 20년째 사회복지 사역을 하고 있는데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지만 참 인내가 필요하고 신앙의 힘이 없이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카고한인교회를 3백개로 추산하고 한 교회당 평균 50-70명 성도가 있다고 했을 때, 전체 시카고 한인 9-10만명 가운데 성도는 1만5천명에서 2만1천명 내외일 뿐입니다. 가장 좋은 전도는 자신의 변화된 삶입니다. 신앙의 은혜가 넘친다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아프고 병든 자를 위한 사랑으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에 교회의 권위가 서고 전도가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께서 3년 공생애동안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시며 하신 일이 치유 사역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다니시면서 증거하고 치유하셨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한인교회는 이런 구제 사역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아니지만, 이미 자체 교회 건물이 있고 평일에 공간이 남아도 영어 클래스를 열자, 청소년을 위해 체육 시설을 빌리자, 노인 복지 교육 및 프로그램 하자 부탁하면 “교회는 그런 일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잘라서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가르치고 전파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지역에 3백개 한인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저희 복지관이나 타 복지기관에 교회로부터 들어오는 후원금이 미약하다는 현실은 아마도 이런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국교회는 사회복지 및 구제 사역에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런 일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사모가 공부를 하거나 전문가를 모셔서 교회가 가진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복지사역을 발전시킵니다.
- 교회의 영성이 밖으로 분출되기보다 안에서 그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어떤 분에게 “사회복지 사역에 헌금하시라” 했더니 “난 교회에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헌금은 안해도 된다”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은사가 있는 평신도 사역자를 키울 때에도 그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길을 찾게 하지, 교회 밖에서 봉사할 길을 찾아 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교회 안에서”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저희 복지관에서 일하는 분 중에 사모가 세 분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사회복지 사업을 하면서 강한 도전을 받고 신앙의 본질을 찾아 간다고 증거하십니다. 영적 성숙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모이게 됩니다. 저희는 이 지역 한인 어르신들 7천분과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각 가정을 섬기고 있습니다. 신앙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영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나 타지역 단기선교도 선교지에 가서 선교 현장이 아닌 그냥 호텔에서 머물면서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적어도 몇년을 선교지에 관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함께 느끼고 참여하는 그런 선교가 필요합니다. 사회봉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홈리스 사역을 하건, 노인 사역을 하건,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교회의 목적에 맞게 훈련받고 도전받아서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영성이 안에만 고이게 되니 그 남는 힘으로 싸우고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 교회 내 갈등을 그런 면에서 접근해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뎅이만 보이는 목사”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교회에 가면 목을 세우고 설교를 전하는 목사는 많지만 고개를 숙여 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느라 엉덩이만 보이는 목사가 없습니다. 평신도도 그렇습니다. 각 교회의 사정이 있겠지만, 이민교회는 특히 집사나 장로 직분을 한국교회에 비해 빨리 줍니다. 어떤 분들은 장로이면서 성경 구절도 못 찾는 분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훈련이 안됐다는 거죠. 더 정확히 말하면, 영성이 아직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정의는 넘치는데 하나님의 공의를 몰라 서로 싸우게 됩니다. 한국문화 식으로 권위와 기득권만 생각하니 목회자를 존경하기는커녕 “조금 고용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며 다른 목회자를 청빙하고 또 내보내고 청빙하고 그럽니다. 미국교회처럼 목사와 장로가 뜨겁게 어울리고 서로를 존경하고 정이 있는 모습이 아직 부족합니다. 목사가 40-50대면 한참 큰 사역을 하고 비전을 이뤄갈 때인데 그럴 때 교회에 여러가지 이유로 사임을 하게 되니 그들이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합니다.
물론 평신도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사실 목회자 자신의 잘못이 80% 이상입니다. 목사도 평생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평신도들을 양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한 교회에 10명만 제대로 십일조를 하면 교회가 운영이 된다”라고 합니다. 10명만 제대로 된 평신도가 있으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평신도들의 여러가지 요구도 많습니다. 그러나 목회도 전문직이고 목회는 하나님과 ‘딜’을 하는 직업입니다. 평신도 눈치를 보면서 이것저것 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것을 해 나가야 합니다.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만든다고 뭐가 되지 않습니다. 단언컨데, 프로그램은 영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많이 하면 교회가 성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몇몇 미국교회들도 세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근래에 급격히 성장했지만 그들 안에 스스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으로 성공은 했지만 “So What?”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소금과 빛이라고 했는데 소금이 녹아서 사라져야 빛이 나는데 지금 교회들은 빛을 먼저 내서 소금이 녹을 틈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영성이 사라진단 이야기죠. 목사가 목숨을 걸고 평신도 영성을 위해 공부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한두명이 제대로 세워지면 그 목사가 교회를 떠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 성도들이 교회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습니다.
