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예수님은 복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산상수훈에서 매우 심층적으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 진짜로 성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는 충격적인 설명을 시작하신다.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가?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옳은 일을 함으로 부당한 대접을 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박해하고, 우리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우리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성공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시는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특별히 예수님이 첫 번째로 언급하신 정의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당신은 속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내가 복이 있다고? 사업하다가 쫄딱 망해서 이렇게 궁핍하게 살고 있는데, 내가?"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돈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 혹은 못가졌느냐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내세울 만한 것들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의 성공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를 의지하는 것, 내세울 만한 모든 것들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데 강조점을 둔 것이다. 예수님은 성공한 인생을 다시 정의하신다.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말한다.

사업가로서 남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것,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 등 우리가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예수님이 성공을 생각하시는 것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은 성공을 거꾸로 뒤집어 놓으신다. 우리는 높은 곳에 올라 서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곳에 오르기를 거부하는 겸손한 사람들, 짓밟힌 사람들, 처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성공에 대한 세상의 정의를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의 삶은 우상숭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살아 가는지 점수를 매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부자 게임'이라는 게임이 있다. 그 게임의 목표는 주사위를 던져서 비싼 집, 비싼 자동차, 비싼 직업등을 많이 따는 사람, 빨리 부자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그런 게임을 해봤든지 못해봤든지 세상 모든 사람은 '부자 게임'을 하고 있다. 그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26). 당신 영혼을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면, 승진의 기회를 잡는 것이나, 호화로운 자동차와 집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성공의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내놓아야 한다면 당신이 성공이라고 생각한 것이 갑자기 가장 처절한 실패로 보일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유한 젋은 관원이 슬픈 표정으로 예수님을 떠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즉, 그가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가장 지독한 실패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10:22). 사실 이 구절을 문맥상 보지 않고 그 자체만을 놓고 보면 정말 괴상하게 들린다. 근심하면서 간 이유가 재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물이 없는 사람, 당장 굶고 있는 사람이 근심하지 재물이 많은 사람이 근심하는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많은 재산이 왜 그 사람을 근심하게 만들었을까?

그 많은 재산을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재물을 너무 많이 가졌고 그 탓에 오히려 그 재물의 소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는 부유하고 젊은 관원이었다. 모든 면에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재물로나 젊음으로나 명예로나 부족함 없는 성공의 심볼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오직 예수만을 의지하는 심령이 '가난한, 젊은, 종'이 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성공이 그 사람을 꽉 붙잡고 놔 주질 않는 바람에 예수님이 바라시는 심령이 가난한 종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 이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부유한 젊은 관원이던 그는 더 부유한 늙은 관원이 되었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그는 '부자 게임'을 더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근심하며 돌아서는 대신 예수님께 "좋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과 바꾸겠습니다."라고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자의 수가 열 세명으로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신약의 복음서가 네 권이 아니라 다섯 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관원이 갖고 있는 재물 자체가 죄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성공하고자 하는 것이나 부자가 되고자 하는것이 잘못 된 것이 아니다. 그런 목표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또한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하여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화가 나고 질투가 나는가? 기쁘게 축하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자의 모습은 심령의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외적이고 가시적인 성공이 성공의 본질이 아니다. 영적인 성공, 인격적인 성공이 수반되지 아니하면 가시적인 성공은 실패일 뿐이다. 영적인 성공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공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