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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인생의 행복, 진로의 선택을 말할 때, 자기가 원하던 일을 하게 된 사람이야말로 진짜 성공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건설 노동자가 되거나, 에어로빅 강사가 적격인 사람을 억지로 회계 공무원으로 만든다면 고역일 것이다. 그래서 나쁜 직장이나 부족한 사람보다 더 큰 문제는 직업과 사람의 잘못된 매칭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그들의 일 대부분은 진짜 원하던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일인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그 분야의 반복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동경했던 일에 오히려 흥미를 잃고 환상을 깨는 허탈함도 겪어야 한다.

사실상 모든 일이 그렇다. 성취의 짜릿함을 주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며, 나머지는 지루한 단순 작업의 반복이 많다. 직장생활도 교회생활도 모두 특별할 것 없는 반복적인 일들의 연속이다. 아니, 우리 삶 자체가 지루함의 되풀이다.

7월이 되어 에어컨 덮개를 벗기고 통풍구를 닦고 환기구를 분리해 세척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몇 달 전에 했던 일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나....

하긴 에어컨을 다시 켜기 위해 닦는 일을 열다섯 번 넘게 한 것 같은데 다 기억도 안 나니, '지난번'이라고 생각한 것조차 반드시 작년은 아닐 수도 있을 만큼 세월은 빠르고, 살아가면서 하는 일도 대단한 일보다는 이렇게 재미없고 따분한 반복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부들은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단다. 식구들이 제각각 들어올 때마다 밥을 차려주고 치워야 자기 일이 끝난단다. 그렇게 누구나 반복되는 일상을 산다. 밥상을 받는 사람도 매일 별식이 아니라 늘 먹던 것, 익숙한 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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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당연히 늘 재미있을 수도 없고, 늘 '익사이팅'하게만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산다 해도 익숙해지면 그 삶이 다시 평범한 일상이 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즐거움을 주는 일은 소유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늘 하는 일, 늘 지나는 일상은 따분한 반복일 수 있어도, 그 반복과 단순함에는 힘이 있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도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디어를 길어올릴 수 없다. 그런 일들은 뇌를 재시동하는 것처럼 주의를 환기시키고 정돈해준다.

반복의 마력은 기분 좋은 중독을 부른다. 늘 걷는 길을 또 걷고 싶고, 매일 가던 카페에 가게 된다. 그 장소가 사라지면 서운하다. 반복하다 보니 추억이 쌓이고 사연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단한 곳에 가서 먹어 봐야, 늘 먹던 집밥이나 혼자 편하게 끓여 먹는 라면 한 그릇이 더 생각나듯이 좋은 의미의 중독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중독'은 반복학습에서 나온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처럼 성공의 경험들이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 이 즐거움은 실패할 리 없는 안정감에서 오기도 한다.

행복한 신앙생활의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목회자가 되면 안 된다고 누가 그랬다. 신자로서도 행복했던 사람이 행복한 목양자가 된다는 것인데, 당연한 이치다. 교회에서 상처만 받은 사람이 편안한 교회를 만들고 이끌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복한 가정의 자녀들이 자라서, 행복한 가정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자녀를 결혼시킬 때 상대방 배우자의 가정환경을 보려는 것은 이래서다. 반드시 그 집안의 재산이나 배경을 보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반드시 자라온 환경을 살펴야 한다.

말하자면 어떤 '반복'을 경험한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의 경험도 소중하지만 인내의 경험도 귀한 것이다. 아무리 가정 형편이 안 좋았더라도, 그 세월이 오래 지속되고 그것을 버텼다면 그 사람은 좋은 훈련을 받은 배우자다. 가난한 날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 부요함도 더 잘 누릴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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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반복의 지루함을 어떻게 잘 넘길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에 실망하고,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일탈을 꿈꾸기도 하고, 무언가 변화를 갈망하기도 한다.

늘 직구만 던지면 상대방 타자가 긴장하지 않듯이, 부부의 삶에서 변화구는 중요한 요소지만 그래도 평소 루틴하게 훈련을 잘 해온 투수가 직구와 변화구에 모두 능숙한 법이다.

우선 변화와 탈출에 대한 열망을 조금 내려놔야 한다. 그리고 따분함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집에 잘 머물지 않고 당구장에서 사는 사람은 짜장면도 당구장에서 먹어야 맛있고, 가족들의 얼굴도 빨간 공, 흰 공으로 보인다. 바둑에 미친 사람은 누워서도 천장 마감재 사이로 검은 돌, 흰 돌이 어른거린다.

반면에 가족이 우선인 사람은 무엇을 보아도 가족 생각이 먼저 난다. 무엇을 하든지 집에서 하는 일들이 즐거우면 그 사람은 밖으로 나돌지 않는다.

그러려면 집에서 지내는 좋은 시간들이 누적돼야 한다. 그것이 반복되면 추억이 되고 회귀본능이 되어, 멀리 날 수도 있는 비둘기가 되돌아오듯 가정에 둥지를 트는 것이다.

일상을 즐겁게 느끼기는 쉽지 않고, 삶은 각자 다르니 그 방법을 누가 제시할 수도 없겠지만,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로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싶다. 가족 구성원이 반복적으로 하는 봉사는 큰 기쁨을 가져다주고, 행복의 경험을 선사한다. 모든 결혼생활의 희생은 이런 기쁨을 바탕으로 지루함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름마다 에어컨을 닦고, 매일 쓰레기봉투를 내놓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가족이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는 일로 여겨 스스로에게 보람과 기쁨이 되어야 한다.

주부는 밥상을 여러 번 차린다고 힘들다며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이 밥상 앞에서 먹고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밥을 먹는 식구들도 그 느낌을 전달받으면, 잔소리도 반찬이 된다.

작은 일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크고 특별한 일에서도 감동이 없다. 일상을 즐길 줄 모르면 일탈도 재미가 없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일 뿐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면, 그 뒤에 숨겨진 피나는 반복 훈련은 필수일 것이다. 그런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이 메달을 목에 걸 수 없듯이,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반복의 미학을 깨닫지 못하면 방황하게 되고, 끝없이 다른 꿈을 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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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놀이동산 사진을 간직하고, 특별한 곳에 갔던 추억을 저장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추억도 힘들게 버틴 일상이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액자 속에는 특별한 기념사진이 들어 있지만, 그 뒷면에는 더 여러 장의 일상이 들어 있다. 부모님을 생각해도 유원지에서의 모습보다, 매일을 견디시던 뒷모습이 더 애잔하다. 그것이 진정한 기념사진일 것이다.

우리 뇌는 비슷한 기억들을 거의 같은 것으로 분류해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생활이 단조롭고 지루해도, 지나고 나면 아주 빨리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을 더욱 기억하려고 애써야만 나중에 남는 것이 있고, 세월의 무상함도 덜 느끼는 법이다.

일상이 하찮거나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잘 생각해보면, 소중한 것은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도 자꾸 듣고 싶은 법이다.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아침의 이슬방울 쉬 사라짐 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듣기 쉽게 늘 말해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이 찬송가처럼 늘 반복하는 듯 하지만 매일 새로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매일 보는 성경 구절도 날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매일 보는 하늘도 비슷한 것 같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정도 가족도 늘 똑같은 것 같지만 매일 다르다. 지루함 같으나 그것은 익숙함이다.

다만 행복한 반복은 사랑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같은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지 않듯, 가족도 사랑할 때만이 반복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는 그 되풀이되는 일상이 기분 좋은 중독이 되어 평생 즐거움을 누린다. 반복의 기술이 선사하는 행복의 선순환을 결코 놓치지 말라.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