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환
(Photo : 기독일보) 최윤환 목사.

쇤부른 궁전 입구 곁으로, 조각으로 장식된 철문 안
나무 수목 가지 푸르게 반듯하게 각 져서 돔처럼 뒤덮인
엷은 수록(樹綠) 그늘 아래 풀밭에 앉아 보고 싶어라

궁전 공원 마당으로 향한 찰 찰한 모랫길 광장의 조각에 맘 둘 사이 없이
황금색 쇤부른 궁전 앞, 회색 점 말 마차와 어울려
반짝이는 흑 갈색 말 마차들의 곡선행렬

철 계단, 어느 결에 올라서는 가하더니
낭하 홀마다 벽에 걸려있는 유화 벽걸이,
1441개의 방 중에 18방만 공개 된다는 궁전,
왕들, 카롤 1세 남편의 세를 넘어서는 우세로 테레지아 여왕 雄座에,
공주들의 인물유화.

이 자리가 나폴레옹이 섰었던 자리라 했는데
공주들의 아담스런 침실과 浴室 房
열 몇 명의 공주들 끝에서 두 번째 공주는 훗날
모챠르트가 6살 때, 이 방에 찾아 와, <클라비어>를 연주 한 '거울의 방'이었는데
연주를 끝내자, 감동에 찬 테레지아 여왕 묻기를,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자,
한 살 위인 저 공주 '마리 앙트와네트'와 결혼하는 것이라, 엉뚱한 답을 해 냈다는
훗날 불란서 루이 15세의 여왕 바로 그, 마리암느
왜 사람들이 굶어 죽느냐, 빵 먹으면 되잖느냐 고 묻던
그러다가 자기편에서 만들어 놓은, 혁명군을 목 잘라 죽일
무서운 키로친의 이슬로 사라져 갔던 여왕.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차르트가 연주하였다던 방엔
드넓은 은빛 황금의 궁전 음악의 홀, 벗어나오며
뒷돌 계단을 밟고 서자, 후궁 깎아지른 수목들의 사열 광장 과 조각상 전열
멀리엔 야외 음악당 무대, 하얗고 노랑 빛 난간 벽기둥들로 꿈속처럼 펼쳐 있어서

한 어떤 인생의 눈부신 화려한 삶의 그림과
평범하고 가난한 한, 촌부로서 되어 서 있는
어리둥절한, 몸 가늠 흔들리는 모습에 엇갈려서
혼란해지고 마는, 빙빙 세상 돌아가는 회전목마 위에
멍청하게 얹혀 져 있을 나의 그림자여.

사람이 살아가는, 참 여러 가지의 인생 모습들에서, 혼란스런 착각이라는 정상적인 방관자로서의, 그저 서서 바라보아야 하는 경지가 있습니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의 버킹험 궁전 앞 작은 돌문 앞에서는, 왕자가 태어났다고 온 런던 시민이 줄이어 서서 나와서 떠들썩하게 온 광장, 퍼지도록 환성을 터뜨리는 뉴스에서도 이런 착각은 서려집니다. 그래서, 어느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만인의 축복을 감싸 안고 환성 소란 가득 터뜨려서 화려하기 그지없고, 또 그 어느 날의 그 어느 아이는 일본 군부의 점령 속국 아래서,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서대문 철창에 갇혀 뼈아픈 고문당하는 사이, 사랑 없는 외톨이처럼 태어나서 나뒹구러져서 자라났는데, 아니 그리고 어느 또 시인은, 외눈박이처럼 나라 빼앗긴 조국을 멀리 바라보며, 실험생체 주사로 신체 쓰리게 꽂히고서는, 조국 향한 시를 물먹은 벙어리처럼 입 안 가득 물고서, 눈 감았어야 하던 세상..

아닌 게 아니라, 그 나라의 그 왕자도 역시도 세상 참 험상스러워져서, 아프가니스탄 사막모래 언덕을 후벼 다니며 전쟁 병사로 휘돌다가 조국 땅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드랬다는데, 한데 어느 땅의 이름 없는 또 어는 젊은이는 새파란 나이에 참으로 이름 없는 어느 전쟁터 고지에서 철모를 떨구고, 그 총상 입은 몸체로 쓸어져, 60여년이 흘러 흘러, 그 흙속에서 앙상히 몸 자리 잃은 뼈로만 딩구는, 기억속에서의 잊혀져간 젊은이의 녹슬고 퀭 뚫린 철모로, 주인 잃고 그곳에 나뒹굴어야 하는, 그런 생명..

그래서 여기 꿈에 젖은 비엔나의 한 곁가, 화사한 궁전 마루에 발을 부비면서, 눈물겨운 지난날의 그림자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화려한 역사를 둘러 밟아 오버랩 하면서, 여러가지 착각의 想念을, 엉켜버린 구름결처럼 연상 굴리며, 몸 안팎을 근지러워 해 봅니다.

인간이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방황하다가 그냥 그대로 끝내버리고 마는 삶이라면, 그야말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인간 삶일 테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몸을 튼튼한 벽에다, 예술의 형각으로 다듬어내는 예술처럼, 인간 삶의 이유를 역역하게 새기며 彫刻 시켜 내 가는 것이기에, 이렇게 엄숙하고 담담한 삶의 뿌리를 생성시키는 누리의 대지 위에 번져 내리도록, 근거를 하고 있다는 신앙적 슬기를, 끝내 까지 외쳐 펴 보려는 소리로서, 찬찬히 글 판에 담아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