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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착한 행실이 그리운 교회

기독일보

입력 Feb 23, 2016 01:27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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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안녕하십니까? 231동 주민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한 말씀 드림을 우선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231동 경비 아저씨가 바뀐 거 알고들 계시죠? 병환 중이신 부인을 보살필 사람이 없어 부득이 그만두셨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보다 우리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하셨고 헌신적이셨기에, 아쉬움이 너무나 크고 빈 자리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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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것을 포기하시면서까지 숭고한 사랑을 선택하신 길이기에 마음의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정과 사랑이 넘치는 천마아파트 우리 231동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조그만 위로라도 해 드리고자 이렇게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관리사무소에 고마운 마음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항상 앞에서 내조해 주시는 부인께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죄송하지만 기부금 또는 현금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이 넘치는 은마타운 231동 어느 주민 올림"

이게 무슨 광고냐고? 이건 사연이 있는 광고판이다(2016. 2. 국민일보). 요즘 일부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경비원들에게 갑질하는 꼴사나운 일들이 벌어져,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대구 수성구에 있는 어느 아파트 주민들은 사회 트렌드(?)를 역행하는 장면을 연출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아파트에는 13년 동안 아파트 경비로 수고한 72살의 경비원이 있다. 그런데 올해 초 사직서를 냈다. 아내가 갑자기 병으로 거동이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의 병 수발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비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 소식이 아파트 주민들에게 알려졌고, 한 주민이 안타까운 사연에 전별금이라도 좀 모아서 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231동 엘리베이터 벽면에 게시물을 부착했다. 

주민들은 성금이 든 봉투를 들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왔다. 적게는 1만 원, 많게는 10만 원까지. 강요되지 않은 사랑과 정성이 담긴 성금이었다. 20여 가구가 모은 전별금은 42만 원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231동 대표가 경비원의 자택을 찾아 성금을 전달했다. 경비원 부부는 눈물 나도록 고마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요즘 많은 아파트 경비원들이 푸념한다. "싸가지 없는 주민들이 많다." "너무 상식에 벗어난 일들을 저지른다." 사실 우리 주변을 보면, 경비원들에게 자기 집에서 부리는 종처럼 마구 갑질해대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별을 아쉬워하여 따뜻한 사랑의 전별금까지 건네 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파트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치하하고 싶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싶다. 그 아파트 경비가 어떻게 했길래 아파트 주민들이 그렇게 이별을 아쉬워하는 걸까? 어느 주민이 말한다. "경비 아저씨는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 항상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친절하게 대했다.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떠나게 돼 섭섭하다." 

그렇다. 아파트 경비원은 평소 깔끔하고 책임감 강한 성격에 항상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던 게다. 그러니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게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사랑이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별금 48만 원은 사실 그렇게 큰 돈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사랑의 씨앗이야말로 얼마나 크나큰 감동을 담고 있는가? 아파트 주민들이 보여 준, 사랑에서 기인한 착한 행실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행복 바이러스가 아닐까?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나는 성경책을 넣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가방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럴듯한 가방도 있다. 단지 성경책을 들고 다니기 위해서이다. 

왜 성경책을 그렇게 들고 다니려고 하는가? 목사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다. 성경책을 들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 자신을 보호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목사라는 걸 드러내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같으면 성경책을 감추고 싶다. 성경책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다. 사람들의 이목이 두렵다. 왜? 목사다움을 잃어버린 목회자 때문에.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자화상 때문에. 당당하게 드러내는 게 부끄럽다.

최근 목사이자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자기 딸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이유야 잘 모르지만,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을, 평범한 세상 사람도 하지 않을 행동을,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될 신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랬으니 그 충격은 엄청나다.

그래서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도 목사니까. 나도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사람이니까. 우리 모두에게도 감추어져 있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자니, 너무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래서 목사의 신분을 감추고 싶은 게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건 예수님의 선언이다. 소금으로 자격을 갖추어 가라는 게 아니다. 빛으로 다듬어져 가라는 게 아니다. 이미 그런 존재이다.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드러나면 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소금의 맛과 빛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산 위의 동네인데 숨겨지는 것 같다. 등불을 등잔에서 내려 말 아래 감추어두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교회가 어둠의 일에 동참하고 어둠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분쟁하는 게 그렇고, 윤리와 도덕이 해이해진 게 그렇다. 그래서 착한 행실이 그리워진다.

사실 한국교회는 착한 행실을 많이 갖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하게 살아간다. 착한 일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한두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부의 목회자로 인해, 일부의 교회로 인해, 일부의 성도로 인해, 한국교회는 착한 행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그래서 '나 한 사람쯤'이라는 생각을 빨리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 교회가 그런다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탄은 한두 사람, 한두 교회를 갖고 한국교회가 다 그런 것처럼 몰아간다. 세상은 SNS나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그렇게 몰아간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제대로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한다. 

한 교회가 착한 행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야 전도가 가능하다. 그래서 추락하는 한국교회의 운명을 돌려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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