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손인식 목사와 북한 인권과 자유화를 위해 힘써 온 그날까지 선교연합(UTD-KCC) 공동대표 박희민 목사, 송정명 목사, 김인식 목사와 고인과 함께 통곡기도회를 개최하며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운동을 일으켜온 기쁨우리교회 김경진 목사가 추모사를 전하며 북한 선교를 향한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나성영락교회 원로 박희민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누구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 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이었다"며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보여준 인격과 믿음의 삶, 사랑의 실천과 복음 증거, 선교를 위한 열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미주 평안교회 원로 송정명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였다"고 기억하며 "수많은 탈북자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싸매주고 치유했으며, 1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바울 사도의 고백 같이 선한 싸움 잘 싸우셨고, 믿음을 지켜 달려갈 길을 잘 마셨다"고 회고했다.
웨스트힐장로교회 원로 김인식 목사는 "'남북이 하나 되어 민족과 세계를 섬기는 가운데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꿈'은 故 손 목사님의 꿈이자 남아있는 우리들의 꿈"이라며 "손인식 목사님을 추모하며 그의 꿈을 가슴에 새기고 달려가자"고 촉구했다.
기쁜우리교회 김경진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호탕한 웃음과 인자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과 유머 넘치는 말씀과 따뜻한 가슴으로 힘들고 지친 후배 목회자들이 기대고 싶은 큰 나무 같은 분이셨다"며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민족의 염원이며 한민족 자유 평화통일을 위해 에스라처럼, 느헤미야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자신을 불태우셨다"고 회고했다.
이하는 추모사 전문.
지성과 영성, 덕을 겸비한 신실한 목회자였다
우리가 사랑하며 존경하던 손인식목사께서 소천하므로 먼저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환송하는 사모님과 자녀들, 유가족들. 그리고 베델교회 성도들과 고인을 사랑하던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하심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죽음 앞에서 드릴 위로의 말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의 참된 위로와 영생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승리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습니다. 삶과 죽은은 우리 인생을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비법하고 위대하게 살려면 죽음을 바로 이해하고 어느 정도 죽음을 뛰어남 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죽음마저 조소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 복된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이 참되고 진실하며, 사랑이 충만하고 베풀고 나누며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잇대진 삶이 되어야 합니다.
손 목사님은 베델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미주 최대의 한인교회의 하나로 성장시켰습니다 은퇴 후에도 UTD/KCC를 통해 탈북자를 섬기며, 북한동포의 자유와 해방 및 복음화 그리고 통일을 위한 통곡기도회 사역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제가 지난 30년 이상 사귀고 이민교회와 UTD/KCC를 함께 섬기면서 발견한 것은 손 목사님은 지성과 영성과 덕성을 겸비한 신실한 목회자이며,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의 종이며, 주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 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이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믿음과 섬김의 종으로서의 리더십을 본보여 주셨습니다. 그를 통해 놀라운 역사와 사역을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보여준 인격, 믿음의 삶, 사랑의 실천 복음 증거와 선교를 위한 열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간직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모님과 자녀들과 유가족에게 주님의 위로하심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는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셨습니다
목사님 할 일이 그렇게 많은데 어찌 그리 빨리 가셨습니까? 그래서 지난 3월 26일 제 꿈에 찾아오셔서 그동안 감사했다고 웃으시면 인사를 하신 것인가요. 차라리 '그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동역을 해온 기간이 20여 년 간이 되네요 그동안 보아왔던 목사님은 남을 칭찬 해주고 세워주는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신실함과 겸손함이 겸비된 하나님의 종이 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비전과 추진력이 대단한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셨습니다.
