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힐러리 클린턴(Clinton), 버락 오바마(Obama) 상원의원이 지난 주일 미국의 기독교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각자의 신앙적 견해를 밝혔다.

두 후보는 13일(현지시각) ‘공적 삶 속의 신앙(Faith in Public Life)’과 CNN 공동주최로 펜실베이니아 주 그랜섬 소재 메시아 대학에서 개최된 ‘컴패션 포럼(Compassion Forum)’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날 사회자로 나선 뉴스위크 편집인이자 미국 정치와 종교 전문가인 존 미챔(Meacham)과 기독교 유명인사인 CNN 앵커우먼 캠벨 브라운(Brown), 패널로 선정된 전미복음주의협회(NAE) 부회장 리차드 시직(Cizik) 목사와 소저너스 대표 짐 월리스(Wallis) 목사 등은 두 후보에게 개인적 신앙부터 신학적 주제에까지 관련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힐러리 “낙태는 꼭 필요한 경우 안전하게 이뤄져야”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클린턴 의원
토론회는 두 후보가 따로 각자의 순서에 나와서 질문을 받고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토론에 임한 클린턴에게 “왜 사랑의 하나님이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내버려두시는가?”라는 난해한 질문이 주어졌다.

처음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클린턴은 곧 미소를 띠며 “그것은 나도 모른다. 나도 지금 당장 하나님께 묻고 싶다”고 답했다. 그녀는 “나 또한 오랜 세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누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받은 클린턴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고 답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신앙을 실천하는 노력을 매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클린턴은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 무엇에 의지하느냐는 질문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기도와 묵상, 공부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의 조언이 가장 기초가 된다”고 밝혔다.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에 대해 묻자 에스더서를 좋아한다고 밝힌 그녀는 “에스더는 기회 또는 위기에 결정으로 맞서야 하는 모든 여성들의 훌륭한 역할 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신앙 외에도 이번 대선 최대 이슈 중 하나이자 복음주의의 주요 관심사인 낙태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평소 낙태 금지법에 반대해 온 클린턴은 “내가 속한 교단인 연합감리교회도 이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잠재적(potential)’인 생명도 중요하지만 이에 관계된 다른 사람들, 즉 부모들의 삶도 중요하다”며 “여성의 의견이 가장 우선시돼야 하며 (낙태가) 꼭 필요할 경우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기독교 신앙 가졌지만 진화도 믿는다”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오바마 의원
클린턴에 이어 토론회장에 오른 오바마는 최근 종교와 관련된 자신의 ‘실언’부터 해명해야 했다. 지난 주 한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고 좌절한 펜실베이니아 주 시민들이 종교와 총기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관한 질문에 오바마는 “종교는 보루(bulwark)와 같은 것이다. 다른 것들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 종교는 기반이 되어 준다”며 “종교를 폄하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서 오바마에게도 힘겨운 신학적 주제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심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 그러나 사실 그 개념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mysterious) 것이기는 하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창세기에 나오는 대로 세상이 6일 만에 창조됐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오바마는 “성경이 본질적으로 진리임을 믿지만 세상이 며칠 만에 창조됐다고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진화를 믿고, 이는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과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는 나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 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낙태 규제에 반대하는 오바마는,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생명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기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원치 않는 출산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절제 교육, 피임, 입양 등의 대안적 접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그동안 무슬림 루머에 시달려 왔던 오바마는 어릴 적 인도네시아에서 받은 이슬람 교육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공립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가톨릭학교에 먼저 다녔다고 밝혔으며, “그 곳에 살았던 경험은 무슬림에 대한 관용을 가르쳐줬고,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선량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고 답했다.

기독교인들은 힐러리 더 선호… 흑인 많은 주에서는 오바마 지지 늘어

이날 토론회는 22일 열리는 펜실베이니아 주 경선에 앞서서 열렸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기독교 유권자가 대다수인 지역으로 이날 클린턴과 오바마는 대의원 수 158명을 놓고 겨루게 된다.

클린턴은 가톨릭교인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백인 개신교인 유권자들은 오바마보다 클린턴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지난 조사들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흑인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주들에서 오바마를 지지하는 개신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낙태 외에도 다르푸르 사태, 에이즈 대처, 빈곤 퇴치, 지구 온난화 등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이슈들도 주제로 다뤄졌다. 최근 세계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해서 두 후보는 미국이 세계의 인권 수호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으며,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