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身土不二): 토지에 묶인 인간, 나라에 갇힌 인생 

'명당이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이다!'. 금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영화 <명당>의 기독교적 독법을 안내합니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이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씨 가문의 계획을 막다 가족을 잃게 됩니다. 13년 후, 복수를 꿈꾸는 박재상 앞에 세상을 뒤집고 싶은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나타나 함께 장동 김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합니다. 

뜻을 함께하여 김좌근(백윤식) 부자에게 접근한 박재상과 흥선은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서로 다른 뜻을 품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조승우와 지성 외에도 김성균(김병기), 문채원(초선), 유재명(구용식), 박충선(정만인), 이원근(헌종), 김민재 등이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토지와 민족: 풍수지리 사상에 좌우되어 온 한민족의 운명

한국의 풍수지리 사상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정신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나말여초(羅末麗初) 시기 체계화되었다.

후삼국 시절, 당대 풍수지리 사상의 대가 도선국사는 왕건의 부친 왕륭에게 송악산 기슭에 터를 잡아 집을 삼십육간으로 짓고, 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게 하면 나라를 평정할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왕륭은 도선국사의 말대로 아들의 이름을 왕건으로 지었으며, 이 아이는 훗날 자라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다.

왕씨 일가가 왕조를 세울 것이라는 도선국사의 예언과 이를 뒷받침하던 풍수지리 이론은 지방호족들의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고려 초 왕실에게 통치의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력이념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풍수지리 사상은 단지 개인과 가문의 안녕과 영달만이 아니라 나라와 왕실의 평안과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이념의 한 부분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영화 <명당>은 이처럼 민족이념으로 자리잡은 풍수지리 사상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에 선친을 안장해 자신의 한맺힌 야심을 채우려는 흥선군 이하응(지성 분)의 광기어린 행태, 그리고 이런 이하응의 야심이 국운을 망가뜨릴 것을 알고 그를 막으려는 풍수사 박재상(조승우 분)의 분전은, 풍수지리 사상이 단지 특정 왕실의 권세유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민족 창생 전체를 아우르는 국운의 흥왕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민족주의 애민(愛民)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엔딩은 이런 정서가 극대화되는 자리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 조선 명문가이자 거부 가문의 수장 이시영∙이회영 형제(오성과 한음의 오성인 이항복 선생의 후손)가 가산을 팔아 독립군을 양성할 무관학교를 지으려 한다. 두 형제는 세상과 담을 쌓고 은거해 있던 풍수사 박재상을 찾아와 나라를 구할 인재들을 기르기에 합당한 명당 터를 점지해 달라고 부탁한다.

(일제는 1905년 정부 대신 5명(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찬성으로 을사늑약 체결 후 내각 대신 7인(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 등 정미칠적)에 의해 1907년(정미년) 7월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결국 1910년 한일합방에 의해 국권을 완전히 빼앗긴다.)

박재상과 그의 친우 구용식(유재명 분)은 서간도에 위치한 명당을 알려준 뒤 그들이 평생 모은 재물을 이시영, 이회영 형제에게 얹어준다. 그리고 무관학교 이름을 신흥(新興)으로 정해준다.

명당
▲한국광복군 창설식 사진(1940). 신흥무관학교 출신 군관들이 광복군 창설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흥무관학교 건립자이자 독립운동가 형제인 이시영∙이회영 형제의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각색한 이 마지막 장면은, 한민족에게 있어 풍수지리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풍수지리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 함께 살고 함께 흥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민족유산이라는 믿음이 이 엔딩 장면을 통해 표현된다.

이 장면의 이야기 자체는 허구지만, 전달되는 메시지만큼은 사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실상 풍수지리 사상에 얽힌 이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는 풍수지리 사상을 역이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한일합방 후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인데, 경복궁의 풍수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유하는 광화문을 철거하고 그 안뜰에 날 일(日)자로 건물을 건설했다. 혹자는 북악산-총독부-서울시청 건물을 위에서 내려본 모습이 대일본(大日本)을 닮았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역사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한 속설로 밝혀졌다.

풍수지리 사상과 관련해서 일제가 저질렀다고 하는 만행의 하나로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전역의 명당마다 쇠말뚝을 박아두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속설 역시 풍수지리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근거없는 풍문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문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한국인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이런 속설을 믿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풍수지리 사상이 한국인들에게 있어 얼마만큼의 민족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사례라 할 수 있다.

◈토지와 신앙: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의 하나님의 나라에 매인 소망

이처럼 풍수지리 사상이 민족정신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은, 일찍이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하던 외국인 선교사들도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한 미국인 선교사의 실제 모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선교사는 한국에서 발행된 최초의 근대 잡지 <코리언 레포지토리>(Korean Repository)에 '지관(地官)'이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풍수지리 사상이 산의 모양새를 보고 조상과 후손의 상호관계를 읽는 행위로서, 자연을 낭만적인 방법으로 의인화시킨 것이라고 진단했다.

