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유혹자 (마 4:1)

마귀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우선 예수께서 배고픈 것을 보고 마귀는 먹는 것으로 유혹했다. 돌을 떡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라는 유혹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박수와 인기를 받는 것으로 유혹했고 나중에는 자기를 경배하라고 하면서 성경을 인용했다. 사도 요한의 말대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요일 2:16). 마귀는 이런 세상 것들을 가지고 인간을 유혹하여 많이 넘어뜨리고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또 오용한다. 성경을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를 먼저 이해해야 하며 문맥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느 부분만 떼어서 부분적으로 인용하면 왜곡될 위험이 많다. 일부 신문 기자들이 자기들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만 발췌하여 인용함으로 독자들을 속이는 것과 같다.

마귀는 가룟 유다를 부추겨서 예수님을 배신하게 했다 (요 13:2). 마귀는 종종 자기가 직접적으로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악심을 가진 자들을 도구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서 히틀러나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 같은 악한 인물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세상에 해를 끼치게 하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틈을 주어 그에게 이용당한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마귀의 계략에 넘어갈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죄가 있고 당신도 그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안심시킨다. 죄가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온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 길을 마련해 주셨다. 믿음으로 그 길을 택해야 한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불안, 염려, 실망, 죄의식에 빠지게 한다. "실락원"을 쓴 밀턴은 지옥편에서 지옥 입구에 "이곳에서는 아무 것도 희망하지 말라"고 써 있다고 말했다. 아무 것에도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곳이 지옥인데 마귀는 현실 생활 속에서도 우리의 힘을 빼고 낙담시키고 절망하게 한다. 어느 전도자는 지옥이 두려운 것은 꺼지지 않는 불이나 죽지 않는 벌레, 그치지 않는 고통이 아니라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파괴자 (눅 22:31)

사람을 미치게 하여 경련을 일으키게도 한다 (눅 9:42). 많은 현대인들이 정신적 갈등과 우울증 또는 조현병이라고 부르는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결국 마귀가 인간을 공격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의학적으로도 치료가 대부분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영적인 변화를 받고 마음에 평안과 소망을 발견하면 치유되는 것이다.

마귀는 인간의 영혼만 아니라 육체도 파괴한다 (마 12:22). 성경에는 귀신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 당시에만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날에도 그러하며 또한 스스로 자해하고 자살하는 일들도 결국은 파괴자 마귀의 짓이다.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현실을 보면 과학과 문명에 발전과 무관하게 마귀의 공격은 더욱 심하며 죄는 더욱 팽창하고 있다.

마귀는 욥 자신과 그의 가정과 재산을 파괴했다. 구약의 욥은 의롭고 범죄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마귀가 하나님께 간청하여 그를 시험하게 함으로 재산과 자녀를 다 잃고 몸에 병까지 생겼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스스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함으로 전보다 더한 복을 받았다. 마귀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악한 존재이다.

통치자 (요일 5:19)

마귀는 공중에 권세 잡은 자이다 (엡 2:2, 요 2:31). 즉 세상에서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자이며 종종 사람들을 통해서 활동한다. 예를 들어서 가룟 유다 속에 틈을 타고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하고 나중에는 자살하게 했다. 그렇지만 마귀는 하나님 권세의 아래 있다.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다 (요 12:31).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마치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듯이 마귀는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여 끔찍한 살인을 하거나 잔인한 행동을 하게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지 않는 자는 마귀의 통치 아래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중간은 없으며 인간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의 결단이다.

고소자 (계 12:20)

마귀는 밤낮으로 형제들을 고소하여 죄의식 가운데 살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받은 사람도 살면서 종종 자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럴 때에 곧 자백하고 죄를 씻어야 하는데 (요일 1:9) 마귀는 그것을 붙잡고 죄책감에 빠지거나 절망하게 하는 것이다.

고소자는 언제나 자기는 옳고 피고소인은 죄가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마귀는 악행을 범한 자로 하여금 변명하게 하거나 거짓말을 하게 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한다. 마귀는 언제나 그럴 듯한 변명을 들어서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 실수라거나 인간의 연약함이라고 둘러대게 한다.

그는 욥을 고소했고 (1:9-11)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소했다 (슥 3:1). 지금도 마귀는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고소하여 자기비하를 하게 하거나 스스로 포기하게도 한다.

마귀에게 고소를 당할 꼬투리가 잡히지 않도록 흠이 없이 살아야 한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도록 사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완전해 질 수는 없어도 흠 없이 살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