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내용은 하나님께 심통이 난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다독이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바빌론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던 롯을 구해온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아브람에게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시는 내용이지요.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고향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내려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래에게 아이가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습니까? 이럴 경우, 약속해 주신 하나님과 자기가 알아가는 하나님 사이에 괴리가 느껴지지는 않았을까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과 내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이 다를 때 우리의 믿음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람에게 아들에 관한 약속을 다시 해 주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절대자인 것이 맞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분이 자기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아브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자기와의 약속을 잊으신 건지, 아니면 다른 것은 다 해도 아이를 갖게 하시는 것은 안되시는 건지. 그렇다면 약속이나 하지 말 것이지 말입니다. 자기는 그 말만 믿고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했던 고향 땅을 등지고 여기 낯선 곳까지 왔는데 말이에요. 이 땅에 와서 이 고생 저 고생하고 있는 것도 자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건데, 여전히 바라는 아이는 없으니, 사기당한 것만 같았을 겁니다.
이렇게 여러 모로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불편한 마음에 하루하루가 편치 않았을 겁니다. 이러다가 상속자 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무언가 자구책을 마련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뒤를 이을 후사가 없으면, 이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재물이 모두 공중 분해될 것이 뻔하니까요. 고향 땅에 있었으면, 다른 친족에게 상속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마련한 자구책이 다마스커스에서 종으로 사온 엘리에셀이네요. 이 아이를 양자로 들여 상속자로 삼을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아브람이 이 정도까지 해 놓은 것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던 것 같네요. 전능하신 분이지만, 자기와 한 약속을 잊었거나, 마음을 바꾸었거나, 둘 중의 하나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아브람은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신들보다 강하신 분이라는 것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자기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그 하나님은 과연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을까? 그분의 강함과 전능함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무관심한 신에게 어찌 신뢰의 마음을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영역에서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와 연결되지 않으면, 그 능력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능력은 저 멀리 다른 곳에서나 빛을 발휘하지 나에게는 빛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브람도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속이 불편했던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게 갖춰져 있어도 자식이 없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거지요. 자식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이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드디어 찾아오신 겁니다. 그리고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걸까요? 신을 보면 죽는다는 당시 통념 때문에 아브람이 두려워할까봐 그렇게 말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지난번 물리쳤던 바빌론 연합군이 다시 군사를 정비해서 복수할까봐 불안한 아브람의 속내를 아시고서 하신 말씀인가요? 하기사 그때는 그들이 무방비 상태였으니까 쉽게 물리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떡할 뻔했겠습니까? 그래도 그때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고 감격하지 않았는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니까, 다시 불안감이 몰려오기라도 한 건지요? 이렇게 쪼잔한 자에게 하나님은 방패가 되어 주시겠답니다. 그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렇게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서, 어찌 다시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요? 자기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서, 어찌 다시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단 말인가요? 이런 자를 하나님은 어찌 질책하지 않으신단 말인가요? 오히려 그를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그리고는 아브람에게 많은 보상/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이가 생기기를 원하는 아브람에게 엉뚱한 것을 약속하십니다. 풍성한 재물이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완전히 주파수가 서로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방패가 되어 주고 보상을 많이 주겠다고 하시는 것은 아브람 자신이 살아있을 때에는 너무나 좋고 고마운 일인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자기가 죽게 되면 그 모든 게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데, 그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입니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이어받을 자식이 없는데, 그 많은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요?
아브람은 평소에 가졌던 불만 때문에, 재물을 많이 주시겠다는 하나님께 그만 자기의 속내를 보이고 맙니다. 당시 신에게 할 수 없는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지요. 신을 보게 되면 죽음이라는 공포가 컸던 그 당시에 자기 앞에 나타난 - 환상이라 할지라도 - 하나님께 투덜거리는 아브람은 아마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가진 불만이 매우 컸던 겁니다.
'아니 하나님, 주신다는 게 무얼 주신다는 겁니까? 제가 없는 게 무언 줄 모르셔서 재산을 준다고 하시는 겁니까? 주신다는 자식은 왜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러니 아무리 재산을 불려 주셔도 그것을 받을 자식이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에게 아이를 품에 안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이제 더 이상 저에 대한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요. 제가 나름 생각해 놓은 게 있습니다. 제가 다마스커스에서 종으로 데려온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을 작정입니다.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겠습니다.' 아브람은 작정을 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불만을 퍼부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 년 동안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나와버린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막 나가는 아브람에게 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원래 다른 신들이면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하여 진노를 해야 하는 게 마땅한데 말입니다. 오히려 차근차근 설명하십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람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람을 장막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밤하늘 가득 떠있는 별들을 보라고 하시네요. 그리고는,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환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나가셨다는 이 장면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손을 잡고 장막 밖으로 나가신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요. 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직접 잡아 주신 것처럼 느꼈다는 겁니다. 자신의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는 아브람을 달래며 손수 손을 잡아 장막 밖으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15:5)
아브람은 자기 손을 잡아 이끄시는 하나님의 그 부드러운 음성에 그만 속에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얼음 덩어리가 그만 사르르 녹아 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시 덥썩 믿어버리게 된 데는 가나안 땅에 와서 지내면서 겪은 일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동안 자기에게 나타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던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된 것만도 적지 않지 않은가요!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분이 하늘을 수놓은 셀 수 없는 별처럼 자손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람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고 설득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 고백했지요. 밤하늘의 별들이 몽땅 아브람 가슴 속으로 쏟아져 내려왔을 듯싶네요.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의로운 자로 여기셨고 말입니다. (15:6)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