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3월 30일,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를 중심으로 차영배·이형기·정일웅·권호덕·이승구 박사 등 당시 20여 개 신학대 교수 30여 명이 모여 창립한 한국개혁신학회가 20주년을 맞았다. 한국개혁신학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살리고 한국교회의 나아길 길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다. 본지는 한국개혁신학회의 초대 회장 김영한 박사와 신임 회장 김재성 박사(국제신대 부총장, 이하 호칭 생략)를 만나 지난 20년의 의미를 듣고 게혁신학의 오늘과 내일을 점검했다.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
"지난 20년은 신학의 폭 넓히고 말씀 세우려 한 몸부림"
"故 박형룡·박윤선은 한국교회 보배... 계승·발전시켜야"
-한국개혁신학회가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김영한: 20년 전 국내 신학계는 지금보다 경직돼 있었던 것 같아요. 우선은 신학자의 수가 적었고, 그들의 신학적 관점도 다소 좁았던 게 사실이죠. 그러다 보니 배타적 분위기도, 교단 사이의 장벽도 컸습니다. 한국개혁신학회는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 종교개혁적이고 성경에 입각한 신학을 추구하고자 했어요. 신학의 폭을 보다 넓히는 데 공헌했다고 자부합니다.
김재성: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한 지금, 신임 회장으로서 조금이라도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절실함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려받은 개혁신앙, 곧 희생과 순교, 억압 속에서 지켜낸 그 신앙을 계승·발전시켜야겠다는 시대적 사명감도 있죠. 그런 점에서 국내 개혁신앙 그룹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 대립은 20주년을 맞은 한국개혁신학회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국개혁신학회의 20주년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영한: 지금은 교리와 전통이 무너진 포스트모던, 다른 말로 '신(新)사사기' 시대입니다. 쉽게 말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는 거죠. 자유와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전통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른바 '정신적 아노미'를 불러 왔고,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처럼 하나님 말씀의 기근을 가져 왔어요. 바로 이런 때, 개혁신학은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임을 역설합니다. 성경이 신앙뿐 아니라 모든 삶의 규범임을 외치고 있는 거죠. 또한 이것이 종교개혁을 이룬 선조들이 이 땅에 남긴 위대한 영성이기도 합니다.
김재성: 저 또한 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한국개혁신학회는 성경을 우선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 되살리려 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기 때문이죠. 지난 20년은 그야말로 우리를 지탱해 살아가게 하는 말씀, 그것의 교훈을 세우려 했던 치열한 몸부림이었어요. 그 의미는 앞으로도 손상되지 않고 한국개혁신학회를 존재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신학계가 이것만은 반성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김영한: 한국교회 보수신학을 대표하는 故 박형룡·박윤선 박사의 전통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보배입니다. 신학의 기초를 놓은 분들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주어진 이러한 전통을 귀한 것으로 이어받아야 해요.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 새롭게 주어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모해야 하는 거죠. 이미 언급했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동성애와 이슬람 등에 개혁신학은 대답해야만 합니다. 또한 과거 지나친 교파주의나 신학적 폐쇄성도 반성해야 해요. 조금 다르다고 그것을 틀린 것으로 몰아붙여서야 되겠습니까. 편파적이지 않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정론은 기독교강요 후반부 등장... 구원 확신 주려는 것"
"소망 가운데 영생 체험하며 완성 향해 가는 성화의 영성"
"칭의론 '새 관점'이나 '신율법주의' 등은 과도한 지성주의"
-개혁신학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재성: '하이퍼 칼비니즘'이라는 게 있습니다. 칼빈주의 중에서도, 가령 일반은총의 영역을 모두 거부하는 등 특정 교리에 있어 굉장히 근본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상이죠. 엄밀히 말해 이것과 개혁신학은 달라요. 개혁신학에 답답함을 느꼈다면, 아마 하이퍼 칼비니즘의 영향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개혁신학은, 앞서 김영한 박사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편파적이지 않아요. 흔히들 예정론 때문에 개혁신학을 오해하곤 하는데, 이 역시 일부 근본적인 주장이 불러온, 그야말로 오해일 뿐이죠.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예정론을 맨 뒷부분,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을 설명하며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었음을 강조한 것이지, 결코 예정론을 모든 문제의 '만능 키'로 삼았던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도 이렇게 잘못된 풍조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함이죠.
-최근 신학계에서 '칭의론'을 두고 신학자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김영한: 이미 받은 칭의를 최후의 심판 때 다시 받아야 한다거나 구원이 종말의 때까지 유보됐다는 건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으나 아직 그에 합당한 모습을 갖추지 않았기에 날마다 소망 가운데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와 찬송 가운데 언제나 그것을 체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 또한 영생이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화의 영성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우리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니 구원에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의롭다 함을 받아 기쁨과 소망을 누리며 사는 것, 그래서 우리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것이 바로 성화이고 그것을 또한 순교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우리의 삶 속에서 검증되는 것이죠.
