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편집증은 치료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자존감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집증은 조건이나 여건이 적절하게 실행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그에 상응하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앞장에 이어 우리는 편집증의 특징적인 증상을 다루면서 치료로 인정할 수 있는 과정과 치료적인 증례로 구분하여 다루기로 한다.

1. 급성-편집증

급성-편집증(acute paranoid)은 갑자기 일어난 편집증상이다. 이 급성-편집증은 일단 짧은 기간에 유발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유형은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급성적으로 유발되었다가 6개월 이내에 깨끗이 회복되기도 한다. 급성은 만성과는 다르게 갑자기 일정 기간에만 일어나므로, 치료도 만성에 비하면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개선될 소지를 갖는 점에서다. 그래서 이런 급성-편집증은 특정한 사람들로 발병이 제한되는 편이다. 외국에 이민간 사람, 피난민, 전쟁포로, 군입대자, 감옥에 갇힌 사람, 또는 처음으로 자기 집을 떠나 살게 되는 사람들 중에서 일어나는 편이다. 이들에게서 일어나는 성격은 그대로 급성-편집증의 하위 유형이 되는데, 다음 두 유형이 대표적이다.

1)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

급성-편집증 중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은 가장 흔한 것이다. 익숙하게 생활하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게 돼 편집증이 유발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곳에 적응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기까지는 상당한 심리적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에 대하여 다음 3가지로 구분하여 기술하기로 한다.

(1)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의 특징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paranoid psychosis in immigrants, culturalbound paranoid states)이다. 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은 흔히 의심증과 편집적 사고(paranoid ideas)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들은 감정반응이나 생활습관이 전혀 다른 낯선 사람들 속에 살아야 한다. 오늘날 문화 차이는 충격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언어 차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므로 가장 큰 문제다. 생활습관도 익숙하지 않다 보면 자신의 외모, 언어사용 또는 이질적 행동 때문에 사람들의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게 마련이다. 새로운 환경이 또 다른 호기심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대로 극복하고 적응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동일한 어려움을 두고도 여행자와 이민자는 다르게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여행자는 아무리 낯선 문화 어려운 언어도 잠시 있다 지나가는 것이지만, 이민자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런 주변 여건은 이민자에게 심리적 불안을 야기한다. 이런 불안은 물론 새로운 환경에서의 불확실성도 고립을 증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편집장애의 발병빈도가 이민자 중에서 높다는 사실은 본래 불안정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이민을 더 많이 가는 것과도 관련된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이민자의 심리적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꼽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익숙하지 않은 낯설고도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을 위하여 투쟁하는 그 자리에 알지 못하는 예기불안이 더욱 의심증을 유발하리라는 생각이다.

(2)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의 증상과 사례

30세 된 미혼의 남성이다. 그는 누님에게 이끌려 정신건강과를 찾아왔다. 그는 1년 전 미국에 이민을 가서 지내다 한달 전 일시 귀국했다. 이때 누나는 남동생이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또 동생은 며칠 전 누나 가족과 함께 갔던 극장 식당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술에 취한 남동생이 아무런 관련도 없는 옆 좌석 손님을 불륜 관계로 의심하면서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그런 행동을 목격한 누나는 동생의 행동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진찰이나 받아 보자고 설득하여 병원에 왔다.

이 환자의 기왕력은 다음과 같다. 환자는 몇 번 재수하여 명문대학 화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키가 작고 체중이 미달되어 병역은 면제되었다. 미국의 형제들이 이민을 초청하기 전까지는 어느 재벌기업에 기술요원으로 취직하여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의 대인관계는 대학시절부터 교우관계는 물론, 이성관계도 없는 편이다. 생활적 측면은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이나 활동범위로 협소하지만, 그런 대로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환자는 키가 작아 결혼문제도 원만히 성사되지 않은데다 직장생활도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한다.

