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목사.
(Photo : ) 김세환 목사.

구약성경을 읽다가 제일 먼저 걸림돌이 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선악의 나무와 생명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에덴동산에 이 두 나무를 심지만 않으셨어도 ‘원죄’, ‘에덴에서의 추방’, 그리고 ‘선과 악의 끊임없는 싸움’ 같은 골치아픈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인류의 조상 아담 부부를 두고두고 욕먹게 만든 것입니다.

게다가 두 나무를 동산의 변두리에만 심었어도 사정이 좀 나았을텐데, 하필이면 동산 ‘정 중앙’에 심어서 매일 오가면서 유혹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심술궂은 짓을 먼저 하시고, 유혹에 걸려든 아담 부부를 기다리셨다는 듯이 처벌해 버린 것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매일 두 나무의 열매를 오가며 보게 되는데, 한번쯤은 호기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들의 우화에 보면 ‘선악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는 생김새가 정반대였다고 합니다. 선악의 열매는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매력적으로 생긴 반면에, 생명의 열매는 ‘작고 못생기고 시시떨떠름한 맛’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누가 생명의 열매를 먹고 싶겠습니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생명과(果)보다는 선악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겁을 잔뜩 주신 후에, 인자하신 모습으로 맛없는 생명과만 즐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부당한 명령이지만, 아담 부부는 착하고 순진했습니다. 그들이 선악과에 손을 대는 큰일을 벌이기 전까지 그들은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날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명과’만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바로 옆에 그 싱싱한 선악과를 보면서도 말이지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순박한 아담 부부가 죄인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죄의 빌미를 제공한 하나님이야말로 분명한 ‘유죄’라고 선언합니다. 본능적으로 끌리게 만들어놓고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을 ‘사악한 사디스트(Wicked Sadist)’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복잡한 짓을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생기’로 만들어진 사람은 영적 존재입니다. 시작부터 하나님처럼 판단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피조물입니다. ‘선택’은 인간만이 가진 최고의 ‘자유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미련하게 맛없는 ‘생명의 열매’만 따먹으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신의 선택으로 먹음직스러운 ‘선악의 열매’를 따먹을 것인가? 선택의 문제는 처음부터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부담스러운 은총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으니 피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숙명적으로 ‘결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걸어 놓으신 유일한 재동장치는 선악과와 생명과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로 선악과를 먹고 힘겹게 인생을 헤쳐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이 ‘선택’의 딜레마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