김재성: 지금 칭의론이 논란이 되는 건 크게 두 가지 원인 때문입니다. 하나는 E.P. 샌더스나 제임스 던, 그리고 톰 라이트와 같은 신학계 석학들이 바울의 구원론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뒤집는, 이른바 '새 관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들은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칼빈이 주장한 '이신칭의'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즉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전통적 입장을 거부한 것이죠. 이것이 전 세계 신학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이를 두고 논쟁과 토론을 거듭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다행히 아직 한국에서 이를 적극 지지하는 신학자는 없지만, 문제는 그 영향으로 전통적 구원론 역시 강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칭의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성화도 함께 필요하다"는 소위 '신율법주의', 그리고 정반대로 "율법도 필요 없다"는 '반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칭의론을 대단히 왜곡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과도한 지성주의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식과 학문 위주의 논쟁이랄까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설사 그것이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지혜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지식과 학문으로 풀려는 오만함, 그것이 큰 실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윤리·도덕 강조는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는 것"
"대형교회 무용론은 부당... 세속적 방식 벗어나야"
-'신율법주의'를 언급하셨는데,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등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최근 교계의 분위기도 잘못된 것입니까.
김영한: 꼭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그런 것들은 지금 일부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이 세속적 관료들보다도 못한 윤리의식을 보이기 때문에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굳이 구원론과 같은 본질의 문제로까지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김재성: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누구나 하는 말이 바로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모습이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그럼 무엇부터 고쳐야 할 것인가, 그 첫째가 윤리와 도덕의 부재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는 칭의론을 잘못 이해한 탓이죠.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윤리와 도덕은 소홀이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에 성경의 바른 빛을 다시 비추어야 하고, 그 책임이 한국개혁신학회에 있다고 생각해요.
-대형교회가 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대형교회 무용론'도 제기하는데요.
김영한: 대형교회 자체가 필요 없다는 극단적 주장은 옳지 않지만, 오늘날 그 부작용이 큰 것 또한 사실이기에 개인적으로 대형교회의 창조적 분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교인의 수가 5천 내지 1만 명을 넘어가면 교회를 분립하는 것이죠. 이것이 교회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교회의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담임목사에게 집중된다면, 자칫 하나님의 왕국을 교회 왕국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김재성: 성경에도 보면 한 번에 3천 명, 5천 명이 회심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많이 모인다고 해서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최근 그에 따른 폐해도 부정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죠. 그러므로 수에 가치를 부여한 세속적 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인데, 그 죄인들의 많음이 어찌 자랑일 수 있겠습니까.
"'가나안 성도', 한국교회의 겸허한 회개 필요해"
"대화·이해 중요... 두려움으로 구원 이뤄가자"
-기존 교회에 염증을 느껴 교회를 떠나는 이들, 소위 '가나안 성도' 문제가 최근 화두입니다.
김영한: 한국교회가 깊이 회개해야 할 부분이죠. 겸허한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도자인 목회자가 먼저 자성해야 해요. 교회를 떠난 이들을 그저 안타깝게만 볼 것이 아니라, 왜 떠났는지, 설교에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한편 그것은 목회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해요. 교인들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한 상처 때문에 교회를 떠난 이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죠. 이젠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재성: 저 역시 이 문제에선 교회의 겸허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먼저 설교를 성경적으로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가 진실한 삶과 신앙의 고백 없이 그저 지식의 나열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죠. 그런 차가운 설교로는 절대 영혼의 깊은 곳을 어루만질 수 없어요. 그리고 성도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강하고 높은 곳에 시선을 두기보다, 약하고 낮은 곳에 마음을 주는 우리가 모두가 됐으면 합니다.
-그 밖에 한국교회가 꼭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영한: 특별히 성령론에 있어 바로잡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방언이나 환상, 병 고침 등 지나치게 성령의 표면적 이적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개혁주의 성령론의 본질은 다름 아닌 성화에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삶은 섬김과 희생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김재성: 한국교회는 순교와 기도, 회개를 통한 부흥이라는 귀한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좁은 길을 묵묵히 걸었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것이죠. 이제 우리가 세속주의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그것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끝으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김영한: 지금까지 한국의 보수신학은 너무 많이 상대방을 비판해 왔어요.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나와 다른 자들을 적으로 간주해 왔던 거죠.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전통을 바로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지만, 그와 더불어 많은 이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이해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에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완벽하지 않고 부분적일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울도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온전히 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물며 우리들은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요. 언제나 상대를 경청하며 나 자신을 살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자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김재성: 저를 포함해 신학자들이 신학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우월감에서 벗어나 한국교회를 섬기고, 진정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도록 더 노력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