더욱이 그는 별다른 준비도 없이 갑자기 미국으로 갔다. 영어를 사용하는 데 곤란이 많았고, 성격도 사교적이 못 되어 몇 달 동안 형님 집에서 무위도식(無爲徒食)을 하였다. 드디어는 형수의 눈치도 있고 해서 형님집의 생활도 계속하기 힘들어 드디어는 형님집을 나왔다. 이제 그는 자취하면서 실업자 구제기관 소개로 몇 군데 전공과는 관계도 없는 직장을 다녔다. 그러나 그것도 언어문제,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해고를 당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그만 두곤 하였다.

귀국 6개월 전쯤에는 제약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그 회사는 주로 유색인종들이 많이 근무하는 제약회사이다. 사원 30여명 정도의 소규모 공장으로서, 상급자를 위시해 동료 사원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자들이 드물고 환자만이 유일한 대학출신이었다. 환자는 이곳에서 성실한 점 때문에 사장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형님에게 큰 일이 일어났다. 형님이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 같은 동포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실의에 빠져 차를 몰고 가다 멕시코인을 치어 경상을 입힌 것이다. 멕시코인은 보상금을 내라고 자꾸 위협해서 그 후부터 형님은 멕시코인에 대한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던 형님은 마침내 자살하고 말았다. 환자는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환자는 한인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환자는 귀국 3개월 전부터 소속된 부서책임자와의 관계도 힘들어했다. 그 책임자는 입사 때부터 환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편이다. 이제 그의 행동은 점차 가시화되어 더욱 미워하고 질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공원 동료 중 멕시코인들이 몇 명 있었는데, 이들도 부서 책임자와 한패거리인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그 결과 의심과 불안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는데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환자의 일을 방해하는 것 같다. 환자를 상대로 몰래 수군거리고, 심지어는 약품 제조과정에서 아무 의미 없이 하는 말까지 몰래 녹음을 하는 것 같다. 환자 자신을 약품 제조과정의 비밀을 한국에 팔기 위하여 잠입한 산업스파이로 틀림없이 보는 것만 같다. 그러는 중에 환자는 귀국하기 얼마 전에는 부서책임자의 전화로 통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얼핏 듣기에 "환자 자신을 반드시 죽이라는 암살지령을 내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직장에서 엉겁결에 뛰쳐나왔다. 집으로 오는 중에도 지나가는 차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접근하는 것 같은 공포감이 들어 경찰서에 가서 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에서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느 모텔에 숨어서 2-3일 지냈다. 그 후에는 누이동생의 집을 찾아가 숨다시피 칩거를 하고 지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고 불안해 일시 방문여권을 얻어 귀국하게 된 것이다. 환자는 면담에 응하는 태도도 특이했다. 지나치게 경계적이면서 방어적인 태도와 불안정하고 경직된 정서반응을 나타내었다. 뚜렷한 망상이나 환각 또는 심한 현실판단의 장애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국에서 경험했던 정신병적 경험이 어디까지나 사실이었음을 완강히 주장하고 있다.

(3)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의 치료적 대응

환자의 증상은 외국이라는 현실이 심리적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국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생활하기 어렵다. 그곳의 생활방식이 우리와는 다른 점이 있고, 사고방식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합리적인데 반해, 우리는 정적인데 익숙한 편이다. 게다가 인종주의적 편견이나 국가간 차별도 느껴진다. 백인의 우월주의는 약소민족이나 황인종에 군림하는 형태로 보인다. 이런 모든 문화적인 여건이 이민자에게는 부담이나 억압으로 다가온다.

