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2013년 한가위에-

영혼구원을 강조하는 보수정통의 신학과 교회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저들은 육은 무익하고 영만 강조하는 영지주의자처럼 이원론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웬일인지 이 육신의 문제, 특히 먹는 문제를 하등취급을 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요즘은 보수교단들의 사회참여도가 매우 높아졌지만 지나친 개 교회주의와 교회성장론 때문에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문제에 있어서는 오늘날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본을 충분히 따른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난들이 산처럼 쌓여가는 것이다.

제자도를 통하여 부흥한 교회들 마저도 화려무비한 예배당을 짓느라고 그 귀한 헌금을 탕진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벳세다를 어디서 찾을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과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수는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건축을 중단하고 그 천문학적인 돈으로 오늘의 벳세다 광야로 나가라! 거기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기 바란다. 그 반 작용으로 밥퍼목사가 등장하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자, 많은 사람들이, 많은 단체들이 밥퍼목사의 뒤를 따라 이곳 저곳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기 시작했다. 참 다행스럽고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심심치않게 부정적 뉴스의 근원이 되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팔짱끼고, 뒷짐지고 나몰라라 하는 부자교회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고 할 것이다.

예수께서 벳세다광야에서 어떻게 하셨는가 보자! 때는 마침 이스라엘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었다. 유월절기의 하일라이트는 뭐니 뭐니해도 식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는 것인데, 이런 전통은 수천년을 두고 이어져 오고 있다. 이상한 꼬깔모자나 빵모자를 쓰고 식탁에 앉아 먹는 유대인들의 화보를 흔히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명절에 식구들과 오손도손 모여 잔치를 벌여야 할 사람들이 구름처럼 자기에게 몰려 오는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이 말씀에 나는 감동을 받는다. '보시고' 무엇을 보셨을까? 저들이 명절에도 식구 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허기져서 광야로 물밀듯 몰려 오는 것을 보셨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의 교회, 오늘의 크리스쳔들은 이런 예수님의 눈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 그의 친애하는 제자 빌립에게 물으셨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그때 빌립이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답했다. 빌립을 나무랄 것이 없다. 그는 지극히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답을 했던 것이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배울점이 있다. 벳세다 광야의 허기진 군중들을 보는 태도와 접근방법이다. 예수께서는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 문제를 어떻게하든 푸시려는 마음을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과 빌립은 현실의 벽에 부디쳐 그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이 차이다.

아프리카의 기근이나 중남미의 아이티같은 나라 동남아의 뱅글라데시를 논하기 전에, 세계 최강 세계최고 부국인 미국의 굶주린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어글리 어메리칸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 어글리 코리안이 따로 있는것도 아니다. 벳세다 광야의 허기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접근 방법에서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마음을 안 가지는 것이 바로 어글리 크리스쳔, 어글리 쳐치이다. 우리는 곧잘 이런 속담을 달달외운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수없다." 그렇다. 나랏님은 할 수 없어도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 나랏님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지 않는 교회를 비난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나랏님이 할 수 없는 그 일을 그리스도인은 해야만 한다. 여기가 빈들이라고, 이백데나리온도 부족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눅9:13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