오늘의 베델 한인교회가 이민 한인교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눈물과 땀과 몸부림의 열매였다'는 사실은 수많은 동역자들이 수긍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찢기면서 짐승 같이 살아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그 뜨거운 열정은 언제부터 가지셨습니까? 목사님은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였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싸매주고 몸부림을 쳐왔기 때문에 지금 수많은 탈북자들이 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 동포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통곡하며 기도 해왔던 일이 얼마나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미주 땅 구석구석을 누비고 한국땅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멀리는 구라파까지 찾아가서 잠들어 있던 목회자들을 흔들어 깨우고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통곡 기도회를 이끌어 나가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차례 동행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에 가슴이 쏴 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LA 지역, 오렌지 카운티 지역, 얼바인지역, 워싱턴 DC ,한국의 여러 지역 멀리는 동독 땅 라이프치히 지방까지 같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많은 통곡 기도회 가운데 독일 라이프 친히 에서 열렸던 그 기도회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2년도 1월 31일부터 4-5일간 계속된 기도회 같습니다 그 당시 구라파 지역에는 영하 16-17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계속되고 있어 400여 명이 넘는 동사자가 나왔다고 매스컴이 대서특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가 동서독 간의 통일을 이루어낸 기도의 요람이었던 것을 안 이후에 목사님이 먼저 답사를 하고 교섭을 해서 기도회를 열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에 알았습니다 구라파 지역과 한국 그리고 미주 지역에서 관심을 가자고 있는 목회자들 50여 명과 베델 교회 교인들 20여 명이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새벽 5시에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모인 새벽 기도회는 미끄러운 얼음판을 조심조심 걸어가서 모였습니다. 냉기가 감도는 본당에서 뜨겁게 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했던 것도 지금 기억됩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일행들은 손에 손에 "Freedom for North Korea"라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위치면서 시가행진도 했습니다. 라이프치히 에 있는 북한 대사관 앞에 가서도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는 말에 얼어붙어 있는 아스팔트 길에 응거 주춤 무픞을 꿇고 30여 분간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잎술이 덜덜 떨리는데도 목사님은 성명서를 큰 소리로 다 읽어 내려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독일 경찰들이 우리 시위대를 앞뒤에서 호위해 준 일입니다. 전 이런 현장을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어 제가 쓴 책에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이런 귀한 일들을 남겨 두고 목사님이 먼저 가시면 누가 이런 일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 10월 31일 목사님이 예기치 않는 사고를 당하신 후에 목사님이 계시던 병원을 몇 차례 찾아봤는데 그때마다 눈을 감고 계시고 대화가 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2월 18일에 찾아뵈면서 목사님의 이름을 몇 차례 불렀더니 실낱같은 눈을 뜨시길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습니다 얼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제 가슴에 오랫동안 남겨 두고 싶은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미주 복음 방송국에서 목사님이 진행하고 있던 칼럼 방송도 제가 대신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까지 1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바울 사도의 고백 같이 선한 싸움 잘 싸우셨습니다. 달려갈 길도 잘 달려가셨습니다. 믿음도 잘 지켰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이 일어나셔서 "손 목사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씀하시면서 품에 안고 등을 두들겨주고 계실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면류관도 받으셨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목사님을 마지막 보내는 천국 환송 예배 사간에 수많은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자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통해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고 손인식 목사님의 꿈을 가슴에 새기고 달려갑시다!
1990년 40대 초반의 한 목사가 동부에서 서부 얼바인으로 옵니다. 그동안 서로의 상처로 침체 속에 있던 얼바인 베델교회가 치유되며 기지개를 펴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깊은 감동을 주는 복음 메시지에 많은 탕자들이 돌아옵니다. 감성을 터치하며 삶의 변화를 주는 메시지는 테이프를 통해 남가주 지역뿐 아니라 전국으로 퍼져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손인식 목사를 보내시고 사용하셔서 베델교회는 양적 성장과 영적 부흥을 경험합니다.
베델교회는 이민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하면서 동족 구원을 위한 제사장 교회의 사명을 자각합니다. 교회성장 실험교실을 통해 많은 동역자들과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와 비전을 나눕니다. 손인식 목사는 이민 목회자의 어려움을 아름다운 모습,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승화시킨 승리의 길을 보여주며 많은 동역자들을 격려하고 도전케하는 멘토였습니다.
조국을 위해 애통해했던 손 목사는 북한 동족에 대한 아픔을 깊이 느끼는 행동하는 양심이었습니다. 나성한인감리교회 송기성(현재 정동제일교회) 목사, 휴스턴한인장로교회 임창호(고신대 교수) 목사 등과 뜻을 모아 '북한자유를 위한 한국교회연합'(KCC)을 출범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조국분단의 아픈 마음에 불을 지펴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호응하며 뜨거운 통곡기도회를 진행토록 하였습니다.
2004년 9월 27-28일 LA에서 목회자 1600명이 북한 동족 해방과 구원을 위해 부르짖는 눈물의 통곡기도는 천둥이 치는 듯 강력하여 참석한 스스로들도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어 상원에 계류되어 있던 북한 인권법안이 대회 중인 이튿날에 통과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북한 동족의 해방과 구원을 위한 통곡기도운동의 불길이 북한과 평양이 열리는 그날까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지와 목적으로 "그날까지 선교연합" UTD(Until The Day)-KCC라는 선교연합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2004년 당시 리더들은 미 국무부에서 지원하겠다는70만불을 거절하고 정치성을 배제한 기독교인들의 순수한 기도운동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전 세계 교회들과 함께 오랜 세월 짐승 취급을 받으며 노예 상태로 고통과 굶주림 속에 있는 북녘 동포들을 구원하도록 역사의 주인이신 전능자 하나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연합 기도 운동으로 발전합니다.
손 목사는 전 세계 자유민과 양심인들에게 북한의 처참한 참상을 알려 북한을 향한 양심선언과 인권 회복에 동참하도록 하여 북한 세습독재 체재를 외부적으로 허무는 역할도 감당했습니다.
손 목사는 은퇴하며 북한 구원을 위한 베델교회 파송 선교사로 미국, 한국, 유럽을 오가며 북한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위한 통곡기도회, 탈북 지원,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집회, 탈북민과 북한 고아들을 보호 법안 마련과 탈북민 자녀들의 교육을 도우며 계속 달려왔습니다.