명당
▲헐버트 선교사와 그가 창간한 한국 최초 근대 잡지 <코리언 레포지토리>. 헐버트 선교사는 이 잡지에 한국의 풍수지리 사상을 다룬 "지관"이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헐버트 선교사 등이 비판했던 고전적 형태의 풍수지리 사상은 한국교회에서 미신으로 규정되어 왔고, 우상숭배에 맞닿은 이교적 종교성의 일환으로 규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교회 내부에서 새로운 모습을 덧입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반공신앙과 연결된 한민족 선민주의 사상을 들 수 있다. 현재로서는 구시대적인 신앙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1950-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교회 신앙행태의 한 주축을 담당했던 이 선민사상은, 한반도를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여 이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가나안 복지(福地)로 믿는 특이한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사상에 심취한 일부 설교자들은, 만일 교인들이 헌신과 순종의 삶을 멀리하며 북한 공산당 괴뢰에 대한 경계심을 버리고 산다면 구약에 예언된 대로(단 11:1-45) 북방 왕(김일성)이 남방 왕(한국 대통령)을 치는 비극이 발생할 것이라 설교하기도 하였다.

이런 반공주의적 선민사상이 한국교회 내에 널리 퍼졌던 것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한국교회의 다수를 이루던 때의 일로, 북한의 반기독교적 정치성향과 전쟁범죄에 대해 당시의 많은 교인들이 느끼던 원한과 두려움, 그리고 경각심을 생각해 본다면 그 발생동기가 충분히 이해될만한 신앙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이교적 종교성인 풍수지리 사상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쉬이 공감할 수 없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때로는 조선 중기에 쓰여진 저자미상의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 등장한 십승지(十勝地) 사상을 물려받은 특이한 사상이 한국교회 내부에서 목격되기도 한다.

여기서 십승지란 조선 천지에 어떤 환란이 일어나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열 곳의 땅을 말한다. 이 십승지 사상은 임진왜란-정유재란-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더더욱 유명해졌는데, 실제 정감록에서 말한 열 곳은 전란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탄 것이다.

사실 이 십승지 사상이 진정 미래를 바라본 예언이었는지는 모를 일인데, 이는 이 열 곳의 땅이 모두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는 터라, 굳이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거의 찾아가지 않을 곳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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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예언서 <정감록>과 십승지. 십승지 대부분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어쨌든, 환란이 일어나도 안전한 땅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믿음은 한국교회 내부에서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되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천을 성지처럼 여기는 신천지나 JMS의 총본산 월명동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그것이 알고싶다>에도 방영돼 사회문제화된 바 있던 은혜로교회 역시 유사한 형태로 남태평양 피지를 지상낙원이자 성지라고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통신앙에서 벗어난 신앙교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런 종교단체들에서 한국 고유의 종교성 가운데 하나인 풍수지리 사상과 유사한 믿음이 자주 목격된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은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한국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어려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모범이자 불가역적 지침인 성서, 특히 신약성서는 우리에게 토지에 묶인 운명을 벗어나라 가르치고 있다. 저 유명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은, 특정 지역, 특정 토지가 아닌 복음을 전할 사람을 돌아보도록 명한다.

베드로를 위시한 열두 사도 역시 대부분 이방인들의 땅에서 제자를 삼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들은 구약의 복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더 이상 복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시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곳이 복지라는 믿음을 갖고 살고, 순교하고, 소천했던 것이다.

영화 <명당>은 자연물 숭배사상에 여전히 영향받고 있는, 토지에 묶여 있는 한국인들의 운명론적 종교성을 들춰내는 작품이다. 풍수사상이 세부적인 측면에서 실증적이고 인문지리적인 내용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체계 전체를 떠받치는 기본정신은 토지를 신적 존재로 격상시키는 우상숭배라 할 수 있다.

명당
▲토지에 인간의 운명을 맡기는 풍수지리 사상은 자연물을 숭배하는 이교적 종교성이 한국 고유의 방식으로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명당자리라 하는 요처들마다 일본인들의 주신 아마테라스 오오카미(天照大御神)와 죽은 일본 왕들의 영령을 섬기는 신사를 지었다. 풍수지리 사상에 얽힌 종교성을 그들의 우상숭배 전통에 이용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미신적 우상숭배 전통 때문에 고통받고 많은 순교자들을 낳았다. 이처럼 자연물 숭배의 종교성에 매달렸던 일제의 운명은 어떠했던가. 2차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 전역이 전화에 휩쓸려 무수한 사상자를 낳았을 뿐이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이 땅의 운명에 매여있지 않고 저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 맡겨져 있다. 영화 <명당>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혹여 갖고있을지 모를 자연물 숭배사상의 정체, 민족적 종교성의 정체를 알아보기에 적절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또한 민족 고유의 이교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순전한 성서적 신앙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볼 기회로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