- 목사님은 뉴욕에서 주로 2세 한인청소년 갱생에 노력하셨지요? 현재 시카고 한인 청소년들의 문제는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시카고는 특유의 보수적 정서와 이민 3,4세대로 이어지는 역사성 때문에 한인 갱이 자리할 틈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엔 언어와 문화 부적응으로 인해 갱이 되었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외로움 속에서 갱이 되고 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 일입니다. 새벽에 한 한인 청소년이 강도살인으로 검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 성적이 올 A로 우수했고 교회에서는 학생회장, 찬양리더로 신앙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는 하버드에 갈 것이라 했고 칭찬을 했습니다. 나중에 왜 살인을 했냐고 물어 보니 “외로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반항하는 청소년들은 사랑의 필요를 표출하니 낫습니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청소년들은 그 필요를 극단적 방법으로 어느 순간 표출하고 맙니다. 지금 시카고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고 해도 한인 갱 문제는 LA, 뉴욕, 아틀란타 등 모든 한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고 시카고도 곧 그렇게 될 것으로 봅니다.
- 2세 문제에 교회가 어떤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미국사회에서 청소년 문제를 감당하려면 목회자나 사회사업가가 아주 유리합니다. 지금은 노인사역을 하지만 저는 청소년사회복지에 소명을 받았었고 신학에 관해서는 순수한 구제사역에 관심이 있어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청소년 문제를 감당하려면 미국사회는 법정이든 어디든 ‘목사’라는 직업적 전문성과 사회사업가를 상당히 중시해 줍니다. 형량을 받을 사건들도 목사나 사회사업가를 통해 집행유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수를 받게 되고 사회사업을 공부하게 된 것이지요.
목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지만 작은 것부터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같이 모여서 운동하고, 이야기 하고, 공부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교회에 체육관이 있습니까? 평일에 개방해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운동하고, 음료수도 마시고 컵라면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더 남는 공간이 있으면 공부방도 만들어서 학교 공부도 하면서 서로 고민도 나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예 스케줄을 짜서 언제는 농구 시합을 열고, 또 언제는 상담시간을 열어 주고, 또 언제는 건전한 영화도 감상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물론 교회 직원이나 성도들 중 누군가가 청소년들을 잘 보살피고 관리를 해야겠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어디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런 일들은 우리 교회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2세 청소년 사역의 문제에 교회는 전혀 관계가 없게 됩니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외롭고 충동적으로 탈선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금 가진 인프라를 조금만 사회에 개방해도 이 문제는 긍정적으로 해결돼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더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영적으로 성장한 자만이 전도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 그들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지면 자연히 그 영성이 밖으로 뿜어져 나와 교회 안과 밖의 일, 섬기는 일, 봉사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자는 남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카고 교회들이 영성에 기초해 지역사회 봉사에 좀더 적극성을 띠고 전문성을 갖게 되길 당부드립니다.
열번째 인터뷰는 한울종합복지관 윤석갑 목사다. 윤 목사는 대학 졸업 후,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도미해, 뉴욕 롱아일랜드대학교에서 MBA과정을 이수하던 중 기독교사회복지 사업에 소명을 받고 나약칼리지(Nyack College) 얼라이언스신학교(Allian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M.Div., 프린스톤신학교에서 Th.M. 학위를 취득한 후 목사로 안수받았다. 그는 뉴욕에서 한인청소년 갱 계도 사역을 맡아 헌신했으며 뉴욕 콜럼비아대학교 사회사업학(MSW)을 마친 후 뉴욕시 노인국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아 일한 경험도 갖고 있는 전문인이다. 시카고에서는 한울종합복지관 총책임자로 노인복지 사업과 각종 사회사업에서 활약하고 있다.