환자가 한국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고 해도 그곳에서는 새롭게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곳에 맞는 현실적인 능력을 보여야 한다. 상당한 능력의 사람이라도 무척 노력해야만 그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의 상황이 반드시 정당한 대우만을 받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이 환자의 경우는 전혀 다른 상황일 수 있지만, 그런 사회적 현실이 피해의식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환자의 자신감이 없는 심리로 인해 그 사회 문화적 현실에 억압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환자의 심리상태를 분석할 때 우선적으로 환경보다는 자신의 적응 문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적응하고 적절히 생활하는 마음자세나 생활태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제는 여전히 정적인 생활방식이 오래 몸에 배인 때문인지 인정이 없고 딱딱한 사회에 적응이 쉽지 않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그만큼 정적인 민족인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이지적이라는 일본인과 정적이라는 우리 민족의 비교가 한 단면이다. 그러므로 그 사회를 신뢰하고 적응하며, 그 곳의 사람들을 신뢰하고 이해하는 태도만이 좋은 생활방식이 될 것이다.

2) 교도소-정신병

교도소-정신병(prison psychosis)은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특유의 정신병이다. 교도소는 개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곳이다. 인간의 자유와 삶이 극도로 제한되는 곳이다. 이들을 심리적으로 화나게 하는 것은 환경적인 것보다 더욱 심리적인 것일 수 있다.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정당한 법의 심판으로 수감생활을 한다는 사람들과, 전혀 부당하고 억울하게 수감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으로 이른바 힘이 있는 강자들은 감옥에 들어오지 않으나 힘없는 약자들만 감옥에서 갇혀 생활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식은 이미 우리 사회에 팽배하게 퍼져 있다.

도둑의 경우 "감옥에는 작은 도둑이 있지만, 감옥 밖에는 큰 도둑이 있다"는 식이다. 갇힌 이유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는 가장 힘든 심리적 문제이다. 정신건강에서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와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당연한 죄-값을 받으므로 오히려 편안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억울함과 분노를 경험한다. 게다가 이런 갇힌 공간에서는 누구도 신뢰할만한 사람을 만나기 힘든 환경이다.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두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해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극복하기 힘든 것은 부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부당성이란 심리적인 것으로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 동일한 죄를 범했을지라도 갇힌 자기와 갇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비교에서 나오는 악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더욱 억울함과 분노를 자극한다. 그 부당성의 기저에는 법에 위배된 사람이라도 힘을 발휘하여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는 부당한 사회의 현실이 자리한다. 이런 정도에 이르면 사회에 대한 불신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올바로 수감생활을 한다고 해도 과연 출옥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도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에서는 성적 사고도 일어나기도 하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들려온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교도소에서는 동성애적인 공격을 받거나 또는 기타 다른 학대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수감자들의 생각은 어디에 근거를 두어야할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생각이 때로 현실적인 근거를 갖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망상적인 사고에 근거를 두는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곤란할 때가 있다. 이러한 이유들 중에서도 현실을 수용하려는 수감자들의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구금의 상태에서 편집성정신병이 일어나는 경우는 교도소 안에서의 심리적 부담이 유발인자로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환자에게는 상황이나 환경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심리가 더 편하기고, 환경에 적응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환경을 역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혼자서 갇힌 영어(囹圄)의 몸이라고만 생각하는 부정적 생각 대신, 혼자 있으므로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부정적이고 힘든 상황이지만,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읽어 작가가 되기도 하고, 기술을 배워 좋은 기술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정치가들이 수감될 때 많은 책을 들고 가는 모습을 TV로 볼 때는 마치 독서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기의 현실을 수용하여 환경을 역이용할 때 놀라운 치료의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편집증에서 인지치료가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비정형성 편집증

비정형성 편집증(atypical paranoid)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편집증이다. 비정형성 편집증 또는 난해한 편집상태(esoterric paranoid states)는 문자 그대로 증상이 불규칙하여 일정하지 않다. 그 때문에 어느 편집증으로 진단내리기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 이런 비정형 편집장애는 이미 전술한 편집증의 유형과는 어느 부분은 일치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은 일치하지 않거나 전반적으로 일치하지 못하는 증상의 형태이다. 이 유형에는 전술한 편집장애의 진단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의 편집장애들이 해당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난해한 편집상태와 급성으로 발병하였다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편집성 장애들도 포함된다. 비정형성 편집증은 다음과 같은 하위 유형을 갖는다.

