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고향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았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부탁을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향교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이기에 어디를 가서든지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하며 나를 채근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접 못 받을까봐서 거절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고향교회를 섬기는 목사님께서 선수를 치셨다. 이 때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날짜까지 잡아서 이미 교회에 광고를 했으니 이번만은 꼭 와야 한다고 해서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고향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왔다.

나의 고향교회는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에 있는 백석감리교회이다. 백석감리교회는 약 60여 년이 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 농촌교회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나는 백석감리교회와 마주하고 있는 백석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6학년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이수영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이 백석감리교회의 집사님이셨다. 이번에 고향교회에서 나이 많이 드신 교인들에게 들었는데 당시 이수영 부부집사가 교회를 얼마나 신실하게 섬겼는지 지금까지도 그 분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이수영 선생님의 영적인 영향으로 비록 시골 초등학교였지만 깜장 고무신을 신고 새까만 얼굴로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우리들이 열심히 교회 다니며 꿈을 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 내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신실한 믿음의 선생님의 영향이 많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수영 선생님은 논산군 교육장으로 섬기시다가 은퇴를 하시고 공주 중동감리교회의 원로장로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집회 첫날 설교를 마치고 앞에 서서 인사를 하는데 농촌 교회라서 나이 드신 분들이 80% 이상이었다. 내 손을 잡고 은혜 받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백석초등학교 몇회여”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선배들이었다. 내가 18회인데 대부분 4-5년 심지어는 10년 이상의 선배들이었다. 이래서 예수님이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을 못 받는다고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집회의 시간이 지나면서 선배님들이 얼마나 말씀을 순수하게 잘 받아들이며 은혜를 받는지 전하는 후배인 내가 도리어 은혜 받고 사랑 듬뿍 받는 시간들이었다. 본 교회 출신이라서 그리고 초등학교 선, 후배라서 오히려 더 친근감이 있어서 더욱 말씀을 사모하다보니 예기치 않은 은혜였다고 고백들 하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을 넘치게 받는 신기한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들이었다.

고향 교회를 말씀으로 섬기면서 한국 농촌교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농촌에 젊은이들이 없다 보니 학교는 물론이고 교회도 점점 어린 학생들이 없어서 미래가 불안하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학생이 6-7백 명이었는데지금은 십분의 일로 줄어 전체 학생이 50-60명밖에 안되어 폐교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자연히 교회도 학생들이 몇 명 안 되어 교회 교육의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농촌을 살리고 농촌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돌아오면서 우리 한인 이민교회가 해야 할 일을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민교회들이 다른 나라에 단기선교를 많이 가는데 이제는 한국의 농촌과 농촌 교회를 살리기 위해 이민교회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름 영어 캠프 단기선교나 농촌교회 어린이 미국초청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