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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에 뿌리 내린 고신 해외선교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n 01, 2016 05:40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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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선교 기획] 고신총회세계선교부(KPM)의 어제와 오늘, 내일①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가 오늘날처럼 성장한 배경에는 130여 년 전부터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온 서구 선교사들의 아낌없는 희생과 헌신이 있다. 또 영혼 구원을 위해 열악한 상황에도 지체하지 않고 전도와 교회 개척에 앞장섰던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와 분열, 세속화와 개교회주의, 전도 열정의 상실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국선교도 초기의 아름다운 신앙의 정신과 유산, 선교 방향 등이 흐려졌다.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지는 한국선교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국내 교단선교부들의 어제와 오늘을 듣고, 미래 전망과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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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7일 주기철 목사 사택에 모인 출옥한 교인들. 뒷줄 왼쪽부터 조수옥, 주남선, 한상동, 이인재, 고흥봉, 손명복, 앞줄 왼쪽부터 최덕지, 이기선, 방계선, 김인희, 오영선, 서정환. ⓒKPM

1945년 8월 17일 주기철 목사 사택에 모인 출옥한 교인들. 뒷줄 왼쪽부터 조수옥, 주남선, 한상동, 이인재, 고흥봉, 손명복, 앞줄 왼쪽부터 최덕지, 이기선, 방계선, 김인희, 오영선, 서정환. ⓒKPM

총회 설립 이전부터 시작된 고신 '해외선교의 꿈'

작년 60주년을 맞이한 KPM선교운동의 기초는 총회 설립 이전부터 시작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예장 고신)는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서다 투옥됐던 목회자들과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개혁운동'으로 인해 1952년 4월 장로교총회로부터 축출되면서 분립되었다. 그해 9월 진주 성남교회당에 고신총노회, 1956년 9월 부산 남교회당에 고신총회가 설립되었는데, 총회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해외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년 먼저 해외선교부를 구성했다.

▲일본은 1937년 9월 중일전쟁을 앞두고 모든 조선인에게 신사참배(사진)를 강요했으며, 각 교단은 신사참배를 수용했다. 그러나 장로교회가 마지막까지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강하게 반대하던 목사들은 구속하고 협조적인 목사들을 선동해 제27회 총회서 신사참배를 강제로 결의시켰다. 이에 한부선, 블레어 등 30여 명의 선교사는 이에 강력히 항의했으나 소용없었다. ⓒKPM
(Photo : ) ▲일본은 1937년 9월 중일전쟁을 앞두고 모든 조선인에게 신사참배(사진)를 강요했으며, 각 교단은 신사참배를 수용했다. 그러나 장로교회가 마지막까지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강하게 반대하던 목사들은 구속하고 협조적인 목사들을 선동해 제27회 총회서 신사참배를 강제로 결의시켰다. 이에 한부선, 블레어 등 30여 명의 선교사는 이에 강력히 항의했으나 소용없었다. ⓒKPM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1945년 12월 6일 당시 거창교회를 담임하던 주남선 목사가 제시한 교회 쇄신안이 거창교회 당회록에 기록돼 있다. ⓒKPM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1945년 12월 6일 당시 거창교회를 담임하던 주남선 목사가 제시한 교회 쇄신안이 거창교회 당회록에 기록돼 있다. ⓒKPM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고려신학교는 신사참배에 항거하던 지도자 주남선 목사, 한상동 목사 등 옥중 교인들의 특별기도회의 결과 1946년 9월 20일 개교했다. 고려학교를 설립한 후 앞줄 왼쪽부터 한부선, 주남선, 박윤선, 한상동. ⓒKPM
(Photo : )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고려신학교는 신사참배에 항거하던 지도자 주남선 목사, 한상동 목사 등 옥중 교인들의 특별기도회의 결과 1946년 9월 20일 개교했다. 고려학교를 설립한 후 앞줄 왼쪽부터 한부선, 주남선, 박윤선, 한상동. ⓒKPM

1955년 4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20)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조직된 해외선교부는, 전쟁의 폐허 속 해외 원조에 의존하는 국내 상황과 열악한 교세로 비추어 볼 때 분명 시기상조였다. 그러나 복음을 받은 자들 안에 '가서 제자 삼는 일'에 대한 열정과 부담감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했다.

▲일제 말엽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다 투옥된 지도자 주남선 목사(좌)와 한상동 목사(우). 주남선 목사는 20세기 중반 일제 침략시기와 해방정국기에 활동한 목회자이자 애국지사, 교육자였으며 한상동 목사는 경남지역 대표적 교회쇄신론자였다. ⓒKPM
일제 말엽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다 투옥된 지도자 주남선 목사(좌)와 한상동 목사(우). 주남선 목사는 20세기 중반 일제 침략시기와 해방정국기에 활동한 목회자이자 애국지사, 교육자였으며 한상동 목사는 경남지역 대표적 교회쇄신론자였다. ⓒKPM

