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먼 곳에서 교회를 오는 분들이 있다. 버스를 타다 전철을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갈아타서 다닌다. 그런데 가끔 잠이 들어 갈아타야 할 곳을 놓치곤 한다고 한다. 연세가 있으니 다시 돌아오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 정도야 다시 되돌아오면 된다.

어느 여성 초보 운전자가 있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어느 지점에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차선을 바꾸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톨게이트로 빠져나가서 돌아오면 되는데 겁이 나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부산까지 달렸단다.

갈아타야 할 차를 갈아타지 못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야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조금 수고만 하면 된다. 시간과 돈만 좀 낭비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길 갈아타기이다. 때때로 인생길을 잘못 선택할 수도 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들어서서 헤매는 경우도 있다. 이게 문제이다.

하나님이 세운 사사 야일이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이다. 야일이 죽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렸다는 듯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다(삿 10:6). 이스라엘은 우상 총집합소와 같았다.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수입해서 우상 왕국을 만들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

그런데 16절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진노와 설득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했다. 갈아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살다 보면 때때로 잘못된 길을 들어설 수도 있다. 인간이 어리석으니까. 악한 영들이 우리를 유혹하니까. 나쁜 친구들과 사람들이 우리를 꼬드기니까. 그런데 그 길을 계속가면 위험하다.

중요한 건 잘못된 길을 깨닫고 갈아타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 그릇된 길로 가는 차에서 내려서 바른 길로 가는 차로 갈아타면 된다.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필연코 갈아타는 용기를 내야 한다. 주저할 일이 아니다. 어떤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서 갈아타기만 하면 더 멋진 새로운 인생길이 준비되어 있다. 이건 주저할 일이 아니다. 한쪽 문을 걸어 나와야 다른 쪽 문이 열린다. 양쪽 문을 모두 걸을 순 없다. 선택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갈아타야 하는데도 갈아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현 주소를 정확히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타고 있는 차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본인은 도무지 모른다.

가족만 알고 살아가는 젊은 집사님이 있다. 몸이 아픈데도 가난한 가정 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을 다녀야 한다. 너무 고달파서 쉬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럴지라도 남편에게서 행복을 찾을 수만 있다면 고생을 할 만할 게다. 자식들에게서 행복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살 만할 게다. 그런데 남편은 너무나 밉상이다. 매일 인터넷에 빠져 있다. 너무 무뚝뚝하다. 부부간에도, 아이들에게도 친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 파묻혀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가한다. 게다가 도박에 빠져 돈을 날리곤 한다.

어디 그 뿐이야.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곱게 자라날 리 없다. 한 아이는 자폐증 증세를 갖고 있다. 공부할 환경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는 아이들을 바로 양육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눈물겨울 정도로.갈아타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한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안타깝다. 이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게 정확한 정보이다.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충고라도 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강압이라도 해야 한다. 갈아타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하기 때문에.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옥 불못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른다. 깨닫지를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가르쳐 주어야 한다. 가르쳐 준다고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아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어둠의 영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닫아 버렸다. 귀를 아예 막아 버렸다. 그래서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도 갈아타기까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끈질기게. 힘들어도. 끝까지.

여기 인간 총알이 있다. 바로 미국의 육상선수 칼 루이스이다. 1984년 LA올림픽 4관왕의 업적을 이루었던 그가 1988년 2연속 4관왕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강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캐나다의 벤 존슨이다. 그는 새로운 기록 갱신을 위해 주사위를 던졌다.

별들의 전쟁이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1988년 9월 24일, 드디어 운명의 육상 남자 100m 결승전이 열렸다. 전 세계의 이목이 10초의 승부에 집중됐다. 칼 루이스는 9초 92로 진입했다. 그런데 벤 존슨은 세계신기록인 9초 79에 진입했다. 세계 최초 9.7초대의 진입이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이로운 기록 경신이었다. 지구촌 육상계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일일천하의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이틀 뒤에 상황은 반전되었다. 올림픽위원회에서 도핑테스트를 한 결과 '벤 존슨이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고 했다. 결국 벤 존슨은 올림픽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물론 그가 세운 신기록도 물거품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영구 제명됐다. 세계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약물 스캔들 해프닝이었다.

그런지 25년이 지났다. 그는 다시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에 섰다. 50이 넘은 나이에 왜? 이번에는 도핑 방지를 촉구하는 홍보대사의 임무를 띠고 서게 된 것이다. 그는 새로운 인생 열차로 갈아탔다. 나아가 잘못된 길을 걸어 파멸로 치닫는 사람들이 갈아타기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가? 갈아타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리석은 인생을 버리고 지혜로운 인생으로 갈아탈 수 있는 사람. 악한 길에서 선한 길로 갈아타는 사람. 주님을 슬프게 하는 길에서 주님을 웃게 만드는 길로 갈아타는 사람. 불순종의 길에서 순종의 길로 갈아타는 사람.

아름다운 세상은 이런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갈아타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가지 말아야 할 길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패망할 길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돕는 사람. 복음의 세계로 초청할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