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enism과 Judaism에 대한 오해들
1) Hellenism은 다신론적이고 Judaism은 일신론적인가? <9월 5일자 10면 참조>
2) Hellenism은 인본주의이고 Judaism은 신본주의인가?
그리고 유대인들은 항상 신본주의였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구약의 역사서와 선지서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특히 아모스의 경우가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또 두려워했다면 백성들을 착취하고 불의한 일들을 행하였겠는가? 북방의 이스라엘 왕들은 그만 두고라도 남방의 유다 왕들 중에 과연 몇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는가? 그처럼 대부분의 왕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는데, 백성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이 있었겠는가? 남방 유대가 망한 후에 그 원인에 대해 역대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36:14-6):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며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이 글에서 역대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을 본받아서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이 이방인들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5:5-9):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있는 이방인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백성을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이 주위의 이방인들보다 못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단 여기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예레미아2:11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이 아니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이 번역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보다 정확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이방인이 신들을 바꾸느냐? 이들은 신들이 아니다. 그런데 내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들과 바꾸었다.” 여기서 “그 영광”은 하나님 자신을 뜻하고, “무익한 것”은 우상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비록 헛된 신들을 섬겼으나 자기들의 신들을 바꾸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배반한 것이다. 그것도 수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에레미아애가의 저자는 자기백성의 죄가 소듬의 죄악보다 크다고 한탄하였다(애4:6). 시편에 보면 자기들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과 하나님께 지은 죄를 언급하는 구절들이 나오는데, 특히 78편과 106편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자책과 반성을 적은 글이다. 따라서 이러한 성경구절에 근거해서 판단한다면 이스라엘백성이 이방인들 특히 희랍인들보다 더 신본주의이고 야웨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겼다는 주장은 성립되기 힘들다고 하겠다.
3) 신약성경이 희랍어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뜻
헬레니즘을 정죄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희랍사상이 초기 기독교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신학사적 배경과 역사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신약성경이 희랍어로 쓰였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헬라사상을 쉽게 저주하지는 못할 것이다. 언어는 사상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언어가 가는 곳에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사상도 함께 가는 것이다. 만일 희랍사상이 저주받을 사상이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런 저주받을 사상을 담은 언어로 기록되었겠는가? 필자는 성경이 희랍어로 기록된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계셨다고 믿는다.
4) 성령님께서 희랍선교를 중시하심
사도행전16:6-10을 보면 주께서 희랍선교를 얼마나 중요시하셨는가가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사도바울이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성령님이 금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그의 의도와 상반된 지시를 내리신 사건은 여기 밖에 없다. 왜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선교하는 것을 성령께서 금하셨는가? 물론 이것은 희랍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마게도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사도바울에게 보여주신 환상과 그 환상을 본 후에 사도바울 일행이 즉시 마게도니아로 간 사실이 이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유사한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왜 성령님께서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대신에 희랍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가? 그렇게 하신 직접적인 이유는 희랍이 여전히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성경이 희랍어로 쓰여야 할뿐만 아니라 기독교신학이 희랍사상을 바탕으로 확립되어야 할 필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그 이후의 기독교역사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보다 더 자세히 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니까 김준곤 목사님은 자신도 잘 모르시는 바를 저주하신 셈인데, 그 분이 어떻게 그런 그릇된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이는 그 분이 직접 공부하여 도달한 견해라고 하기보다는 누군가 헬레니즘에 관하여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통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에 들고자하는 예는 이런 가능성을 한 층 더 높여준다.
5) 아레오파고스가 헬레니즘의 상징인가?
또 하나의 경우는 필자가 그리스에서 공부를 마치기 전에 한국에 다니러 갔다가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생명의 말씀사에 들렸을 때였었다. 그 곳에서 혹시 희랍에 관련된 서적이 있나 둘러보던 참에 마침 이상근목사님이 쓰신 사도행전강해가 눈에 띄어 아테네에 관한 기사가 있는 사도행전 17장에 대에 쓰신 부분을 펼쳐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에 아레오파고스가 “헬레니즘의 상징”이라 쓰여 있고 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아고라에 있었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말을 쓸 수 있었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그 옆에 20 여권으로 된 영어판 주석서가 한질이 꽃여 있어서 사도행전을 빼서 같은 부분을 펼쳐보았더니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필자는 불행하게도 이 주석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Pulpit주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상근 목사님이 그 책을 보고 베끼셨거나 아니면 유사하게 쓴 다른 책을 보고 베끼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만일 그렇다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글을 그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베껴 쓴 셈이 되는데,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그 출처를 밝혀두는 것이 학자들의 관행이다. 그렇게 하면 잘못된 인용을 했을 경우에도 책임이 다소간 줄어지게 된다. 이 두 책들의 저자들은 그런 견해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두 책 모두 아레오파고스가 무엇을 하는 곳이고, 또 왜 그것이 헬레니즘의 상징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들 주석서들을 읽는 사람들 중에 과연 몇이나 아레오파고스와 헬레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두 책 역시 헬레니즘이란 말에 대한 정의 없이 이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과연 이 말이 여기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희랍문화와 사상이란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아레오파고스가 헬레니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없다. 희랍문화의 전성기는 넓게 잡으면 주전 5 세기와 4 세기이고, 그 절정에 달한 시기는 480-430이다. 그 중에서도 페리클레스가 통치한 450-430년의 기간을 희랍문화의 황금기(Golden Age)라고 부른다.
아레오파고스는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바울이 그 앞에서 복음을 전파한 사실로 인하여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이 기관은 원래는 아테네의 헌법을 수호하고, 관리들이 관직에서 물러날 때 그들의 치적을 평가하고 또 종교적 행사를 주관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 회원들은 과거 왕족의 후손들과 국가의 최고의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시민들 중에 명망 있는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권한과 권위가 막강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이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거침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5세기 중엽에 민주주의를 보다 폭넓게 도입하려고 한 개혁파 지도자 에피알테스와 그 후계자인 페리클레스에 의해서 그 정치적 권한이 박탈되어 그 이후 종교적인 행사를 주관하는 임무만 맡게 되었다. 그 후 로마시대에 그 권한이 얼마간 회복되었으나 이때는 시기적으로 희랍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을 때이기 때문에 그 것이 헬레니즘을 대표한다고 말하기 곤란한 시기이다. 다시 말해 아레오파고스가 아테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는 헬레니즘이 꽃피기 이전이거나 로마의 지배하에 있을 때 즉 헬레니즘의 꽃이 시든 때이고, 헬레니즘이 전성기에 달했을 때는 그 역할이 퍽 제한되어있었기 때문에 아레오파고스를 헬레니즘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헬레니즘의 상징으로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꼽는다. 이 신전은 위에 말한 황금기에 건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희랍인의 정신과 이상을 잘 나타낸 건축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희랍문화의 위대성에 대한 가시적 증거(visual evidence)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연구되고 가장 많이 찬탄을 받아온 건물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적기로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