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소식을 전한 백ㅇ종 선교사는 휄로쉽교회(김형균 목사)가 후원중인 선교사로 현재 캄보디아 깜뽕잠에서 사역하고 있다.


한 주 남은 제자훈련 세미나를 앞두고 함께 동역하는 꼬이 장로님이 찾아왔습니다. “백목사님, 우리 교회에서 13명이 신청했는데 짠티 형제는 앞으로 한국에 일하러 갈꺼니까 등록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 장로님은 오랫동안 깜뽕짬에 남아서 교회를 지킬 사람들만 제자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래야 교회가 든든히 서고 성장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장로님, 짠티 형제는 그래서 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에 가서도 다른 크메르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양육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장로님은 멋쩍은 듯이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선교사였기 때문에 세상을 더 넓게 보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로 장로님의 의견은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제 자신이 가진 한계의 반영이었을까요?

대부분의 제자는 스승만큼 성장한다는데, 제가 이곳에서 현지의 형제자매들을 섬기면서 가지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한계를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뛰어넘지 못하면 제 주변의 형제자매들 역시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허덕여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조바심이 났습니다. 몇 달 전 새로운 제자반을 시작하면서 한국형제와 결혼한 티어라 자매에 대해서 장로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장로님, 그 자매는 벌써 결혼해서 몇 주 되면 한국에 갈텐데, 16주간 훈련을 어떻게 받겠어요? 그 자매는 빼도록 하죠.” 꼬이 장로님이 짠티 형제에 대해서 처음 제안했던 내용은 바로 부끄러운 제 모습의 반영이었던 것입니다. “서너 주간 이라도” 그 자매가 제자훈련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갔더라면 하는 후회가 한없이 몰려옵니다. 열흘전쯤 한국으로 시집간 티어라 자매가 수줍은 목소리로 전화해서 안부를 묻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목사님, 제집 근처에 교회가 있어요. 일요일에 교회 나갑니다.” 가장 멋진 제자양육가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는 한 주가 되더라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켜 사람을 내보내겠다는 결심을 다져봅니다. 몇 주간, 기초과정이라는 올무에 묶여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집니다.

저희가 선교지에 도착한지도 3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 크메르어를 습득하며 번역했던 제자훈련 자료로 사람들을 양육하며 자연스럽게 캄보디아 씨앗교회가 개척되었고, 단기선교팀과 대학에서 언어을 가르치다가 로고스 언어학원이 탄생했습니다. 더디지만 꾸준하게 진행되는 고아원 설립과 NGO를 통한 개발사역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함께 동역하고 있으며 잠족사역에도 느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 선교사님들과 함께 동역하는 사역들 이외에도 특별히 제가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잠족을 위한 성경 개정작업, 잠족 전도를 위한 선지자와 예언 교재 집필, 잠족마을 아이들을 위한 영어강의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크메르어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잠족어 습득에도 진보가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