1) 카프그라 증후군

카프그라 증후군은 매우 이상하다. 그래서 상당히 흥미로운 증상이라 볼 수 있다. 동일한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게 되는 점에서다. 일상에서는 쉽게 관찰되기 어려운 증상인데, 근본 원인은 인식에서 오류가 발생한 증상이다. 이 증후군에 대해 우리는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하여 기술하기로 한다.

(1) 카프그라증후군의 특징

카프그라 증후군(Capgras' syndrome)은 카프그라(Capgras)에 의해 생겨난 망상적 증후군이다. 카프그라는 1923년, 자기 남편은 다른 사람이 변장한 사람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던 여성 환자의 경우를 보고했다. 그 후 이런 증상을 가진 증후군은 카프그라 증후군으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 후에도 이 증후군은 상당히 많은 예가 보고되었으며,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정신병에서도 나타나는 증상이 되었다. 그것은 환자와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 그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바꿔치기 되었다고 환자가 믿는 망상이며, 이렇게 바뀐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해롭게 대응한다고 믿는다.

한때 이 망상은 여성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왔지만, 근래에는 남성의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이런 증후군은 정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가까운 사람을 현실적인 사람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상상, 즉 가공의 인물로 오인한 결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기대심리가 높아진 상상력이 현실로 오인되는 망상이 된 경우일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큰 사고로 강한 충격을 받으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 카프그라증후군의 사례와 증상

27세의 미혼여성이었다. 그녀는 체계적인 피해망상과 환청 등으로 정신건강과에 입원되었다. 입원 후 20일째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그때 환자는 갑자기 어머니를 "너는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로 변장하고 있다"면서 자기를 해치려 왔다고 심한 흥분 상태를 나타내었다. 간호사는 어머니가 맞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응수했더니, 얼굴이라든지 체격, 음성은 꼭 우리 어머니 같지만 다른 면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대이니 변장을 감쪽같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를 앞으로 일체 면회를 오지 못하게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가 가져온 내의와 간식도 일체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

면회 후에도 계속 "지금 온 여자는 흉내는 그럴듯하게 내고 있지만 가짜임에 틀림이 없다", "나에게 아양을 떨고는 가져온 음식에 독약을 넣어 먹이려고 했음에 틀림이 없다"고 완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환자는 같은 병실 안에 있는 갑이라는 남자 환자에게도 "평시에 약을 안 먹는다고 나를 구타한 남동생이 나를 죽이려고 변장하고 들어와 있다"고 했다. 또다른 여성 환자를 보고도 "이모가 저 환자로 변장해 들어와 나를 몰래 독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입원 3개월 후 제반 증상이 호전돼, 퇴원할 때는 이러한 망상이 전부 소실됐다.

(3) 카프그라증후군에 대한 치료적 대응

환자의 이런 증상은 성장기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따뜻한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것이다. 그녀의 가정환경이 어느 정도 이를 암시해 준다. 환자의 어머니는 첩으로 살면서 환자와 동생들을 낳았다.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환경이 그녀의 심리적인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를 생각하기에 어렵지 않은 대목이다. 게다가 환자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존재를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꼈다고 한다. 어머니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일그러진 모성상으로 자리한다.

더욱이 다른 남자와 바람까지 피우는 어머니에 대해 심한 갈등적 태도를 지녀왔다고 한다. 어머니를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적 심리적 상황이 정상적인 정신 상황을 형성하기에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마음 속 기대를 너무 상상하여 현실로 인정하는 일종의 망상이 되었다. 그것은 환자가 그런 어머니를 바라고 희망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음에 따라 오히려 자신에게 피해주는 어머니로 둔갑시킨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환자에 대한 치료적인 대응은 어머니를 정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 환자는 어머니를 이해해야 한다.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의 미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럴 수밖에 없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증상은 치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환자는 자신의 풀리지 않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로 투사시키고 있다. 환자는 그 미움의 투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세상이 바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어머니의 인생과 주변의 환경, 그리고 자기의 삶이 바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환자는 의심과 미움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어머니는 물론 사람이 더 이상 증오의 대상이 아니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게 될 것이다.

