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Th.M Fuller Theological Seminary(CA)
M.Div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CA)
BA Concordia University(CA)
혹자는 "남가주에서 교회가 합쳐서 잘 되는 경우 못봤다" 한다. 과연 그럴까. 하나로커뮤니티교회의 현주소를 묻는 과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작년 2월, 오렌지카운티에서 예배를 드리던 하나로커뮤니티교회는 LA 동부지역(하시엔다/다이야몬드바) 주님의기쁨교회(조광수 목사)와 합쳤다. 주님의기쁨교회는 교회 규모에 비해 성도수가 적었고 하나로커뮤니티교회는 성도 수는 500여명 되었지만 예배당이 없던 상황이었으니 '천생연분'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모든 통합절차는 100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작년 이맘때쯤에는 예배당 보수공사를 끝내고 근사하게 헌당예배도 드렸다. 입당예배에서 시작하면 1년 반 정도, 헌당예배로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교회간 화해·통합의 새 장 열다
우선 그간의 통합과정을 보면, 하나로커뮤니티교회의 경우 매주 애나하임 커뮤니티 센터에서 3년을 예배드리며 백방으로 자체 건물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히 이삿짐 센터마냥 매 주일 각종 장비와 집기를 쌌다 풀었다 하는 작업이 반복됐다. 한편, 주님의기쁨교회의 경우 교회 규모에 비해 성도 수가 적어 어려움을 겪었고 동역할 교회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같은 CRC 교단인 두 교회 담임목사는 우연히 서로의 사정을 듣게 되고 마침내 통합이라는 결실을 일궈냈다.
"바로 이 건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동안 찾아 헤맸던 그림을 발견한 기분이었죠." 강 목사는 지금의 교회 건물을 보자 "성도들이 반대하면 나 혼자라도 이 건물로 옮겨야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단다. 다행히 성도들도 만장일치로 동의했고 대부분의 가정이 지금의 교회 주변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님의기쁨교회 성도들과도 이제 영적으로 한가족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쯤 되니 '보기 드문 화합과 통합의 문 열었다'는 평을 듣는 강일용 목사만의 통합 비결이 궁금했다. 그는 우선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인간적인 방법으로 통합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통합후에도 서로의 권리를 양보하면서 중요한 안건들은 1-2년 여유를 갖고 은혜로운 쪽으로 이끈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귀뜸했다.
아마 목회자치고 이같은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의 영적인 전통은 살리면서 미래지향적인 교회의 모델을 찾아가는 목회적 여정 말이다. 그런 면에서 강 목사는 하나의 롤모델을 교계에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강 목사의 목회 지향점도 전통과 미래 모두를 겨냥한다.
초대교회 뿌리 삼아 미래교회로
"초대교회를 보면 늘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현대는 과학과 신학이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성령이 역사할 자리가 좁아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초대교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어떤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었잖아요. 오늘날의 교회 또한 그 출발선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그랬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직접 '보고 만진' 제자들은 예전의 어부로 살 수 없었고, 사도 바울에서 알 수 있듯 복음의 불꽃은 사람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옮겨 붙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퍼져나갔다. 강 목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의 이 터 위에 교회의 뿌리와 밑동을 내려 '성령이 살아 숨쉬는'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강 목사는 자유주의를 반대한다. 동성애 낙태 등도 결국은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오류라는 그는 말씀이라는 본질로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목회적 투쟁이라 믿는다.
당연히 선포되는 말씀은 불 같다. 매주 새신자들이 입소문을 듣고 먼 길을 마다않고 이 교회를 찾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쓴말씀을 삼키는 것이 순간은 힘들지만 영혼의 자유함이 여기에 있음을 그는 간파하고 있다. "저 자신도 가끔 말씀이 강하다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영혼의 자유함은 죄를 쪼개는 아픔 뒤에 주어집니다. 죄를 바로 알고 이를 말씀으로 통제할 수 있게 인도하고 동시에 시대적 흐름을 곁들여 현실성을 갖추도록 설교하려 합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첫 단추를 성령으로 꿰었다. 쉬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미래상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2세 교육은 시스템부터! 선교는 등잔 밑을 밝혀라!
강 목사는 교육부터 언급했다. "지금 교회가 속한 CRC 교단은 한인보다 150년 전에 이민온 화란인에 의해 세워진 교단으로 그들은 우리처럼 자녀교육에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 커리큘럼 또한 상당히 체계적이고 수준 또한 높습니다." 다시 말해 강 목사는 이러한 자원을 우리 2세들에게 적극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각 교단이 힘을 합쳐서 각자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공유할 것을 공유한다면 사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교재와 커리큘럼으로 이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 교회 또한 교단에서 연구하고 만든 커리큘럼에 의한 교재를 주일 학교가 학년별로 사용하면서 자녀 교육이 많이 체계화 되었다.
