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말고 탐내지도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요즘은 훔치는 행동에 대해 종전보다 비교적 관대히 여기며, 특히 십대가 이런 일을 저지를 경우 거의 큰 문제를 삼지 않는다.
데니스 프레이거란 유명한 컬럼니스트가 수년 전 클리브랜드 지역에 소재한 한 공립고등학교 학생들 앞에서 강연하던 중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여러분들 가운데 만약 경찰에 잡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겠습니까?”
그랬더니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중산층이상 다민족 학생이 다니는 학교였기에 특정 인종그룹(예: 흑인 내지 남미인)이나 저소득층 학생들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광경을 담고자 카메라 녹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담대히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프레이거는 학생들에게 왜 물건을 훔치겠냐고 물어봤다. 그들은 자신이 훔치는 물건 때문에 대형백화점이 손해보지 않을 것이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인가? 참고로 통계에 따르면 매년 백화점 및 전국 체인점에서 직원과 손님의 “슬쩍”때문에 손해보는 액수가 약 310억 달러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숫자는 전체 판매액에 2%나 되는 거액이다. 월마트나 베스트바이 같은 업체들이 310억 달러의 손해를 그저 적자로만 계산하고 있을까? 아니면 업체들이 이 액수를 그대로 물건값에 추가해 무죄한 일반 소비자가 지불하도록 하고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누군가의 도둑질은 그저 남의 문제가 아니며, 상당히 큰 사회적 문제요 손실임이분명하다.
프레이거는 이러한 문제를 공립학교가 갖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인성교육에서 손을 뗀 공립학교 교육의 결과는 당연히 옳고 그른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학생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프레이거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사실 공립학교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지 않고 사회가치(social value)만 가르치고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을 하지 않아야함과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세지, 그리고 흡연중단에 관한 메세지는 공립학교에서 잘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윤리, 나아가 공동체의 윤리와 도덕성에 대해선 아예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 공립학교의 현주소다. 특별히 “political correctness”란 구호 아래 옳지만 남을 자극하고 불편케 하는 표현은 절제하자는 의도가, 지금은 윤리나 도덕성에 대해선 아예 말하지 말자는 선까지 가버렸다. 요즘 ‘뜨거운 감자(hot potato)’로 등장한 동성애 교육(필수교육, 교재에 포함, 교사의 커밍아웃 등)이 바로 이런 맥락의 문제다. 그저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것을 일반 가정과 동등하게 여겨야 하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다 시대에 뒤떨어진 극보수자 내지 광신자로 취급한다. 또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다며, 가치나 도덕성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치와 도덕성은 그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는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생명의 존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내키는대로 차를 운전할 수 없다. 자신 및 타인의 생명을 보존하려면 규칙과 법을 지켜야하며 자기 마음대로 “상대적”으로 (예를 들어 학교 앞에서 어느날은 15마일로 운전하고, 또 어느날은 같은 구역에서 100마일로) 운전할 수 없다. 규칙이란 사회적 질서와 많은 사람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성(性) 같은 기본적인 삶의 요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리가 있고 정도가 있는 것이다. 동성연애를 거부하는것은 그저 고리타분한 기독교교리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도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개인의 윤리, 도덕,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의 공의와 성경에서 말하는 윤리에 대해 부모가 가르쳐야겠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일찍이 자녀에게 정직의 모델을 보여주고 거짓과 위선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즉 아이로 하여금 거짓과 도둑질(?)에 참여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디즈니랜드 입장비를 절약하기 위해 아이에게 나이를 속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 속이고 훔치더라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의식을 남기게 된다.
맥도날드에서 잔돈을 너무 많이 받았을 때 “야! 공돈 생겼다!”라고 기뻐하면 안된다. 그런 모델을 본 아이가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대기도 하고, 가게에서 사탕을 슬쩍 훔치기도 하며, 학교에서 친구의 물건을 “슬쩍”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부모가 반응하고 가르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기에 어려서부터 잘 가르치지 안으면 나중에 꼭 후회할 일이 터진다.
그리고 다음 단계론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에 자녀 교육을 맡겨보는 것도 고려해보자. 특별히 학교를 옮겨보고자 하는 부모는 ‘학군’만 따지지 말고 공부도 잘 가르치고 인성교육도 실천하는 학교를 찾아보길 권한다. 정말 질 높고 가치있는 교육을 자녀에게 마련해주고 싶다면 기독교사립학교들을 꼭 방문해보길 권한다.
끝으로 학교 외에 교회나 종교단체의 인성, 영성교육 프로그램에 아이를 참여시키는 것도 좋겠다. 단기선교여행, 리더쉽 훈련, YWAM 같은 선교단체의 DTS 및 Infusion 등 좋은 임팩트를 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으니 찾아보고 참여시켜 보자.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며, 공립학교나 일주일에 한두번 참석하는 주일학교에서 도덕과 윤리교육을 감당할 것이라는 망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도덕, 윤리. 무척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단어같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하루 수백번씩 내리는 결정을 좌우하는 기준이다. 이것이 흔들리면 사회가 무너진다.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정말 난세(anarchy)를 곧 접하게 될것이다.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 도덕과 윤리를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공부, 학점, 대학진학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것만 추구하다간 정말 사람다운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차세대리더로 키우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