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돌을 씹었는데, 얼마나 큰 돌이었는지 제 어금니가 흔들릴 정도로 아팠고, 아직까지 그 어금니 쪽으로는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픈 이와 며칠 씨름을 하면서, 언젠가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은 이와 혀 사이에 “누가 더 강하냐, 누가 이길 수 있느냐?”하는 시비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장 이기는 것은 이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화가 나면 이가 혀를 깨물어 버립니다. 그러면 혀는 상처를 입어 피가 나고 이는 의기양양하게 “봐라! 네 놈이 이길 수 있니?” 하면서 약을 올리곤 하였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혀는 “참아야지!” 하면서 그 수모와 괄시,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월이 갈수록, 저의 경우와 같이 어떤 때는 이가 돌을 깨물어서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입에 당기는 단 것을 많이 먹고 이를 잘 닦지를 않았더니 충치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또 나이가 들면서 풍치도 생기고, 결국 이가 하나 둘 빠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혀는 “이때다!” 생각을 하고,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향하여 “그래도 나를 이길 수 있니?”하고 점잖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가 하는 말이 “그래, 내가 어리석었어. 강하기만 하면 다 이기는 줄 알았는데, 강하다 보니 타협도 없고, 고집만 있어서 콱콱 깨물고 보니 피차 깨지고, 내 팔자가 말이 아니구나. 그리고 그렇게 강하다고, 힘이 세다고 뽐내던 내 동료들도 거의 다 빠졌구나. 그런데 부드러운 혀야! 너는 빠지는 법이 없지 않니? 네가 부럽구나!”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과 사회 생활에 웅변적인 교훈을 주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첫째는 혀의 생태를 통하여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며칠 앞, 일, 이년 앞이 아니라, 먼 장래를 내다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준비하고 계획한 목표를 향해 꿈을 잃지 않고 굳굳히 나아가는 자세입니다. 개인의 장래도, 한 가정의 자녀 교육에도, 사업체의 경제 구조에도, 한 단체의 제도에도, 사회의 질서에도, 한 나라의 정책에 이르기 까지 먼 앞날을 내다보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장 오늘 내가 불편하기 때문에, 오늘 나에게 이익이 없기 때문에, 헌법을 바꾸고, 회칙을 개정하며, 제도를 바꾸는 것 보다는 당장 내게는 이익이 없어도, 우리 세대에는 가질 수 없더라도 가정의, 단체의, 사회의,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들의 후배들을 위해서 오늘 사과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인내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결국은 부드러움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위를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경직화 돼 있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봅니다. 딱딱한 ‘이’ 처럼 서로가 으르렁대는 생존 경쟁이 치열한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습니까? 딱딱한 이 같은 삶은 적개심, 지나친 경쟁, 아량 없는 이기주의, 여유 없는 좁은 마음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혀와 같은 삶이란 인내를 바탕으로 하는 봉사와 사랑과 이해, 그리고 존경하는 부드러움의 논리, 곧 혀와 같은 부드러움의 삶이 아닐까요?
결국에는 사랑의 부드러움이 승리합니다. 우리에게는 위에 있는 사랑을 쳐다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제 아무리 딱딱하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혀처럼 부드러워져야 하겠다는 자기 겸허의 정립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문제는 자기에게서 풀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서부터 풀어보려고 하는 이 같은 사람들의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앞을 내다 보아야 하는 눈도 필요하고, 위를 쳐다보는 눈도 필요하지만,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내적인 눈입니다.
LA 동포 여러분!
이와 혀의 대결에서, 둘 중 어느 것이 이기겠느냐? 고 오늘도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다.
한번은 이와 혀 사이에 “누가 더 강하냐, 누가 이길 수 있느냐?”하는 시비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장 이기는 것은 이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화가 나면 이가 혀를 깨물어 버립니다. 그러면 혀는 상처를 입어 피가 나고 이는 의기양양하게 “봐라! 네 놈이 이길 수 있니?” 하면서 약을 올리곤 하였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혀는 “참아야지!” 하면서 그 수모와 괄시,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월이 갈수록, 저의 경우와 같이 어떤 때는 이가 돌을 깨물어서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입에 당기는 단 것을 많이 먹고 이를 잘 닦지를 않았더니 충치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또 나이가 들면서 풍치도 생기고, 결국 이가 하나 둘 빠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혀는 “이때다!” 생각을 하고,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향하여 “그래도 나를 이길 수 있니?”하고 점잖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가 하는 말이 “그래, 내가 어리석었어. 강하기만 하면 다 이기는 줄 알았는데, 강하다 보니 타협도 없고, 고집만 있어서 콱콱 깨물고 보니 피차 깨지고, 내 팔자가 말이 아니구나. 그리고 그렇게 강하다고, 힘이 세다고 뽐내던 내 동료들도 거의 다 빠졌구나. 그런데 부드러운 혀야! 너는 빠지는 법이 없지 않니? 네가 부럽구나!”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과 사회 생활에 웅변적인 교훈을 주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첫째는 혀의 생태를 통하여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며칠 앞, 일, 이년 앞이 아니라, 먼 장래를 내다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준비하고 계획한 목표를 향해 꿈을 잃지 않고 굳굳히 나아가는 자세입니다. 개인의 장래도, 한 가정의 자녀 교육에도, 사업체의 경제 구조에도, 한 단체의 제도에도, 사회의 질서에도, 한 나라의 정책에 이르기 까지 먼 앞날을 내다보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장 오늘 내가 불편하기 때문에, 오늘 나에게 이익이 없기 때문에, 헌법을 바꾸고, 회칙을 개정하며, 제도를 바꾸는 것 보다는 당장 내게는 이익이 없어도, 우리 세대에는 가질 수 없더라도 가정의, 단체의, 사회의,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들의 후배들을 위해서 오늘 사과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인내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결국은 부드러움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위를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경직화 돼 있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봅니다. 딱딱한 ‘이’ 처럼 서로가 으르렁대는 생존 경쟁이 치열한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습니까? 딱딱한 이 같은 삶은 적개심, 지나친 경쟁, 아량 없는 이기주의, 여유 없는 좁은 마음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혀와 같은 삶이란 인내를 바탕으로 하는 봉사와 사랑과 이해, 그리고 존경하는 부드러움의 논리, 곧 혀와 같은 부드러움의 삶이 아닐까요?
결국에는 사랑의 부드러움이 승리합니다. 우리에게는 위에 있는 사랑을 쳐다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제 아무리 딱딱하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혀처럼 부드러워져야 하겠다는 자기 겸허의 정립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문제는 자기에게서 풀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서부터 풀어보려고 하는 이 같은 사람들의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앞을 내다 보아야 하는 눈도 필요하고, 위를 쳐다보는 눈도 필요하지만,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내적인 눈입니다.
LA 동포 여러분!
이와 혀의 대결에서, 둘 중 어느 것이 이기겠느냐? 고 오늘도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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