-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사회복지 사업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교회와 사회복지라는 것은 관계가 있어 보이면서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어떤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인교회는 물론이고 한국교회는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성장을 했지만 치유하는 사역에 있어서는 아직 많이 미진합니다. 60-70년대만 해도 교회는 설교하고 전도하는 곳이었지 치유하는 곳이 아니었고 이런 사역은 교회 안에서 이단시되곤 했습니다. 치유하는 사역은 꼭 병을 고치거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넘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듯, 강도 만나 상처받은 자를 싸매주고 돌보아 주는 모든 전인적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한인교회들도 열심히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지만 갱에 빠진 청소년들을 전도해 찬양집회나 예배를 열겠다고 하면 “우리 아이들이 물든다”며 거절하고, 장애우 모임을 열겠다고 하면 “교회 관리가 안된다”며 완고히 반대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형제지간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자매지간입니다. 신앙과 실천이 결코 별개일 수 없습니다. 쓰러진 자를 잡아주고 일으켜 주는 것도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사역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열심이었지만 그에 비해 교회 밖 불신자, 소외된 자, 병든 자를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데는 미진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증거와 봉사는 함께”이어야 합니다.
- 사회복지와 같은 섬김 사역이 교회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영혼 구원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요?
교회는 신앙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신앙이 넘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됩니다. 저는 20년째 사회복지 사역을 하고 있는데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지만 참 인내가 필요하고 신앙의 힘이 없이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카고한인교회를 3백개로 추산하고 한 교회당 평균 50-70명 성도가 있다고 했을 때, 전체 시카고 한인 9-10만명 가운데 성도는 1만5천명에서 2만1천명 내외일 뿐입니다. 가장 좋은 전도는 자신의 변화된 삶입니다. 신앙의 은혜가 넘친다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아프고 병든 자를 위한 사랑으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에 교회의 권위가 서고 전도가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께서 3년 공생애동안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시며 하신 일이 치유 사역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다니시면서 증거하고 치유하셨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한인교회는 이런 구제 사역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아니지만, 이미 자체 교회 건물이 있고 평일에 공간이 남아도 영어 클래스를 열자, 청소년을 위해 체육 시설을 빌리자, 노인 복지 교육 및 프로그램 하자 부탁하면 “교회는 그런 일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잘라서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가르치고 전파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지역에 3백개 한인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저희 복지관이나 타 복지기관에 교회로부터 들어오는 후원금이 미약하다는 현실은 아마도 이런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국교회는 사회복지 및 구제 사역에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런 일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사모가 공부를 하거나 전문가를 모셔서 교회가 가진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복지사역을 발전시킵니다.
- 교회의 영성이 밖으로 분출되기보다 안에서 그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어떤 분에게 “사회복지 사역에 헌금하시라” 했더니 “난 교회에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헌금은 안해도 된다”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은사가 있는 평신도 사역자를 키울 때에도 그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길을 찾게 하지, 교회 밖에서 봉사할 길을 찾아 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교회 안에서”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저희 복지관에서 일하는 분 중에 사모가 세 분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사회복지 사업을 하면서 강한 도전을 받고 신앙의 본질을 찾아 간다고 증거하십니다. 영적 성숙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모이게 됩니다. 저희는 이 지역 한인 어르신들 7천분과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각 가정을 섬기고 있습니다. 신앙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영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나 타지역 단기선교도 선교지에 가서 선교 현장이 아닌 그냥 호텔에서 머물면서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적어도 몇년을 선교지에 관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함께 느끼고 참여하는 그런 선교가 필요합니다. 사회봉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홈리스 사역을 하건, 노인 사역을 하건,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교회의 목적에 맞게 훈련받고 도전받아서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영성이 안에만 고이게 되니 그 남는 힘으로 싸우고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 교회 내 갈등을 그런 면에서 접근해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뎅이만 보이는 목사”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교회에 가면 목을 세우고 설교를 전하는 목사는 많지만 고개를 숙여 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느라 엉덩이만 보이는 목사가 없습니다. 평신도도 그렇습니다. 각 교회의 사정이 있겠지만, 이민교회는 특히 집사나 장로 직분을 한국교회에 비해 빨리 줍니다. 어떤 분들은 장로이면서 성경 구절도 못 찾는 분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훈련이 안됐다는 거죠. 더 정확히 말하면, 영성이 아직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정의는 넘치는데 하나님의 공의를 몰라 서로 싸우게 됩니다. 한국문화 식으로 권위와 기득권만 생각하니 목회자를 존경하기는커녕 “조금 고용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며 다른 목회자를 청빙하고 또 내보내고 청빙하고 그럽니다. 미국교회처럼 목사와 장로가 뜨겁게 어울리고 서로를 존경하고 정이 있는 모습이 아직 부족합니다. 목사가 40-50대면 한참 큰 사역을 하고 비전을 이뤄갈 때인데 그럴 때 교회에 여러가지 이유로 사임을 하게 되니 그들이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합니다.
