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무엘상 18장 1절 - 5절
다윗은 물맷돌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를 죽이면서 일약 스타가 됩니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 자기 딸을 주어 사위로 삼을 것을 이미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윗이 사울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 왕의 사위가 되어 궁궐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급격한 신분상승입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입니다. “그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군에 가 있는 형들을 면회 왔던 다윗의 생애가 갑작스럽게 변한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다윗으로는 왕궁에 머물게 된 일이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왕의 사위로 왕궁에 들어가게 된 것은 분명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다윗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수금 연주를 위해 왕궁을 드나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수금 연주가 필요 없어졌고, 다윗도 더 이상 왕궁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왕궁에 드나들지 않게 되면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바뀐 것 아닌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계 단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때를 지나면서 하나 씩 하나 씩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도 그렇게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단계를 거치면서 하나 씩 이루어지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단계적으로 하나 씩 이루어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확신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고통입니다. 그냥 저냥 사는 것이라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지금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알고 이것이 하나 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생애 최고의 승리를 거두었을 때, 혹은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했을 때,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배가 시작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유랑 후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성인 여리고 성에서 최대의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천하무적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강력한 도성이었던 여리고 성을 그렇게 무너뜨렸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이 성은 그냥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은 의외의 패배를 겪게 됩니다.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이 아이성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고 맙니다. 다윗의 인생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됩니다. 이제 승리한 듯 했으나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라는 거대한 적대 세력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거대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또 다른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나단이라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되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내어 놓을 만큼 친한 친구...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과의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배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단이라는 사울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예기치 못했던 싸움이 시작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이겨낼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준비시켜 주십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왕자입니다. 그에게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제 사울 왕의 사위가 되어 어쩌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수도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어쩌면 왕위를 놓고 피 흘리며 싸워야 할지도 모를 대상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요나단도 시기와 질투로 다윗을 경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다윗을 도와줍니다. 그의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아끼며 사랑합니다.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요나단의 은혜를 크게 입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엘리야를 먹이시기 위해서 까마귀까지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어떠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은 요셉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 전옥에게서 은혜를 받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은혜를 베풉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시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아주 어렵고 힘든 때 하나님은 이들을 돕는 사람들을 세워주십니다.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힘을 주고, 도와주고, 위로하고, 북돋워주는 세상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동정과 도움을 입도록 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줍니다.
먹을 것도 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줍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도우십니다. 마치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아버지가 그렇게도 죽이려던 다윗을 감싸고, 숨겨주고, 도와주고, 사랑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다윗은 군대의 장이 됩니다. 왕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근위대의 대장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습니다. 마치 베들레헴에서 양을 칠 때처럼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왕의 명령을 충성스럽게 이행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군대의 장이 되었습니다. 물론 양을 치던 때와는 다른 삶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삶이었습니다. 목자로 평화롭게 살던 다윗은 이제 전쟁터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과정이었습니다.
목동으로 평화롭게 살다가 왕이 되어서는 백성들을 강력하게 인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지켜낼 수가 없었습니다. 왕으로서 다윗은 더 많은 전쟁과 더 많은 원수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목동으로 지내기보다 전쟁터의 군대의 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원하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다해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지혜롭게 행했다는 말은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행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성과 지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가장 필요한 은사일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 자리에서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이 말씀에서 나오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물맷돌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를 죽이면서 일약 스타가 됩니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 자기 딸을 주어 사위로 삼을 것을 이미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윗이 사울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 왕의 사위가 되어 궁궐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급격한 신분상승입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입니다. “그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군에 가 있는 형들을 면회 왔던 다윗의 생애가 갑작스럽게 변한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다윗으로는 왕궁에 머물게 된 일이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왕의 사위로 왕궁에 들어가게 된 것은 분명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다윗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수금 연주를 위해 왕궁을 드나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수금 연주가 필요 없어졌고, 다윗도 더 이상 왕궁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왕궁에 드나들지 않게 되면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바뀐 것 아닌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계 단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때를 지나면서 하나 씩 하나 씩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도 그렇게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단계를 거치면서 하나 씩 이루어지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단계적으로 하나 씩 이루어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확신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고통입니다. 그냥 저냥 사는 것이라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지금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알고 이것이 하나 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생애 최고의 승리를 거두었을 때, 혹은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했을 때,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배가 시작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유랑 후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성인 여리고 성에서 최대의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천하무적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강력한 도성이었던 여리고 성을 그렇게 무너뜨렸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이 성은 그냥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은 의외의 패배를 겪게 됩니다.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이 아이성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고 맙니다. 다윗의 인생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됩니다. 이제 승리한 듯 했으나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라는 거대한 적대 세력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거대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또 다른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나단이라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되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내어 놓을 만큼 친한 친구...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과의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배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단이라는 사울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예기치 못했던 싸움이 시작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이겨낼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준비시켜 주십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왕자입니다. 그에게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제 사울 왕의 사위가 되어 어쩌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수도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어쩌면 왕위를 놓고 피 흘리며 싸워야 할지도 모를 대상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요나단도 시기와 질투로 다윗을 경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다윗을 도와줍니다. 그의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아끼며 사랑합니다.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요나단의 은혜를 크게 입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엘리야를 먹이시기 위해서 까마귀까지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어떠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은 요셉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 전옥에게서 은혜를 받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은혜를 베풉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시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아주 어렵고 힘든 때 하나님은 이들을 돕는 사람들을 세워주십니다.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힘을 주고, 도와주고, 위로하고, 북돋워주는 세상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동정과 도움을 입도록 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줍니다.
먹을 것도 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줍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도우십니다. 마치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아버지가 그렇게도 죽이려던 다윗을 감싸고, 숨겨주고, 도와주고, 사랑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다윗은 군대의 장이 됩니다. 왕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근위대의 대장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습니다. 마치 베들레헴에서 양을 칠 때처럼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왕의 명령을 충성스럽게 이행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군대의 장이 되었습니다. 물론 양을 치던 때와는 다른 삶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삶이었습니다. 목자로 평화롭게 살던 다윗은 이제 전쟁터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과정이었습니다.
목동으로 평화롭게 살다가 왕이 되어서는 백성들을 강력하게 인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지켜낼 수가 없었습니다. 왕으로서 다윗은 더 많은 전쟁과 더 많은 원수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목동으로 지내기보다 전쟁터의 군대의 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원하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다해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지혜롭게 행했다는 말은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행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성과 지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가장 필요한 은사일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 자리에서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이 말씀에서 나오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