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감사의 찬양이 1620년 12월 26일 플리머스(Plymouth)해변에 울려 퍼졌다.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102명(남자78명 여자24명)의 청교도들의 외치는 소리였다. 모래를 날리며 찬송하고, 바위를 끌어안고 시편100편의 감사의 기도를 눈물로 올렸다. 그들은 평탄한 중에 감사기도와 찬양을 드린 것이 아니다.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였지만 그 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평균시속 2마일(걷는 속도보다 느림)이었으나 117일 동안 계속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렸다. 항해 중 죽은 사람도 있었으나 다 죽지 않았음을 감사드렸다. 폭풍을 만나 큰 돛대가 부러졌으나 배가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드렸다.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 속에 빠졌던 여자들이 모두 구출되었음을 감사드렸다.

사실 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은 한 달 전(11월 21일, 케이프코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바다로 나가 상륙지점을 찾아 헤매다 한 달 후 플리머스에 상륙할 수 있었음을 감사드렸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최고의 감사는 고통스러운 3개월에 걸친 항해 중 단 한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이 전원이 죽더라도 전진하자고 주장한 그 믿음과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도착하기까지 이미 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험난한 앞날이 예고되어있음을 알면서도 험난한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용기조차 하나님이 주셨음을 고백하며 감사했다.

추수 감사절의 시작은 단순한 절기의 시작이 아니다. 미국의 시작이며 새로운 기독교의 시작이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다. 1558년 처녀의 몸으로 왕이 된 메리 여왕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폭정을 일삼았다. 광신적인 카톨릭 신도였던 메리 여왕은 타락한 신앙의 개혁을 주장하는 신교도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수많은 청교도들을 런던 서쪽의 사형장으로 끌고가 불에 태워 죽였으며 5년 후 온 몸에 알 수 없는 피부병(독창)이 번져 죽을 때까지 피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행을 서슴치 않았다. 그후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제임스 6세가 다스렸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교회 대표들이 제임스 6세를 만나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으나 번번히 묵살당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청교도들 사이에 의견이 둘로 나뉘게 되었다. 한 쪽에서는 계속 투쟁할 것을 주장했고, 또 한 쪽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자고 주장했다. 결국 청교도들의 일부는 정든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일단 네덜란드로 갔으나, 몇 년 후 다시 아메리카로 가기로 결심하고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암스테르담 항구를 떠나게 된다. 영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난 사람은 당초에는 146명(일설에는 153명)이었으나 대서양 횡단 중 3분의 1가량이 죽고, 102명이 신대륙에 도착한다. 도착한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이 왔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 44명이나 사망했다. 남은 58명 중에 노동력을 가진 사람은 7명 뿐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나머지 사람도 기아와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대부분이 폐결핵을 앓을 정도로 열악했다. 1621년 초하루에는 하루에 세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죽어도 몰래 장례를 치러야 했다.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것을 인디언들이 알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미국 땅에 도착한 102명은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반으로 줄었다. 도시 생활을 해온 지식층이었던 그들에게 온갖 농사일과 나무를 베고 땅을 파고 집짓는 일들이 상상 이상의 힘든 일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기약없는 고난이라는 사실이 더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육신적인 고통 외에 마음의 고통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 했다. 그들을 싣고 온 메이플라워호는 바로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이듬해 4월까지 플리머스 항구에 머물러 있었으나 혹독한 시련을 견디지 못해 돌아가자는 사람도 돌아가는 사람도 없었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끝까지 감당한 그들의 믿음과 용기는 훗날 미국을 만세 반석위에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

플리머스에 청교도들이 도착한 후 3년을 지내고 매사추세스 주지사 윌리엄 브래포드(William Bradford)는 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포한다. "높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금년에 풍부한 수확을 주셨습니다.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와 밀, 콩과 호박, 여러 가지 채소를 심게 해주셨고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숲에서는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바다에서는 생선과 조개들을 넉넉히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여러 질병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순례자(Pilgrims)들에게 선포합니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까지 모두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축복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십시다."

브래드포드는 180톤 밖에 안되는 작은 배지만 배를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으니 감사, 평균 시속 2마일로 걷는 속도보다 느렸지만 117일 동안 계속 전진할 수 있었으니 감사, 항해 중에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1명이 태어났으니 감사, 폭풍우로 돛이 부러졌지만 파선하지 않았으니 감사, 여자들 몇명이 파도에 떠밀렸지만 모두 구출되었으니 감사, 인디언들의 방해로 한 달이나 바다위에서 방황했으나 호의적인 원주민들을 만나 정착했으니 감사, 고통스런 3개월 간의 항해중에도 한 사람도 원망 불평 안하고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으니 감사했다. 그때 포세이돈 목사는 시편 126편 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말씀을 읽고 딱 두마디 기도를 올렸다. "102명 중에 죽은 자들이 이 미국의 위대한 씨앗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저희들이 죽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미국의 개척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건국의 조상들은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은 아직 황무지 벌판에 서 있었다. 풍부한 상황이 아닌 황무지에 씨를 심을 수 있었음을 감사했고, 겨울의 심한 추위와 싸우면서 오막살이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괴롭히는 인디언도 많았으나 농사법을 가르쳐준 인디언으로 인하여 감사했다. 감사할 수 없는 험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미국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다. 추수감사절이 정식 국경일로(11월 넷째 목요일) 선포된 것은 1864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링컨 대통령은 "우리의 경건한 조상이 이 아메리카 땅에 감사의 씨를 뿌린 그 신앙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해 이날을 국가 축제일로 정한다."고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