물론 평신도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사실 목회자 자신의 잘못이 80% 이상입니다. 목사도 평생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평신도들을 양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한 교회에 10명만 제대로 십일조를 하면 교회가 운영이 된다”라고 합니다. 10명만 제대로 된 평신도가 있으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평신도들의 여러가지 요구도 많습니다. 그러나 목회도 전문직이고 목회는 하나님과 ‘딜’을 하는 직업입니다. 평신도 눈치를 보면서 이것저것 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것을 해 나가야 합니다.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만든다고 뭐가 되지 않습니다. 단언컨데, 프로그램은 영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많이 하면 교회가 성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몇몇 미국교회들도 세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근래에 급격히 성장했지만 그들 안에 스스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으로 성공은 했지만 “So What?”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소금과 빛이라고 했는데 소금이 녹아서 사라져야 빛이 나는데 지금 교회들은 빛을 먼저 내서 소금이 녹을 틈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영성이 사라진단 이야기죠. 목사가 목숨을 걸고 평신도 영성을 위해 공부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한두명이 제대로 세워지면 그 목사가 교회를 떠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 성도들이 교회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습니다.
- 목사님은 뉴욕에서 주로 2세 한인청소년 갱생에 노력하셨지요? 현재 시카고 한인 청소년들의 문제는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시카고는 특유의 보수적 정서와 이민 3,4세대로 이어지는 역사성 때문에 한인 갱이 자리할 틈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엔 언어와 문화 부적응으로 인해 갱이 되었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외로움 속에서 갱이 되고 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 일입니다. 새벽에 한 한인 청소년이 강도살인으로 검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 성적이 올 A로 우수했고 교회에서는 학생회장, 찬양리더로 신앙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는 하버드에 갈 것이라 했고 칭찬을 했습니다. 나중에 왜 살인을 했냐고 물어 보니 “외로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반항하는 청소년들은 사랑의 필요를 표출하니 낫습니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청소년들은 그 필요를 극단적 방법으로 어느 순간 표출하고 맙니다. 지금 시카고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고 해도 한인 갱 문제는 LA, 뉴욕, 아틀란타 등 모든 한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고 시카고도 곧 그렇게 될 것으로 봅니다.
- 2세 문제에 교회가 어떤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미국사회에서 청소년 문제를 감당하려면 목회자나 사회사업가가 아주 유리합니다. 지금은 노인사역을 하지만 저는 청소년사회복지에 소명을 받았었고 신학에 관해서는 순수한 구제사역에 관심이 있어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청소년 문제를 감당하려면 미국사회는 법정이든 어디든 ‘목사’라는 직업적 전문성과 사회사업가를 상당히 중시해 줍니다. 형량을 받을 사건들도 목사나 사회사업가를 통해 집행유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수를 받게 되고 사회사업을 공부하게 된 것이지요.
목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지만 작은 것부터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같이 모여서 운동하고, 이야기 하고, 공부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교회에 체육관이 있습니까? 평일에 개방해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운동하고, 음료수도 마시고 컵라면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더 남는 공간이 있으면 공부방도 만들어서 학교 공부도 하면서 서로 고민도 나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예 스케줄을 짜서 언제는 농구 시합을 열고, 또 언제는 상담시간을 열어 주고, 또 언제는 건전한 영화도 감상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물론 교회 직원이나 성도들 중 누군가가 청소년들을 잘 보살피고 관리를 해야겠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어디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런 일들은 우리 교회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2세 청소년 사역의 문제에 교회는 전혀 관계가 없게 됩니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외롭고 충동적으로 탈선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금 가진 인프라를 조금만 사회에 개방해도 이 문제는 긍정적으로 해결돼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더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영적으로 성장한 자만이 전도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 그들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지면 자연히 그 영성이 밖으로 뿜어져 나와 교회 안과 밖의 일, 섬기는 일, 봉사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자는 남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카고 교회들이 영성에 기초해 지역사회 봉사에 좀더 적극성을 띠고 전문성을 갖게 되길 당부드립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