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노랗게 물든 단풍 숲 속 두 갈래 길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안타깝게도 그 두 길을 모두 갈 수는 없기에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마치 낯선 길 여행자라도 된 듯 한 참을 서서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길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네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굽어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까지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그리곤 마치 가장 합당한 양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또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일 것이라 생각며 한 쪽 길로 접어들었네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무성한 풀 섶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지난 흔적없긴 매 한가지로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그 두 길은 정말로 똑같기도 하였다네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그리고 그 아침, 그 두 길은 같은 모양새로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아무런 지난 흔적없이 단풍잎만 수북히 쌓여 있었네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오! 훗일을 위해 그 한 길은 남겨 두었다네!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길은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돌아올 기약은 하지 못한 체 말일세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먼 훗날 긴 숨 내쉬며 이렇게 말하겠지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네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나는 지난 흔적이 덜한 쪽을 택했지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그리고 그 선택은 모든 것을 너무도 다르게 만들고 말았다네

시인에 대하여: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1875년에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들은 1632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에 왔다. 그는 후에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살면서 시를 썼다. 그는 그의 시 속에서 인간의 사랑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충실하고 믿음직스럽고 자연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가페야 말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모든 인간이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들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공존의 이중주의(Dualism) 곧 현실주의는 물질적인 영역에 좀더 가까이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낭만 주의는 이상주의에 도달하려는 노력으로 현실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

언어 연구:

The road not taken은 The road I have never taken으로 보면 된다 – 내가 결코 가 본 적이 없는 길.
A yellow wood – 노란 숲이란 가을의 정경을 말하는 것 같다.
I could not travel both – both는 both roads.
As for as I could (see) – 내가 볼 수 있는 한.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 아마도 다른 길보다도 더 좋은 조건일지도 모르기에란 뜻이다.
Wanted wear – want는 부정적인 의미로 닳지 않았다, 또는 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 그곳을 지나가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하더라도란 뜻이다.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 나는 사람이 많이 다닌 첫 번째로 본 그 길을 버려두고 란 뜻이다.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 첫 번째 길을 접어두는 이유는 다음에 또 오면 되겠지라는 생각에서 했지만 과연 내가 다시 꼭 돌아올지는 미지수란 뜻이다.

시 감상:

아메리칸침례신학대학 배효식 교수
배효식 교수

이 시인은 New England 지방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을 무척 사랑했다. 때는 가을인가 보다. 숲 속을 거닐 때 앞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누구나 이런 경우에는 첫째로 망설이게 될 것이다. 이 시는 대학교에서 지도력 강의(Leadership Lecture) 시간에 많이 인용된다. 지도자는 선택의 결정을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여행 중 선택에 기로에 서 있다. 어느 길을 택하여 가야할 것인가? 이 시 속에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길이 있고 인적이 드문 길이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다닌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인은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다시 말해 이 시인은 우리 인생의 앞길에는 넓은 길 또는 넓은 문과 좁은 길 또는 좁은 문이 있다는 것을 이 시에서 암시해 주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태 7:13-14).

두 갈래 길에서 하나의 선택은 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이 현실주의는 미래를 지향하는 이상주의적 종교주의가 따르는 것이다. 종교와 사상과 철학적인 이념도 현실과 상관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뜻일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다. 그리고 또한 우리에게 현실의 삶에 대한 책임을 주셨다. 이 시는 바로 하늘나라를 선망하는 믿음과 현실에서 그 귀한 믿음을 실천하려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시라고 하겠다. 모든 인간은 현실주의 속에서 죽음 후의 영원한 세계를 향한 균형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좁은 길을 택한 이 시인에게는 한없는 기쁨이요 깊은 사색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인에게는 인간이기 때문에 넓은 길을 다음에 한번 걷기를 마음 속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올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길은 길로 인도하며 연결되지만 믿음의 길은 진리의 길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 시를 통해 깨닫게 한다. 좁은 길을 택한 이 시인은 그의 모든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아 우리 독자들은 그의 종교적 신념과 자연에 대한 사랑의 극치를 음미할 수가 있다고 본다.

번역과 감상: 배효식 American Baptist Seminary of the West 교수, drhyopa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