2) 어막

어막(amock or amuck)은 맹렬한 살상욕을 수반하는 정신착란이다. 이 정신병은 말레이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한테서만 볼 수 있는 증상군으로, 정신이 착란되어 있고 말을 하지 않는 무언의 상태(mute)이다. 어막 증상의 환자들은 평소에는 조용하다 증상이 발동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미친 듯 날뛰면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살상욕을 가진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편집적 사고 때문이다. 이들 환자는 편집 사고 때문에 미친 듯 날뛰고 물건을 때려 부수거나 사람을 죽이려고 날뛰게 된다.

이들의 미친 행동은 악귀가 들린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이들은 실제로 이렇게 미쳐 날뛰며 행패부리다가 자기 스스로를 죽이거나 또는 주변의 어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상대방과 자신이 모두 함께 죽기도 하는 무서운 증후군이다. 그런데 이 증후군의 특이한 점은 이런 상태가 지나고 나면 환자는 그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또는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도무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증후군이 발동하면 주변 사람들이나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무서운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증상만을 보면 마치 간질현상과 같으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보면 무서운 정신 착란 현상이다. 이런 착란 현상은 인위적으로 제어한다거나 단순한 상담치료 수준으로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뇌의 문제가 있는 생물학적인 것이므로 약물치료만이 유일한 치료책이 된다. 더욱이 그 동안의 기억이 없는 현상이고 보면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이 추가되고 있다. 뇌신경에 일어난 화학반응이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다만 살상욕을 가진 점에서는 일종의 생명의 위협에 따른 방어기능으로 볼 수 있다. 평상시 타인에 대한 신뢰감과 안정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일이 행동 감소를 유발하게 될 수 있다. 환자 주변의 삶이 위협적이거나 두렵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의 심리에 자신감이 없어서 위협을 느낄만한 무엇이 있는지도 발견해 내어야 할 것이다.

3) 부두 죽음

부두 죽음(voodoo death)은 잘못된 신념을 믿게 되어 죽는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은 호주, 남미 및 아이티에서 주로 일어나며, 미국에서도 보고된 경우가 있다. 특별히 이 증후군은 일종의 원시 종교적 행위로 일어나는 것으로 부두교라고 한다. 부두교는 미국 남부 및 서인도 제도의 흑인 사이에 행해지는 원시 종교이다. 이들은 주로 샤머니즘의 주술이나 마술 등의 종교적 행위로 신도들을 포교한다. 따라서 부두 죽음의 환자는 자신이 어떤 저주를 받아 꼭 죽게 되어 있는 것으로 믿게 된다.

이들의 믿음은 물론 정상적인 사고의 과정이나 그것을 거친 정신적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라 단순히 의심이라는 편집적 기제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잘못된 믿음, 즉 의심적인 믿음으로 일어나는 망상적 증후군이다. 이러한 편집망상은 생물학적으로는 과도한 신경흥분으로 설명된다. 아드레날린(adrenaline)분비를 과도하게 일으키거나 미주신경을 극도로 흥분시키게 되어 장기간의 치명적인 쇼크(shock)상태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부두 죽음 현상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우리에게도 조금 경험되고 있다. 이단 종파나 사이비 종파는 그런 특성을 어느 정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집단 자살하는 이단 종파의 경우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좋은 의도로 집단 자살한다고 여기지만, 분명히 잘못된 종교적 교리나 신념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종교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암시에 약한 측면이 있다.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도 이런 잘못된 이단종교에 빠지는 경우에서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이성을 기능을 넘어서 감정이나 정적인 측면에 빠져드는 특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현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상화시키려는 도피의 심리도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 세계로 인식하고 빠져들고 싶은 충동이나 착각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는 논리이다. 특히 부정적인 신념이 강한 경우에 그대로 자기의 생활방식을 지배하는 믿음으로 자리하여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의 부정적 인지도식이 결국 부정적인 삶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하는 형태이다. 이 경우 건전하고도 합리적인 사고방식만이 좋은 치료책이다. 자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적응하고 노력하는 삶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종교의 이상화라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신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두 세계를 살아가는 양면성의 존재를 인식시켜야 한다. 육체적 현실과 영혼의 이상세계를 조화시키는 절묘한 기술이 치료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3. 결론: 급성 편집증과 비정형성 편집증

