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환
(Photo : 기독일보) 최윤환 목사.

웬 이 시골 산골짝에
황금 빛 창문 높다랗게 걸어 놓고
밝은 건축물 시설 덜렁하게
세워 놓았을까

아마도 새로이 터득할 가슴 속
진실 이야기를 물가에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겠지

목마르지 않을 샘물
두레박 깊게 길어 올려
참 오랜만에 그 냉기 입에 헹구어서
해맑은 깨달음
몸 안에 가득 담아내야 하겠네.

뒤안길 돌아
돌무늬로 쌓아 올린 폐허 흔적, 한 곁으로
주루루 허물어진 채, 산모퉁이에
그 옛날의 이야기 사건을 말하여 주는데

길게 뻗어 나간 행 길 가에
스무여 개 둥근 돌기둥이 나란히
아직도 깨져 줄 서 있어
역사 이야기를 남겨놓고 있구나

사람 사람마다
자기 사연 시간 담고 움직이고 있듯이
사람 손자국마다도, 주먹 진, 자기 이야기를
의미 담고 땅 밑에 묻어두고
있는 것일 테니까_

사람마다 겉으로야 웬만 만 하면, 아주 온전한 몸자세를 가누고 살아가고 있다고 보기는 하지만, 남모르는 안쪽을 드려다 볼 수 있다면, 그 누구든 간에, 어딘가 마다 이지러지고, 허물어진 구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나는 이 구석 저 구석 찌그러지고 어긋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외양이야 말 할 것 없겠지만, 정신적으로, 아니 심리상태적으로는 헤어진 행주치마 정도라고 해도 과언 같지가 않습니다. 창피도 합니다. 그래서 폐허입니다. 때로 손가락질도 받습니다. 물론 나 자신 눈물은 안 납니다. 한데, 맘 속 바닥에는 돌아앉은 아픔을, 때마다 마음 적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마다 눈앞에 폐허를 찾아와 보고, 나 혼자 좋아하는 몸짓은, 그 폐허가 어쩌면 나 닮고 있다는 영상을 맘 담 군 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젊은 한 때, 커피를 즐겨했던 이유를 구집이 파내어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쓴 커피 빛깔로 내 이즈러진 구석구석을 흙칠이라도 해야겠다는 오기심조차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가, 어느 비 쏟아지는 날에 하루 종일, 내가 가르쳐야 하는 강의시간도 빠뜨리고, 음악실(그 때는 인사동, 좀 후엔 종로 모퉁이에 르네상쓰니, 또는 을지로 모퉁이에 아폴로니 하는 음악실이 있었습니다)의 삐걱삐걱 계단 타고 올라가서는, 하루종일 맛없는 커피와 시베리우스 씸포니 4악장을, 비틀어 앉아서 귀청 터지게 들으면서, 커피와 음악으로 비벼지는 시간을 쏟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그 음악이 나의 가슴에 깊게 박혀져 들어 왔고, 나의 삶의 변화의 전기가 되기 시작도 했습니다.

아! 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 나는 거기에서 지금 생애를 함께하는 아내를 만났습니다. 많은 이야기, 그리고 음악이야기도 참 많이 나누어 뜨랬습니다. 얼마 또 얼마 후, 미국에 와서 교실에서 성서고고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저 많이 쌓여 담겨, 부서져 있는, 허물어져 있는 폐허에, 그처럼 거기 많은 이야기가 소리 없이 담기어 있다는 실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인간들의 아픈 이야기, 웃음 젖혀대는 이야기, 모퉁이의 슬픈 이야기들.. 하나하나씩 살이 붙여지고 또 깨어지고, 성곽도 섰다가 허물어지는 속소리 이야기들이 내 마음 바닥에 새겨지고 다듬어지는 말들로 들려왔습니다.

물론 폐허에도 그렇지만, 한 인간의 삶의 점철 역시 폐허 속에 담긴 많은 숨은 이야기들처럼, 한 인간 속에 묻혀진 그 많은, 맘 저려진 이야기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한 인간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하나하나 귀한 생명도 다 드려, 다듬어 놓으신 인간 내부를 그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또 그렇게 사랑하여야 한다고, 내 영혼에 계속 속삭여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렇게 저렇게 일그러졌다 해도, 아니 또 그렇게 해맑은 작은 생명으로 변할 수도 있는, 많은 이야기 담긴 생명의 샘물일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서로 사랑하여야 한다고, 나는 더 깊게 또 깊게 깨달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