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문.
(Photo : 기독일보) 윌리엄 문.

한국전쟁은 공산주의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남북한의 국경선인 북위 38도선을 무력으로 남침하여 민주주의 남한정부를 전복시키고 적화통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무력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일어났다. 자유진영은 미국을 위시한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연방,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그리스,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타이, 터키 등 16개국이 동년 7월 7일 유엔 결의안에 따라 유엔군을 편성 한국전에 파병하였다. (미문서기록청 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korean-war), (위키백과 한국전쟁, en.wikipedia.org/wiki/Korean_War), (한국전쟁, www.koreanwar.org), (역사, www.history.com/topics/korean-war)

백전노장의 맥아더 장군도 정예 인민군 10개 사단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스미스 부대 1개 대대만을 7월 1일 부산에 상륙케 하여 전선에 투입하였다. 그러나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인민군과의 첫 전투에서 스미스 부대는 대패를 하였으나 미군 참전에 놀란 인민군의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파죽지세의 남침의 물결을 약 10일 동안 묶어 둘 수가 있었다. (한국전쟁문서기록, www.koreanwararchives.com), (한국전쟁기념재단, www.kwmf.kr), (전쟁기념관, www.warmemo.or.kr), (한국전쟁유족회, www.coreawar.or.kr),

이 10여일이 한국전을 패전에서 승전으로, 맥아더의 읍참마속 같은 위기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적 승기를 잡는 매우 중요한 시간들이며,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남침을 저지하고 산화한 스미스 부대원들에게 늦게나마 심심한 조의와 경의를 표한다.

1851년도부터 모든 신문을 디지털화하여 검색을 유무료로 제공하는 뉴욕타임스(www.NYTimes)에서 검색어 'War in Korea'로 검색한 결과 미동부 시각 6월25일 일요일 미 국무성은 "공산주의자 북한이 독립 남한정부를 침공한 것에 대하여 러시아의 책임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날 이후 뉴욕타임스에서는 한국전쟁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7월 17일자 기사에 "한국전쟁은 일본 주식시장을 벼락 경기를 일으키다", 7월 23일자 기사에 "한국전 이래 일본 가격상승"이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있어 입맛이 씁쓸하다. 나의 불행은 너의 행복일까? 디지털 정보가 1초안에 유통되는 글로벌 시대에도?

대동강철교 피난길 행렬 사진은 학생 때부터 너무 많이 보아 왔지만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워싱턴 프레스센터에 갔을 때 그 사진 배경 설명서를 읽고 알았다. "내 생애 가장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치 부서진 교각에 달라붙어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 같았지요." 이 사진을 촬영한 AP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의 말이다.

우리 모두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를 말고 원한의 연못에서 평화통일의 홍련 백련 청련을 피어 올리고 손에 손잡고 융합의 아리랑을 부르자. 한반도에 다시는 이러한 비극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반인권, 반통일과 반민족행위자 등은 통일 후에도 소추하여 기소를 반드시 하여 벌을 받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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