자연스레 얘기는 선교쪽으로 이어졌다. "전세계에서 미국으로 유학오는 미래의 리더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죠. 하나님이 손수 보내주신 영혼들인데..." 강 목사도 한때 이를 고민했고 어떤 그물로 담을 것인가 궁리했다. 그러다 35개의 교회내 목장이 생각났고 이참에 각 대륙과 나라별로 짝을 지어줬다. 그러자 '교회내 교회'인 목장들이 자원해 아프리카 아랍권 할 것 없이 '선교지'을 가정과 교회로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보였다. 선교사와 후원하는 목장 모두 한 사정으로 통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또한 각 나라로 돌아가 리더로 세워질 청년들을 가정들이 품을 수 있게 준비중이라 특히 눈길을 끈다. 교회는 나가는 선교에도 열심이다. "작년에는 태국의 한 선교사와 협력해 유치원을 하나 지었습니다. 불교권 나라인 태국의 아이들이 어릴 때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강일용 목사는
군대를 제대하고 삶의 의미를 곱씹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81-83년, 90-93년 두 차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등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 이슬람의 오일파워도 이때 목격했다. "아프리카 동남아 할 것 없이 경제력을 앞세워 파고들어가는 이슬람의 집중력이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늘 그 땅이 마음의 부담감으로 남아있다. 치열한 영적 전쟁터를 목격했기에 그의 설교는 외침이다. 동시에 현대인의 병든 내면을 세밀히 읽고 있기에 말씀은 의외로 살갑게 마음 밭에 뿌려진다. "설교자가 현대적인 감각을 읽지 못한다면 메세지는 공허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늘 영적인 맥을 잡고자 하는데 현대인 안에 심한 공허함과 두려움이 상존함을 많이 느낍니다. 말씀의 본질을 여기에 맞게 잘 요리하는 것이 저의 목회적 숙제입니다."
취재를 마치며
'양보와 지혜'가 담긴 요리를 맛보는 기쁨이랄까. 이 교회가 내는 맛은 특별하다. 두 교회가 잡음 하나 없이 하나된 모습부터 교인들의 강점을 십분발휘토록 격려하는 평신도 사역구조로 작지만 크게 일할 수 있게 교회 시스템을 갖춘 모습 모두가 활기찼다. 웬만한 행정업무는 종이 대신 이메일 등으로 간소화시켰고, 목회실과 각 사역자 방은 인트라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어 일사분란한 행정처리가 가능한 점도 눈에 띈다. 인터뷰 말미 강일용 목사는 교인은 교인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목회자는 목회자답게 세상 가운데 비춰지는 것이 꿈이란다. 아마 한 목회자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Th.M Fuller Theological Seminary(CA)
M.Div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CA)
BA Concordia University(CA)
혹자는 "남가주에서 교회가 합쳐서 잘 되는 경우 못봤다" 한다. 과연 그럴까. 하나로커뮤니티교회의 현주소를 묻는 과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작년 2월, 오렌지카운티에서 예배를 드리던 하나로커뮤니티교회는 LA 동부지역(하시엔다/다이야몬드바) 주님의기쁨교회(조광수 목사)와 합쳤다. 주님의기쁨교회는 교회 규모에 비해 성도수가 적었고 하나로커뮤니티교회는 성도 수는 500여명 되었지만 예배당이 없던 상황이었으니 '천생연분'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모든 통합절차는 100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작년 이맘때쯤에는 예배당 보수공사를 끝내고 근사하게 헌당예배도 드렸다. 입당예배에서 시작하면 1년 반 정도, 헌당예배로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교회간 화해·통합의 새 장 열다
우선 그간의 통합과정을 보면, 하나로커뮤니티교회의 경우 매주 애나하임 커뮤니티 센터에서 3년을 예배드리며 백방으로 자체 건물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히 이삿짐 센터마냥 매 주일 각종 장비와 집기를 쌌다 풀었다 하는 작업이 반복됐다. 한편, 주님의기쁨교회의 경우 교회 규모에 비해 성도 수가 적어 어려움을 겪었고 동역할 교회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같은 CRC 교단인 두 교회 담임목사는 우연히 서로의 사정을 듣게 되고 마침내 통합이라는 결실을 일궈냈다.
"바로 이 건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동안 찾아 헤맸던 그림을 발견한 기분이었죠." 강 목사는 지금의 교회 건물을 보자 "성도들이 반대하면 나 혼자라도 이 건물로 옮겨야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단다. 다행히 성도들도 만장일치로 동의했고 대부분의 가정이 지금의 교회 주변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님의기쁨교회 성도들과도 이제 영적으로 한가족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쯤 되니 '보기 드문 화합과 통합의 문 열었다'는 평을 듣는 강일용 목사만의 통합 비결이 궁금했다. 그는 우선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인간적인 방법으로 통합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통합후에도 서로의 권리를 양보하면서 중요한 안건들은 1-2년 여유를 갖고 은혜로운 쪽으로 이끈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귀뜸했다.
