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박석규 목사.

요즘 '찬송가 해설집'을 보며 은혜를 받는다.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다. 신앙생활은 찬송과 말씀, 말씀과 찬송의 두 바퀴를 성령의 힘으로 굴리며 달리는 마차 같다.
찬송마다 역사와 배경, 유래가 있어 내용을 알고 부르면 새로워지고, 좋아지며, 은혜가 된다.
'돌아와 돌아와'라는 찬송은 가사와 곡이 감성적이어서 우리 나라에서 많이 불리웠다. 이민와 오래 됐지만 아련히 생각이 난다. 석양에 교회 종탑에서 이 곡이 촤임으로 울려 나올 때 심령을 파고 들어 믿다 낙심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자여
길이 참 어둡고 또한 험악하니

(후렴)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 돌아오라

돌아와 돌아와 우리 아버지께
대문 앞에서 서서 기다리고 계셔

돌아와 돌아와 죄의 소굴에서
유혹 물리치고 환난 벗어나서

돌아와 돌아와 집에 돌이오라
아버지 집에는 없는 것 없으니

작시의 배경은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가사화하고 있다.
두 아들이 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의 몫을 달라고 졸라대어 받은 후 타국으로 떠났다.
허랑방탕하게 살다 모두 탕진한다. 가진 것이 없게되자 돼지 치는 머슴으로 전락한다. 때마침 흉년이 드니 먹을게 없어 돼지 먹이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나 그마져 주는이 없다.
비참한 경지에 떨어지고나니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 집이 그리웠다. 자식들이라는게 그런거다 자기 좋고 편할 때는 부모생각 않다가 어렵고 힘들어 굶주려 죽게되니 부모가 그리웠고 고향이 생각났다. 모진목숨 부지하려 먹을것 찿아 기어 들어온다.
그런데 아버지를 보자, 등지고 나간 아들이 어떻게 지내나... 주야장천 근심걱정 떠날날이 없다. 언젠간 돌아오겠지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계시다.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이 보이자, 상거가 먼데 알아채리고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맞아 들인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사람을 불러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하며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며, 신을 신기워 준다.

탕자의 비유는 영적 이야기다.
물질에 눈이 어두워 정욕 좇아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유혹 따라 향락에 빠져 망가지는 탕자 이야기다.
두렵다, 부모를 떠난 자식이 어찌 잘되며, 스승을 등진 제자가 어찌 성공하랴 ...

이 시대가 '탕자 문명' 시대가 된지 이미 오래다.
모든 것에 흉년이 들었다. 그 어디를 살펴도 허기를 채울곳이 없다. 이대로는 절망이다.
길을 찿아야 한다.
오직 한길!
한길!
살 길이 여기 있다. 아버지 집이다.

돌아가야 한다.
본향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자복하고 통회하며 돌아와야 한다.
낭패와 실망 당한자여 돌아오라.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 회개의 눈물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간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능가할 수 없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보자기는 나의 죄, 너의 죄, 인류 모두의 죄를 싸고도 남으신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다 해도 주께로 나아오면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 받는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곧 알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