KPM의 존재 목적은 '온 세상에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 원리를 가진 개혁주의 세계교회 건설'이다. KPM 선교의 신학적 기초는 1946년 고려신학교의 설립취지인 '개혁교신학'에서 시작되었다. 신앙적 기초는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표방하는 순교적 신앙'에 있다. KPM의 선교적 사명은 한국 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에 나온 학생신앙운동 강령의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56년 9월 교단총회를 조직한 것과 동시에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하고, 미국정통장로교 소속 한부선 선교사(Bruce F. Hunt)의 조언으로 대만을 첫 선교지로 결의했다. 그리고 1957년 김영진·임옥희 선교사 부부를 1호 선교사로 대만에 파송하며 고신 해외선교의 첫 문이 열렸다. 김영진 선교사 부부는 대만에 12개 교회를 개척하고 미정통장로교 선교부와 '개혁종 신학교'를 설립해 많은 사역자를 배출했으며, '대만 기독교 개혁종 장로회' 조직에도 기여했다.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1957년 김영진·임옥희 선교사를 1호 선교사로 대만에 파송하며 고신교단이 해외선교의 문을 열었다. 김영진 선교사는 1987년 선교본부에서 최초의 선교사 출신 총무로 임명돼 활동하기도 했다. ⓒKPM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1957년 김영진·임옥희 선교사를 1호 선교사로 대만에 파송하며 고신교단이 해외선교의 문을 열었다. 김영진 선교사는 1987년 선교본부에서 최초의 선교사 출신 총무로 임명돼 활동하기도 했다. ⓒKPM

 

고신총회세계선교부 역사
▲대만 선교사로 활동 당시의 김영진 선교사 부부와 은퇴 후 모습(위에서부터 차례대로). ⓒKPM

▲1974년 유환준, 윤춘재 선교사 가족이 대만으로 파송됐다. ⓒKPM
1974년 유환준, 윤춘재 선교사 가족이 대만으로 파송됐다. ⓒKPM

그 후 16년이 지나 1974년에 2호 선교사로 유환준·윤춘재 선교사 부부가 대만에 파송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까지는 본격적으로 해외선교에 힘을 쏟기에는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낯선 개척기였다. KPM은 1955년부터 1980년까지를 제1기 선교 태동기로 보고 있다. 이 기간을 포함한 1972년부터 1996년까지는 교포선교가 활발히 진행됐으나 1996년 총회에서 교포선교사 제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KPM 제1대 선교부장(1955~1956) 박손혁 목사에 이어 제2대 선교부장(1956~1959)으로 섬긴 이인재 목사는 남다른 열심으로 KPM을 섬겼다. 해외선교 사역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56년 10월부터 각 교회에서 월 1회 선교비를 염출하도록 청원해 총회에서 가결됐고, 1호 선교사인 김영진 선교사가 담임하고 있던 교회에 부흥강사로 가서 대만 선교사로 가길 권유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타문화선교 활성화 시작'

KPM은 1980년부터 1990년까지를 제2기 타문화선교 활성화 시작기로 본다. 1980년 선교부 산하 상설 선교국을 설치했고, 1982년에는 선교개발연구원(전호진 원장)이 시작되고 선교회보가 발행되면서 교단 선교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시에라리온, 파라과이 등으로 선교사들이 파송돼 선교지가 개척되었고, 1982년 선교본부 총무제(초대총무 김사엽 장로) 실시 후 1987년 선교사 출신 전담 총무제(총무 김영진 선교사)가 시행되었다. 또한 1988년 고신선교훈련원(KMTI)이 개원되고, 전 세계로 선교지가 확장되었다.

한명동 목사와 전호진 목사는 KPM 초창기 선교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부산 남교회 원로목사였던 한명동 목사는 2차례 걸쳐 선교부장(1960.9~1971.8, 1974.9~1983.8)을 역임하며 남다른 열정으로 선교운동을 추진했다. 거의 매주 전국 교회를 다니며 선교 지원자·후원자를 찾고 세계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남교회 원로목사실은 KPM 선교 운동의 산실로 사용됐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한명동 목사는 매년 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초창기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보내 영적 아버지로 격려와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KPM 본부장 김종국 선교사는 증거한다.

고려신학교 제23회 졸업생 전호진 목사는 웨스터민스터신학교,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78년 귀국해 고신대와 신대원에서 강의하며 교단 선교 활성화에 기여했다. 1982년 선교개발연구원 원장에 임명돼 교단 선교운동과 선교정책·교육에 기여하고 저술활동, 세미나 인도 등으로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 선교운동에 일익을 감당했다.

KPM 선교회보 변천사.
▲KPM 선교회보 변천사. ⓒKPM홈페이지

1980년에는 고신 신대원 선교학회가 창설돼 선교학회보를 발간하고 교단 선교 세미나 등을 가지며 교단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선교학회의 중심 멤버들(김한중: A국, 김종국: 인도네시아·현본부장, 남후수: 필리핀, 박영기: 일본, 박은생: 전 가나, 박진섭: 전 방글라데시, 배성학: 브라질, 신대원: 전 시에라리온, 이광호: WIN선교회 한국대표, 이상룡: 네팔, 이신철: 전 가나·신대원 선교학 교수, 이정건: 파라과이, 이헌철: 전 인도네시아·현 러시아, 최광석: 필리핀 등)이 지금 선교 현장 혹은 본부에서 시니어 선교사로서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총회선교부는 1981년, 1982년 선교부 예산의 당시 2%인 연 600만 원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이상규 교수는 고신선교 50년사에서 "80년대의 신대원생들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교회의 선교활동을 예견해 주는 변화의 시작이었고, 교단의 선교운동을 실행해 나가는 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결과적으로 고신 선교 역사의 주요한 의미를 끼친다"고 평가했다.

또 1987년 초광교회 담임이던 이경석 목사는 대지 100평, 연건평 110평의 2층 건물을 선교부에 기증하여 행정 본부의 모습을 갖췄으며, 이를 두고 당시 김영진 총무는 '하나님의 기묘한 역사'라고 회고했다. 또 서울중앙교회와 전국여전도회는 80년대 초기 교단선교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개교회로서 선교사를 처음 파송한 서울중앙교회는 개교회 선교의 가능성을 열었고, 전국여전도회는 교단선교기도운동에 앞장서 지금까지 기도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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