지금까지 우리는 편집증의 치료와 증례에 대하여 기술했다. 편집증은 치료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자존감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집증은 조건이나 여건이 적절하게 실행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그에 상응하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앞장에 이어 우리는 편집증의 특징적인 증상을 다루면서 치료로 인정할 수 있는 과정과 치료적인 증례로 구분하여 다루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몇 개의 부분으로 다루어야 했다.

급성-편집증의 부분에서는 급성-편집증(acute paranoid)이 갑자기 일어난 편집증상이라고 했다. 이 급성-편집증은 일단 짧은 기간 유발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유형은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급성적으로 유발되었다가 6개월 이내에 깨끗이 회복되기도 한다. 이런 급성은 성격상 만성과는 다르게 갑자기 일정한 기간에 일어나므로 치료도 만성에 비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것은 특정한 기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어느 기간이 지나가면, 자연적으로 개선될 소지를 갖는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민자의 편집성-정신병, 교도소-정신병 등으로 구분하여 다루었다.

비정형성 편집증의 부분에서는 비정형성 편집증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편집증이라고 했다. 비정형성 편집증 또는 난해한 편집상태는 문자 그대로 증상이 불규칙하여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편집증으로 진단내리기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점에서다. 이런 비정형 편집장애는 이미 전술한 편집증의 유형과는 어느 부분은 일치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은 일치하지 않거나 전반적으로 일치하지 못하는 증상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카프그라증후군, 어막, 부두 죽음 등으로 구분하여 다루었다.

4. 치료 쉽지 않은 편집증... 그래서 C. G. 융은 종교의 기능을 중요시

이렇게 하여 우리는 편집증의 임상적인 유형과 사례와 증상, 그리고 치료적인 대응책을 관찰했다. 이런 형식을 갖추어 기술했지만, 여러 면에서 치료책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례를 다루거나 치료적인 대응을 다룰 때 체계적이지 못했던 점 때문이다. 솔직히 때로는 연재에 부담을 갖고 성실하게 기술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편집증의 전체 윤곽을 잡은 점에 대해서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있다.

편집증은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편집증이 발견될 수 있고, 어떤 증상과 연합하여 또다른 편집증후군을 유발할지 모른다. 이런 증상에 대해 그 유형이 임상의 실제에서 다뤄져야 하고, 치료 대책도 강구돼야 한다. 그러나 편집증의 특성이 그러하듯 다른 질병과는 달리 치료에 어려운 점이 문제다. 편집증 환자들은 치료자의 말이나 치료 방법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치료에서 시원한 해답을 보이지 못한 것과도 일정 부분 관련을 갖는다. 치료가 된다 해도 정신 에너지가 급격하게 저하되면 재발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그래서 편집증은 무엇보다 정신 에너지 저하를 주의해야 한다. 특히 약물치료 과정을 충분하게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상담치료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편집증은 그 유형을 막론하고 '신뢰와 믿음'이 정신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이나 영향력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관점에서 융(C. G. Jung)은 정신치료의 한계를 느끼고 종교의 기능을 인정하였다. 비록 종교적 치료가 반드시 의학적 치료의 성격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상의 결과에서 이미 치료의 효과를 산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잘못된 종교 행위로 사람을 더 망가뜨리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문제이며, 심각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삼가야 할 행위이다. 앞으로도 이런 편집유형이 어떤 치료의 과정과 단계를 거치면서 그 결과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임상자료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