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안인권 목사
(Photo : ) 안인권 목사

최근 한 영화 평론가가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지난 십 년 동안 한국 영화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았더니 '억울한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억울하고 분한 상처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나라에 버림받고, 가진 자들의 음모에 짓밟히고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혼자의 힘으로 혹은 힘없는 사람들끼리 공조하여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 이런 스토리에 감동받는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 가슴에 아직도 한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잘못된 지배 구조의 희생양이다. 조금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자기계발이니 뭐니 하면서 노력해도 내 주제에 신분상승은 불가능해.' 상류계층에 대한 심한 질시와 반감이 깔려 있다. 1,000조원을 넘어 선 한국의 천문학적 규모의 가계부채는 상류계층을 질시하는 신분상승 욕구가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크 샌 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 왜 그토록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시대의 유명한 사상가들의 정의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열거하면서 현대사회의 복잡한 이슈들에 적용시키는 엄청난 지적 무게를 담은 어렵고 두꺼운 책이 한국에서 많이 팔린 데 대해서 저자인 마이크 샌델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물론 그는 어려운 철학 논리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천재적인 선생님이다. TV에서 방영된 그의 강의 시청률이 상당히 높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에 열광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의란 무엇인가"란 주제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인에게는 자신의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이 이렇게 안 풀리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강자 중심주의의 부패한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한 맺힌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완벽하게 깨끗하고 공평하고 정직한 시스템은 없다. 유사 이래로 다양한 정치 체제와 사회 시스템이 존재해 왔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사람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과 아울러 자신의 불완전보다 불완전한 다른 사람이 문제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설령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끝내는 악하게 변질된다. 내가 운명의 피해자라는 생각, 불리한 조건 때문에 경기에서 졌다는 생각을 한시바삐 뽑아 버리지 않으면 패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나는 억울하다.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서 나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한다. 먼저 출발한 그들을 어느 세월에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 게임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장 뇌리에서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한다. 자신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다.

상대적 박탈감에 억울해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나라를 망치려는 불순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편승하는 잘못된 판단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은 암울하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은 항상 핑계거리를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이다. 실패의 핑계를 절대 신봉하는 이상 실패는 보장 되어 있다.재벌 2세들을 보고 부러워하고 서러워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겨우 대학을 나왔는데 대학 입학 문보다 더 치열한 문이 취직의 문이라는 현실 앞에서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땀 흘리지 않은 돈을 가지고 남들보다 조금 빠르고 쉽게 인생을 시작한다고 치자. 그것은 결코 장기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실패를 모르는 성공이 과연 성공인가?선물인지는 모르나 성공은 아니다. 불로소득은 인생을 망치는 가장 효과적인 원인이 된다.

15세기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는 바로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막강한 해군력을 이용해서 잉카 문명과 같은 신세계의 열린 시장들을 마구 약탈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 스페인은 날이 갈수록 국력이 쇠퇴해져 갔다.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는 그 많은 돈이 나라를 일으킬 산업에 투자가 되지 않고 사치와 전쟁에 쓰였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자기들이 스스로 땀 흘려서 벌지 않고 남의 것을 힘으로 뺏어왔기에 돈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을 못했다. 당시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스페인 사람들은 근면성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스페인의 배들이 식민지에서 엄청난 보물을 계속 실어왔기 때문이다. 힘든 일은 모두 노예들에게 시키고 편히 놀고 먹은 결과가 스페인의 패망의 원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스페인이 막대한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동안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모든 물품들을 직접 생산하는 노력을 통해 산업의 인프라가 구축되어 장차의 강력한 국가 경쟁력을 준비했던 것이다.

주어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을 접근하는 자세가 다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운명이 걸린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 인생을 장난처럼 함부로 살수가 없다. 매 순간,매 사건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 뼈가 부서지게 일하면서도 졸리는 눈을 비비며 책을 읽는다. 힘 든 과정을 통해 창조적이고, 부지런해지고,강해지고,겸손해지고,인내심이 많아지는 것이다. 봄의 아름다움은 모진 겨울을 이겨낸 강인함에서 비롯되고, 베토벤의 장엄한 교향곡은 귀가 먼 아픔 속에서 탄생했고, 밀턴의 <실낙원>은 그가 실명한 가운데서 쓰여졌다. 절망을 절망으로 끝나게 해선 안 된다. 오히려 절망이야말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과거의 굴레를 끊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라 절망되는가? 절망을 정확히 인식 하는자 만이 희망의 문을 열 수 있다. 열악한 형편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핑계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다면 억울한 상황이 얼마든지 도약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