아마 목회자치고 이같은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의 영적인 전통은 살리면서 미래지향적인 교회의 모델을 찾아가는 목회적 여정 말이다. 그런 면에서 강 목사는 하나의 롤모델을 교계에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강 목사의 목회 지향점도 전통과 미래 모두를 겨냥한다.
초대교회 뿌리 삼아 미래교회로
"초대교회를 보면 늘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현대는 과학과 신학이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성령이 역사할 자리가 좁아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초대교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어떤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었잖아요. 오늘날의 교회 또한 그 출발선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그랬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직접 '보고 만진' 제자들은 예전의 어부로 살 수 없었고, 사도 바울에서 알 수 있듯 복음의 불꽃은 사람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옮겨 붙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퍼져나갔다. 강 목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의 이 터 위에 교회의 뿌리와 밑동을 내려 '성령이 살아 숨쉬는'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강 목사는 자유주의를 반대한다. 동성애 낙태 등도 결국은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오류라는 그는 말씀이라는 본질로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목회적 투쟁이라 믿는다.
당연히 선포되는 말씀은 불 같다. 매주 새신자들이 입소문을 듣고 먼 길을 마다않고 이 교회를 찾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쓴말씀을 삼키는 것이 순간은 힘들지만 영혼의 자유함이 여기에 있음을 그는 간파하고 있다. "저 자신도 가끔 말씀이 강하다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영혼의 자유함은 죄를 쪼개는 아픔 뒤에 주어집니다. 죄를 바로 알고 이를 말씀으로 통제할 수 있게 인도하고 동시에 시대적 흐름을 곁들여 현실성을 갖추도록 설교하려 합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첫 단추를 성령으로 꿰었다. 쉬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미래상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2세 교육은 시스템부터! 선교는 등잔 밑을 밝혀라!
강 목사는 교육부터 언급했다. "지금 교회가 속한 CRC 교단은 한인보다 150년 전에 이민온 화란인에 의해 세워진 교단으로 그들은 우리처럼 자녀교육에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 커리큘럼 또한 상당히 체계적이고 수준 또한 높습니다." 다시 말해 강 목사는 이러한 자원을 우리 2세들에게 적극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각 교단이 힘을 합쳐서 각자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공유할 것을 공유한다면 사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교재와 커리큘럼으로 이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 교회 또한 교단에서 연구하고 만든 커리큘럼에 의한 교재를 주일 학교가 학년별로 사용하면서 자녀 교육이 많이 체계화 되었다.
자연스레 얘기는 선교쪽으로 이어졌다. "전세계에서 미국으로 유학오는 미래의 리더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죠. 하나님이 손수 보내주신 영혼들인데..." 강 목사도 한때 이를 고민했고 어떤 그물로 담을 것인가 궁리했다. 그러다 35개의 교회내 목장이 생각났고 이참에 각 대륙과 나라별로 짝을 지어줬다. 그러자 '교회내 교회'인 목장들이 자원해 아프리카 아랍권 할 것 없이 '선교지'을 가정과 교회로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보였다. 선교사와 후원하는 목장 모두 한 사정으로 통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또한 각 나라로 돌아가 리더로 세워질 청년들을 가정들이 품을 수 있게 준비중이라 특히 눈길을 끈다. 교회는 나가는 선교에도 열심이다. "작년에는 태국의 한 선교사와 협력해 유치원을 하나 지었습니다. 불교권 나라인 태국의 아이들이 어릴 때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강일용 목사는
군대를 제대하고 삶의 의미를 곱씹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81-83년, 90-93년 두 차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등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 이슬람의 오일파워도 이때 목격했다. "아프리카 동남아 할 것 없이 경제력을 앞세워 파고들어가는 이슬람의 집중력이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늘 그 땅이 마음의 부담감으로 남아있다. 치열한 영적 전쟁터를 목격했기에 그의 설교는 외침이다. 동시에 현대인의 병든 내면을 세밀히 읽고 있기에 말씀은 의외로 살갑게 마음 밭에 뿌려진다. "설교자가 현대적인 감각을 읽지 못한다면 메세지는 공허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늘 영적인 맥을 잡고자 하는데 현대인 안에 심한 공허함과 두려움이 상존함을 많이 느낍니다. 말씀의 본질을 여기에 맞게 잘 요리하는 것이 저의 목회적 숙제입니다."
취재를 마치며
'양보와 지혜'가 담긴 요리를 맛보는 기쁨이랄까. 이 교회가 내는 맛은 특별하다. 두 교회가 잡음 하나 없이 하나된 모습부터 교인들의 강점을 십분발휘토록 격려하는 평신도 사역구조로 작지만 크게 일할 수 있게 교회 시스템을 갖춘 모습 모두가 활기찼다. 웬만한 행정업무는 종이 대신 이메일 등으로 간소화시켰고, 목회실과 각 사역자 방은 인트라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어 일사분란한 행정처리가 가능한 점도 눈에 띈다. 인터뷰 말미 강일용 목사는 교인은 교인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목회자는 목회자답게 세상 가운데 비춰지는 것이 꿈이란다. 아마 한 목회자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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