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판결을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통진당의 활동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었다'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독재적 판결이다' 등 엇갈린 반응을 드러냈다.

진보 기독교계는 이처럼 논란이 된 이번 해산판결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토론회를 진행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후원으로 '헌법재판소 8:1,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박승렬 목사의 사회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전북대 법학대학원 송기춘 교수가 발제했고, 가재울녹색교회 양재성 목사와 낙산교회 김희헌 목사가 패널로 참여했다.

한홍구 교수는 '민주화로 태어난 헌재, 기득권 수호 첨병으로'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통진당의 해산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해 한참을 날아가고 있던 한국 민주주의가 회항을 한 것"이라며 "그것도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넘어 1958년 2월 25일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하던 때로 가버린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 교수는 "2013년 12월 4일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서 통진당 이정희 후보가 충성 혈서를 써가며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명)를 들먹이며 '친일과 독재의 후혜인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했을 때 통진당의 해산은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유신정권 7년 중 4년 반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자응로 있으며, 숱한 조작 간첩 사건을 만들어낸 김기춘을 일찍 비서실장으로 등용하면서 통진당의 슬픈 운명이 앞당겨졌던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그는 "박근혜 정권이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은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8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이른바 'RO'에 대해서도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핵심적인 두 가지 쟁점에서 모두 통진당 쪽에 유리한 판결이 나온 것"이라며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2015년 1월 중에 있을 거승로 알려지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부랴부랴 서둘러 박근혜의 당선 2주년에 이 놀라운 선물을 바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더 놀라운 사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이 인용 8, 기각 1로 갈렸다는 점"이라며 "보수적인 법조계에서조차 결과에 대해 놀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헌법재판관들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라면 8:1이 아니라 9:0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엄격한 증거에 의해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원내 제3당의 해산 문제를 다루는 판결이라면, 정부가 무리하게 해산심판을 청구하고 수구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댄다 한들 8:1이나 9:0으로 '기각 결정'이 나와야 했다"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강력 비난했다.

그는 "이번 헌재의 결정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한, 다시 말해 민주화 운동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목 졸라 죽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만든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짓밟아 버렸다"며 "좀도둑이 들끓어 불안해서 야구방망이 하나를 장만했더니 강도가 들어 그 야구방망이로 우리 식구를 쳐죽인 꼴이다. 게다가 정당을 보호해야 할 경비원이 강도와 합세했으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한 교수는 또 진보 진영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그는 "진보정치를 향한 대중들의 꿈을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된 데 대해 통진당 자신이 통렬하고 엄중한 자기 비판을 해야 하겠지만, 비단 통진당 만이 아니다. 좁게는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했던 정치세력, 크게는 진보진영이라 부르든, 민주개혁진영이라 부르든 진영 차원에서 심각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교수는 헌법재판소를 향해, 날선 비판을 했다. 그는 "민주화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 발전, 소수파 보호, 기본권의 신장을 위해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기득권의 옹호,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며 "국민 전체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사안에서 예단과 편견으로 가득찬 채 8:1이라는 압도적 편향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을 대행하는 국가기구라는 벌거벗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번에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사실 이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 그 자체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면서 "특히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것은 헌법을 스스로 짓밟은 폭거라 아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것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였다. 박근혜 정권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김일성이 처음 쓴 것처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헌법였다"며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정책은 오히려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비해 우경화돼 있다. 유럽에 갖다 놓으면 중도우파 정도 밖에는 안 될 통진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송기춘 교수는 발제를 통해 "정당해산결정은 정당의 이념을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영구히 추방시키는 매우 극단적 조치로써 매우 제한된 상황 속에서만 활용돼야 한다"며 그러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안보 논리'에 치우쳐 통진당 해산 결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송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이 판결로 인해 초래될 이념논쟁이나 사회적 낙인찍기를 우려하고 있지만, 결정의 내용으로 보아 이러한 말은 사회적 파장으로 인한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언사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며 "이 정당해산결저응로 인해 다양성과 관용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양재성 목사는 패널 발언에서 "통진당은 창당 3년 만에 해산하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은 많은 허점과 비약이 심해 사법적 판단이기보다는 정치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양 목사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종북으로 몰아 처단하는 것은 인민재판과 다르지 않다"며 "6월 항쟁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이념 논리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며서 다양한 목소리를 차단하고 정치적 판단을 함으로 관용과 배려의 정신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보정치운동의 재편 ▲기독교 진보정치운동의 요청 ▲기독교 사회운동의 재편 ▲국민주권운동의 요청 등을 진보 진영의 과제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