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장신대 김인수 총장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초기 한국교회의 사회개혁 활동 중 노동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 있다. 한국인들의 또 다른 구습 가운데 하나는 노동을 천시하는 것이었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곧 군자는 손으로 기구를 가지고 하는 일을 천하게 여긴다는 유교의 가르침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초기 천주교회가 한국에서 전교활동을 할 때 한국인 신부 최양업(崔良業)은 “[양반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차라리 굶어 죽으면 죽었지 일을 해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 생각을 안 합니다. 그래서 횡령과 사기와 착취로 살아갑니다. 대부분이 도박과 주정과 방탕에 빠져 있습니다.”라며 유교 전통사회가 지닌 노동경시 풍조를 지적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주자학(朱子學)을 주자 이상으로 발달시킨 결과는 공수위좌(拱手危坐)하여 손가락 하나 안 놀리고 주둥이만 까게 하여서 민족의 원기를 소진하여 버리니 남는 것은 편협한 당파싸움과 의뢰심뿐이다.”라고 한탄했다.

노동은 상놈들이나 노비들이 하는 일이고 양반들은 글이나 읽고 시나 짓는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던 사회에서 기독교는 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과감하게 노동의 신성을 역설했다. 이런 노동천시 사상은 결국 한국인들을 나태하게 만들어 한국을 둘러본 한 일본인이 돌아가 쓴 글에 한국인의 특징은 태만이라 쓴 것이 있다.

노동의 신성을 일깨우기 위한 일 문답이라는 계몽적 기사가 있다. 일 문답: 문:대한 풍쇽에 일하는 것이 좋은 거시뇨, 됴치 아니한 거시뇨? 답:됴치 안케 녁이는 거시니라. 문:엇지하여 그러한 줄 아느뇨? 답:사람이 서로 맛나 인사할 제 무엇하시오 하면 대답이 별노 하는 일 업다고 하나니 이거슨 행셰하는 사람의 의례 하는 말이어니와 셔양 풍쇽은 그러치 아니하야 만일 아모 일도 업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크게 한심스러운 사람이 되나니라. 문:일하는 것을 됴치 못하게 녁이는 표가 또 잇나뇨? 답:잇나니 나즌 사람을 가라쳐 일군이라 하고… 문:일이 어찌하여 사람에게 요긴하뇨? 답:몸에 힘도 나고 재물도 나고 정신도 나느니라. 문:엇더한 사람을 택하야 일을 가라치는 것이 올흐뇨? 답:왕의 아들브터 나즌 사람의 아들까지 가라칠지니라.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권고를 「대한그리스도인회보」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문: 셩하야 가는 나라도 잇고 쇠하야 가는 나라도 잇나니 엇짐이뇨. 답: 셩하야 가는 나라흔 백셩들이 일심으로 부지런히 일하는데 잇다하나, 그러나 그 즁에 또 생각하고 알거시 잇나니 백셩들이 날마다 부지런히 일하야 겨우 살아가는 동안에 나라흔 부지중 성하야 가나니라.” 부지런히 일하는 나라가 발전한다는 경계의 말이다.

교회는 노동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성경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라는 말씀을 종종 인용하며 노동의 신성과 근면을 강조했다. 초기 교회 지도자 윤치호는 민족의 살 길은 산업의 장려와 노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전환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한국 선교에 관심이 많아 적지 않은 돈을 기탁한 미국 에모리대학 총장이었던 캔들러(W.Candler)에게 쓰기를 “우리가 어떤 종류의 학교를 세우기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실업학교여야 합니다. 거기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구원의 진리를 통하여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 한국의 미래는 일에 달려 있다는 것, 기독교는 일하는 종교라는 것 등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덕을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의 의무들 가운데 하나’이고, 기독교 실업대학은 ‘자립하는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자립의 수단도 제공’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각 선교부가 세우는 학교에서는 이론 교육뿐만 아니라 실업 교육을 중시하여 병행하였다. 북감리교회가 세운 배재학당에는 “매우 번성한 실업과가 있었다. 3개 국어를 인쇄하는 인쇄소와 제본소를 갖추고 있었는데 둘 다 완전 고용 상태였다.”고 기록했다.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를 두고 한 말이었다. 영국 성공회도 인쇄소를 설치하여 학생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기술을 가르치고, 상업과 실업훈련을 실시했다.

남장로교회 구역의 소년학교에서도 실업교육에 치중하였는데, 기계농업(truck farming), 가마니 짜기, 벽지 바르기, 잔디 깎기, 샘 파기, 도로와 다리 수축하기, 철조망 울타리 치기, 목재 제재, 주물 등의 기술을 가르쳤다. 또한 소녀학교에서는 뜨개질하기, 단추달기, 자수, 레이스(lace) 뜨기 등의 기술 교육을 시켰다. 전남 순천지방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선교사 밴스(Mrs. Vance) 부인은 그 곳 (매산)여학교 학생들이 만든 종이 인형 5만 6천개를 미국에 팔아 적지 않은 수익이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평양의 안나 데이비스(Anna Davis) 실업과, 서울 웰즈(John D.Wells 후에 경신학교) 실업과, 송도고등보통학교의 직물과, YMCA 실업학교, 독일 베네디트 선교단의 실업학교 등이 있었다.

부한 나라는 온 국민이 근검, 절약하여 부를 축적해서 그 자본으로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받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차차 나은 삶으로 나아간 사실을 역사는 증언한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놀기만 좋아하는 나라는 어김없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낙후된 생활을 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굶주리며 고난의 삶을 산 것은 전적으로 노동을 천시해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민족성에 그 원인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선교가 남긴 업적 중 하나가 한국인들로 하여금 노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근면의 정신을 진작케 하여 열심히 일하고 근면한 삶으로 나가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