특별히 힐링 킹덤(Healing kingdom) 사역을 통해 북한 땅에서 그리고 탈북과정에서 겪은 깊고 처절한 아픔과 상처들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탈북 여성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하고 찢겨진 자존감을 회복하여 비전의 사람들로 만들어 왔습니다. 사랑으로 치유받고 비전을 가진 탈북여성들이 북한이 열리는 날이 오면 북한 동족들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 사명을 감당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손 목사는 이제 북한의 상황이 내일을 모르는 급변과 격변 속에 들어가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지금 북한 지하 성도들과 정치범강제수용소를 포함한 동족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 동참하지 않는다면 북한 해방의 날에 후회하며 부끄러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을 경고하며 "힘은 합쳐져야 진정한 힘이 되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라고 도전했습니다. 짐승처럼 취급당하며 굶어 죽어가는 동족을 외면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모욕이요 후회 덩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의 끔찍한 독재가 끝이 나고 문이 열리면 살아날 사람들은 지하 기독교인들이요,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자들이겠지만 그날 가장 수치와 모욕을 겪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일지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손 목사는 시간관념이 남달랐습니다. 특별 새벽집회에 말씀을 부탁받고 얼바인에 갔을 때 새벽집회 전에 설교시간 23분을 요청받고 놀랐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통곡기도대회는 여러 번의 설교와 기도 인도, 간증들, 찬양,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순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합집회에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도 예상 시간에 정확하게 끝마쳐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습니다. 특히 서울 영락교회에서 통곡기도대회를 가질 때 한국 목사들이 진행과 시간 엄수에 놀라워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한 손 목사는 최근 부쩍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아! 손인식 목사!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손 목사를 사랑했던 베델 성도들을 위시한 많은 성도들과 탈북민들과 사역자들을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나님께 항의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모자란 나이기에 모든 것을 아시는 분에게 항복합니다. 그러나 모세를 데려가셨으니 수백수천의 여호수아를 달라고 떼를 써 봅니다. 손인식 목사님 잠깐 후에 만납시다.
누구를 만나도 사랑과 격려와 비전으로 가슴을 뜨겁게 하셨던 손인식 목사님은 암울한 민족의 역사 속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요 어둠 속에 길을 밝히는 큰 별이었습니다.
손인식 목사님의 꿈, 우리들의 꿈은 '남북이 하나 되어 민족과 세계를 섬기는 가운데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꿈'입니다. 손인식 목사님이 무엇을 원하실까요? 자! 일어납시다! 동지들이여! 참 사람의 길을 보여주신 손인식 목사님을 추모하며 그의 꿈을 가슴에 새기고 달려갑시다.
자유 평화 통일 위해 에스라처럼, 느헤미야처럼 혼신의 힘 쏟으셨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이 성경 말씀은 손인식 목사님을 소천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긴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목사님은 세상을 비추는 궁창의 빛이요 우리의 마음에 별 같이 영원히 빛나는 분이십니다.
목사님의 호탕한 웃음과 인자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과 유머 넘치는 말씀, 만날 때마다 안아주시는 따뜻한 가슴은 힘들고 지친 후배 목회자들이 기대고 싶은 큰 나무 같은 분이셨지요.
목사님은 지성과 감성과 영성, 어느 하나도 부족함 없는 분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큰 그림으로 그리면서도 하나하나 챙기시는 섬세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와 한민족을 마음에 담으면서도 한 생명을 한 생명을 귀하게 붙들고 함께 웃고 함께 웃는 목사님이셨습니다.
말씀 집회와 통곡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눈가에 고이는 눈물과 울컥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은 천생 작은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했던 과거와 목회의 어려웠던 순간들도 투명하게 겸손히 나누는 목사님은 진정 닮고 싶은 매력적인 분이셨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부러울 만큼 많은 은사를 가지고 계신 목사님이십니다. 목회자 세미나 강의 중 찬송가를 부를 때 한 번은 반주자가 준비되지 않아서 당신께서 쑥스러워하시면서 직접 찬송가를 반주하는 멋있는 모습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입니다.
결코 녹녹지 않는 이민 목회에도 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누구도 따르기 힘든 목사님의 열정과 추진력은 지금의 베델교회와 세계 선교 그리고 특히 그날까지 선교연합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쉼을 위한 은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민족을 위한 사명에 자신을 불태우기 원하셨습니다.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민족의 염원이며 한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평화통일을 위해 에스라처럼, 느헤미야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부으신 분이셨습니다. 늘 목사님은 "저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길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이제 목사님을 보내야 할 수밖에 없는 참으로 슬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길 마치고 믿음을 지키신 우리 목사님, 이제는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과 함께 의의 면류관을 쓰시고 먼저 간 모든 믿음의 선진들의 반열에 서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뵈옵니다.
목사님! 세월이 흘러가면 잊어진다고 하지만 목사님의 모습과 가신 그 길과 자취는 우리들 마음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 날 것입니다. 목사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다시 천국에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