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순호 목사(전 미국 장로교회 중서부지역 한인교회 총무)
(Photo : ) 현순호 목사

나의 손녀 아시와 손자 성진아, 지금쯤 너희는 뭘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구나. 오늘은 할아버지가 긴 편지를 너희들에게 보낸다. 아빠와 같이 읽고 할아버지에게 답장해 주면 좋겠구나.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머니날을 위시해서 부모와 자녀 간에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한 행사가 많단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한 프로그램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구나. 전에는 뜻있는 교회에서 노인들을 대접하고 선물을 주는 일이 많았지만 요즈음은 그것조차 차츰 줄어드는 것 같구나.

노인이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미국에 와서 더욱 외로워졌지. 찾아갈 곳이 별로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전화를 주고 받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어서일까. 나이가 들면서 운전을 못하게 되면 더 외로워질텐데… 그런 날이 없기를 상상해 본다. 할 일이 없으면 심심하기 그지없고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지. 반면에 늘어나는 것이 많단다. 병원에 가는 일과 약국에 가는 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이 늘어나고, 아픈 곳이 더 많아지며 TV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세상을 떠나가는 친구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구나. 그래서 때로는 쓸쓸하지.

그런데 너희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단다. 마치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려 목말랐던 꽃과 나무가 생기를 얻어 싱싱하게 자라듯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신바람이 나 여기저기 아프던 것도 별로 못 느끼고 아침이면 오늘은 너희들과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며 재미있게 지낼까 생각하기에 바쁘고 저녁에는 하루의 중요한 사건들을 일일이 일기장에 적어 놓으며 너희들이 자라는 모습을 깨알같이 담아 놓는단다.

너희들은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의 관심을 유난히 많이 받았지. 너희엄마가 40세를 바라볼 때였고 더욱이 너희는 쌍둥이이고 또한 약 3주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불안했단다. 성진이는 몇일간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집으로 오게 되니 옆에서 걱정을 많이 하게 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관심도 정(情)도 많이 들었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면에 있어 정상이고 똑똑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니 감사한 것 밖에 없다. 성진아, 너는 할아버지의 3대 독자가 되는구나. 나에게는 다섯명의 남자 형제가 있었으나 모두 일찍 죽고 나만 오래 사는데 너희 아빠도 외아들이다 보니 네가 3대 독자가 되어 할아버지의 성을 이어가는구나. 이래저래 너희들 때문에 우리는 살맛이 나고 자주 볼 수 있으니 사는 보람도 있단다.

너희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구나. 그냥 볼 때는 잘 모르겠는데 안아 들어올릴 때 확실히 알게 된단다. 매일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할머니는 허리를 다칠까봐 너희를 드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말도 매일 느는구나. 처음에는 단어 하나씩 하다가 어느덧 두세 마디를 연결해서 의사 표시를 하더니 이제는 아예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누굴 닮아 말을 그렇게 잘 하니! 어느날 너희가 서로 “여보 여보” 하면서 “우리 집에 갑시다” 하는 소리를 우리가 듣고 깜짝 놀랬다. 아이들 앞에서 말조심 해야겠구나 하며 웃었지. 너희들이 ‘산토끼 토끼야’ 노래를 부를 때 기타를 어깨에 메고 색 안경을 끼고 부르면서 깡충깡충 뛸 때는 자던 소도 웃을 지경이란다.

너희들이 전화로 할머니에게 고구마, 한국밤, 또는 떡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가져가면서 너희에게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쁘구나. 노인이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환영을 받고 부탁을 들어주고 같이 있어주기를 원하고 헤어지기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희뿐이구나. 얘들아, 얼마 후에 너희들이 학교에 가게 되고 따라서 많은 친구들이 생기면 우리와 같이 노는 시간이 점점 적어지겠지. 그러나 그 때에도 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잊지 말아다오! 우린 마치 농부가 봄·여름 내내 땀흘려 곡식을 가꾸며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하듯 너희들이 자라는 모습을 멀리서 보며 기뻐할 거야.

사랑하는 아시와 성진아,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는 꼭 두손 모아 하나님께 감사기도 를 드리렴. 찬송가도 자주 부르고. 내달에는 주기도문 가르쳐줄게! 안녕.