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란 본디 밑바닥 생활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잘 살다가도 전쟁에 휘말려 나라가 망하고 의지할 곳이 없으면 누구나 거지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을 피난민 시절 절실히 실감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신명기 10:19)”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대한민국 중앙청에서 봉사하게 됐고 남부럽지 않은 직책을 받아 6.25 참전명예수당도 받고 정년퇴직하게 됐다. 실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이다.
9.28 수복 후 하루는 어떤 나그네 한 사람이 집에 찾아와 커다란 엿 뭉치 한봉지를 내놓으며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아니, 누구신데 이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냐”고 묻자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어느 추운 겨울날, 댁으로부터 따스한 온정을 받은 거지입니다. 춥고 배가 고파 댁의 문을 열고 구걸했었지요.
당연히 매나 안 맞고 쫓겨나면 다행이려니 생각하던 차에 댁의 마나님께서는 더럽고 추한 거지였던 제게 ‘밖은 추우니 들어오라’며 따뜻한 방으로 안내하고 뜨거운 밥상을 차려주셨습니다.
밥을 먹은 기억보단 고마움에 눈물을 훔치며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답니다.”
연신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는 “그후 몸도 건강해지고 다소 밑천도 모여 엿장사를 시작했는데, 오늘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 옛 온정이 생각나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마음씨를 계시니 당연 교회에도 나가시겠지요?”하고 물었다. 그는 “글쎄요. 아직 그런 마음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은 당신 같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삼고 교회에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아들로 삼으시고 제가 베푼 사랑보다 1만배나 크고 깊은 사랑으로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테니까요.
나는 일곱살 때부터 유년주일학교에 다니며 예수를 믿었습니다. 장년이 되어서는 전쟁을 겪으며 모진 고난을 받았으나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로 구사일생으로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 후 무사히 고향에 돌아와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이렇게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피난민 시절 우리 식구들에게 따스한 온정을 베푸셨던 고마운 노인 한 분이 계신데,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그분을 찾아 은혜를 갚고자 하였으나 아직도 이루지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니 참 반갑군요.”
이렇게 말하며 그의 손을 잡으니 급기야 “나도 어른께서 믿으시는 그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그분의 장래를 위해 같이 기도 드리고 저녁식사 후 가지고 온 엿봉지 값으로 얼마간의 금전을 그의 주머니에 넣어주고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