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임동선 목사님의 사역적 열매는 희생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세상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다 배설물처럼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환난과 고통을 당하여 예수의 흔적을 가진 목회자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고 임동선 목사 3주기 추모예배가 지난 22일, 동양선교교회(담임 김지훈 목사)에서 거행됐다.

예배는 김찬우 목사의 사회로 김기성 원로장로가 기도했으며 김지훈 목사가 "높은 부르심"(고린도전서 9:4-12)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유가족 대표로 월드미션대학교 총장인 임성진 박사가 추모사를 전하고 풀러신학교 임윤택 교수, LA 디사이플교회 남종성 목사가 추모 서간 기고 후기를 전했다. 추모예배는 세계복음선교연합회 남윤희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설교한 김지훈 목사는 "고 임동선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자신의 편안함과 유익을 내려놓으신 미주 이민교회의 큰 어른이었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당신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기를 쉬지 않으셨다"고 회고하며 "십자가 생명의 복음을 삶으로 보이신 고인의 모습을 따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길 원한다"고 전했다.

추모사에서 임성진 총장은 "고 임동선 목사님은 이민 목회자요, 전도자요, 또 교육자로 활약하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자신의 삶을 복음의 열정으로 불사르고 동양선교교회(OMC), 세계복음선교연합회(WEMA), 월드미션대학교(WMU)를 세워 복음 전파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 놓으셨다"며 "복음 전파를 향한 열정의 불씨를 받은 우리는 그분의 정신을 본받아, 복음 들고 온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거룩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추모 서간 후기를 전한 풀러신학교 임윤택 교수 고 임동선 목사의 선교신학을 '하나님의 선교신학', '바울 선교신학', '디아스포라 선교신학', '부흥 선교신학', '성령 선교신학', 선교사 교회신학' 등 7가지로 정리하면서 "자신의 모든 삶을 세계 선교에 쏟아부은 하나님의 일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추모 서간 후기를 전한 남종성 목사는 "고 임동선 목사님 삶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돌아보면서, "목사님, 이렇게 살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게 됐다"며 "우리에게 남겨주신 신앙의 아름다운 유산을 재해석하고, 믿음과 헌신으로 그분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원한다"고 전했다.

예배에 이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의 지휘로 추모 음악회가 진행됐다. 음악회는 '연합', '선교', '소망'이란 주제로 LAKMA 챔버 오케스트라, 월드미션대학교 챔버 콰이어, 테너 오위영, 소프라노 김미진, 양유진, 바리톤 장상근 등이 연주자로 나서, 고 임동선 목사가 추구하며 삶으로 보였던 복음의 진리를 노래했다.

또 임성진 박사는 고 임동선 목사 추모 3주기를 맞아 출간된 "임동선 목사의 선교신학"이란 책을 소개했다. 책에는 디아스포라 선교신학자 임동선 연구를 비롯해, 25명이 '임동선 목사의 선교신학', '동양선교교회 나무들과 아름다운 열매들', '그리운 목사님 우리 목사님'을 주제로 고인의 선교 열정과 신학을 정리해 엮었다.

한편 고 임동선 목사는 1923년 경기도 부천 출생으로 서울신학대와 숭실대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1948년 서울 아현성결교회 중고등부 전도사를 시작으로, 한국 공군 초대 군종감(대령)을 지내며 젊은 시절을 군복음화에 헌신하다가 퇴임 후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왔다. 

한인 이민 선교의 선구자로 불렸던 임 목사는 1970년 47세에 '선교·교육·봉사'라는 3대 기치를 내걸고 동양선교교회를 사택에서 개척해, 1990년 은퇴하기까지 동양선교교회를 LA를 대표하는 한인 이민교회로 성장시켰다. 1987년에는 전 세계 90여 개 교회와 기관을 지원하는 세계복음선교연합회를 조직했으며, 1989년에는 월드미션대학교를 설립해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를 배출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임동선 목사는 2016년 9월, 93세로 소천하기 일주일 전까지도 남미 4개국 단기선교를 다녀올 정도로 선교에 그의 온 삶을 바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