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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교회 비전과 에큐메니칼 운동

기독일보 강혜진 기자

입력 Oct 21, 2015 12:33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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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대 울리히 덴 박사, 한신대 학술강연서 조명

울리히 덴 박사(오른쪽)와 김태연 교수(왼쪽). ⓒ강혜진 기자

울리히 덴 박사(오른쪽)와 김태연 교수(왼쪽). ⓒ강혜진 기자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소장 김재성)가 21일 한신대 신학대학원 채플실에서 '해외 석학 초청 학술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함부르크대학교 상호문화신학·종교학 교수인 울리히 덴 박사(Dr. Ulrich Dehn)가 '본회퍼의 교회 비전, 본회퍼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관계'를 주제로 강연했으며, 이화여대 상호문화신학·종교학 교수인 김태연 박사가 통·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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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덴 박사는 "교회는 본회퍼에게 온 인생의 주제였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Sanctorum and Communio, 1927)는 이 주제와 관련된 노력이었다"며 "본회퍼는 그의 생애 동안 수많은 언급과 서신들을 통해 교회라는 주제를 놓지 않았으며, 옥중서신과 노트 속에서 드러난 신학적 사상의 핵심은 교회를 '타자를 위한 교회'로 보는 새로운 이해를 향해 있다"고 말했다.

덴 박사에 의하면, 본회퍼는 오래 전부터 국제적으로 활발히 사역했기에 에큐메니칼 교제를 맺을 수 있었다. 1928년 목사 수련생으로 바르셀로나를 찾은 그는, 1930년과 1931년 뉴욕의 유니온신학교로 가 1년간 수학했다. 뉴욕에 머물던 당시, 그는 할렘 지역의 흑인교회들을 경험하며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31년 교회 규정에 따라 25세가 돼야 가능했던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전신인 세계교회친선연맹의 청년부 총무가 됐다. 이후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런던에 있는 독일교회 두 곳을 담당하는 목사가 됐다. 이미 그는 (나치에 찬성하는) 독일 공교회가 나아가는 길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어 독일을 떠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1939년 6, 7월 본회퍼는 다시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교를 몇 주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의 상황에 맞서기 위해 귀향을 결심했다. 이러한 그의 국제적인 경험은 앎에 대한 열망과 고민, 정치적 참여 덕분이었다.

덴 박사는 "본회퍼의 전기는 뉴욕에서의 시간, 특히 할렘 아비시니안 침례교의 흑인교회에서의 경험이 하나의 중요한 분기임을 보여 준다"면서 "그는 박사학위 논문과 교수 자격 논문에서 엄격하고 신학적·철학적으로 매우 박식한 작업을 한 후에도, 신학적이고 사회적인 방식의 새로운 시작에 열린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한 칼 바르트와도 거리를 두면서 사회적·윤리적으로 참여적인 에큐메니칼 네트워크 양쪽에 적극적으로, 세계적인 오이쿠메네의 평화적 입장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어 "본회퍼가 나치 치하라는 조건 하에서 교회적·정치적 필요만을 위해서 에큐메니칼 조직을 이용하고자 했다는 추측은, 그의 1935년 글 '고백교회와 오이쿠메네'를 통해 약화된다. 이 글은 적어도 그가 오이쿠메네의 신학적 관심을 알고, 높이 평가하며, 고백교회(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반대하여 결성된 개신교 단체)가 이러한 관심사의 한 부분이 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그의 긴박한 주제와 관련하여 고백교회를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에큐메니칼적으로 공인되도록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덴 박사는 마지막으로 "본회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의 특별한 관심을 향해 나아간, 확실한 에큐메니컬 운동가였음이 틀림없다"고 평가하면서 "본회퍼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전후 시기, 세계교회협의회가 설립될 수 있었던 1948년에도 이러한 관심사를 이어갈 수 있었을지, 아니면 그가 옥중에 발전시킨 '새로 거듭난 교회'(타자를 위한 교회)에 대한 표상이 실현되지 않은 것을 여기에서 보고, 프리드리히 지그문트-슐체처럼 제도화된 오이쿠메네에 등을 올렸을지에 대해서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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